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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쪄 스트레스 받느니 굶어 ‘뼈말라’…37㎏인데 더 뺄래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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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호 10면

‘개말라’ 인간 꿈꾸는 그들 왜

2007년 모델 이사벨 카로가 거식증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찍은 광고. 이사벨 카로는 2010년 거식증으로 사망했다. [AP=연합뉴스]

2007년 모델 이사벨 카로가 거식증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찍은 광고. 이사벨 카로는 2010년 거식증으로 사망했다. [AP=연합뉴스]

도경희(21·가명)씨의 하루 식사는 620㎖짜리 이온음료 한 병이 전부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식사 대용으로 그가 먹는 최소한의 음식이다. 도씨는 2주차 초보 ‘프로아나’(pro-ana)다. ‘프로아나’는 거식증(anorexia)의 생활방식을 지지(pro)한다는 뜻이다. 거식증 환자들의 식습관을 따라하면서 살을 뺀다. SNS에선 도씨 같은 프로아나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도씨도 프로아나 커뮤니티를 통해 금식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는 현재 키 157㎝, 몸무게 56㎏이다. 15㎏을 빼 40㎏대 초반이 될 때까지는 금식을 이어갈 생각이다.

거식증 좇는 ‘프로아나’ 세계 #먹고 토하고, 씹고 뱉기 반복 일쑤 #이온음료 한 병으로 하루 버티기도 #마른 몸매 더 좋게 보는 세태가 문제 #전문가 “SNS 무차별 유통 차단해야”

프로아나의 꿈은 일반적으로 ‘날씬하다’는 것을 넘어 ‘개말라’ ‘뼈말라’ 인간이 되는 것이다. 뼈만 남은 것처럼 말랐다는 뜻이다. 이들은 보통 몸무게 30㎏대부터 40㎏대 초중반까지 목표로 한다. 한 프로아나는 메신저 오픈채팅에서 "(현재는 37㎏인데) 목표는 31㎏”이라고 했다. 대부분 무작정 굶어서 살을 뺀다. ‘먹토’나 ‘씹뱉’을 하는 사람도 있다. 먹토는 먹고 토하기, 씹뱉은 씹고 뱉기를 뜻하는 그들만의 은어다. 프로아나들은 SNS로 살 빼는 정보를 공유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메신저 오픈채팅도 이용된다. 실제로 기자가 살펴본 두 곳의 오픈채팅방에는 각각 100여 명 가까운 프로아나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얼마나 오래 음식을 끊었는지, 어떻게 하면 토할 때 덜 괴로운지 등 자신들의 경험을 나눈다. 식욕억제제나 변비약도 추천한다. 특히 펜타민이라는 식욕억제제를 자주 복용한다. 김율리 인제대 백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펜타민은 각성효과가 있고 심장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개말라만 좋아한다.” 프로아나들이 극단적으로 살을 빼는 이유다. 이들이 자주 가는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개말라 아이돌” 등의 글이 자주 보인다. 또 마른 연예인이나 모델의 사진도 게시판에 올라온다. 심지어 ‘뭘 먹어 돼지야, 너 같은 게 뒤뚱거리니까 웃기다’ 등의 글을 소리 내 읽는다. 도씨도 이런 글과 사진 등을 보며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프로아나는 2000~2001년 미국에서 거식증 환자들이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박진서(40·가명)씨는 2002년부터 약 2년 동안 외국 프로아나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다. 고교 때 거식증 치료를 받다가 프로아나를 알게 됐다. 당시에도 프로아나 커뮤니티에선 식단 조절이나 약물 등의 정보를 공유했다. 그러나 그때는 거식증 환자들이 주류가 돼 활동했다. 박씨는 “당시는 식이장애 환자들이 괴로움을 표현하는 창구였다”며 "그런데 요즘은 다이어트를 무리하게 하려는 이들에게까지 퍼졌다”고 말했다. 프로아나가 다이어트 수단으로 오해를 받게 됐다는 얘기다. 도씨도 다이어트 방법을 찾다가 우연히 프로아나를 알게 됐다.

프로아나

프로아나

김율리 교수는 “프로아나가 SNS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다이어트 방법으로 알고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한창 성장할 나이의 청소년에게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2015년 워싱턴 대학 조사 결과 트위터를 통해 프로아나 정보를 공유하는 이들의 평균 연령은 17세였다. 성인보다 10대들은 온라인에서 인기가 높은 정보를 절대적으로 믿는 경향이 더 두드러진다. 김 교수는 특히 "(마른) 연예인의 모습을 우상화하고, 이들의 식습관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청소년이 많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연예인 식단으로 자주 거론되는 사례가 가수이자 탤런트인 ‘아이유’ 다이어트 법이다. 하루에 사과와 고구마 1개, 단백질 셰이크 1잔을 먹는 것이 전부로 알려져 있다.

프로아나식 식사법은 자칫 거식증을 불러올 수 있어 위험하다. 거식증의 사망률은 5~15%인 데다 우울증도 뒤따른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교수(가정의학과)는 "폭식과 구토를 반복하면 죄책감에 자기비하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사회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마른 체형을 가진 이를 뚱뚱한 사람보다 더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사회 일반에 퍼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 교수는 “개개인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사회적 병리 현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온라인과 SNS 등에서 관련 정보가 무차별하게 유통되는 것을 제한하거나, 그 위험성을 충분히 경고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여진 인턴기자 kim.yeoji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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