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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의 인프라]연령 차별 논란 임금피크제…생애 소득은 확 늘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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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1~8호선의 파업사태가 16일 노사간 극적 타결로 풀렸다. 그렇다고 완전히 종결된 건 아니다. 말 그대로 봉합이다. 노조가 들고 나온 핵심 쟁점은 임금피크제 폐지와 안전인력 충원 문제였다. 이걸 관계 기관에 '건의'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갈등의 불씨가 살아 있는 셈이다. 언제 또 타오를지 모른다.

지난 7월 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열린 공공노동자 6대 요구사항 쟁취를 위한 기재부 규탄 공공노련 조합원 투쟁 결의대회에서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조원들이 직무성과급 도입 중단, 임금피크제 폐기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7월 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열린 공공노동자 6대 요구사항 쟁취를 위한 기재부 규탄 공공노련 조합원 투쟁 결의대회에서 한국노총 전국공공산업노조원들이 직무성과급 도입 중단, 임금피크제 폐기 등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임금체계 개편없이 정년연장부터 덜컥 시행…땜질 처방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임금피크제 폐지는 특히 주목을 끌었다. 2016년 정년이 60세로 연장된 뒤 보완책으로 임금피크제가 시행됐다. 임금체계를 개편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년만 늘어나면 기업이 과도한 부담을 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임금체계를 바꾸는 게 답이지만 정년연장부터 덜컥 시행한 탓에 임금체계를 바꿀 시간이 없었다. 임금피크제는 부작용을 땜질하는 과도기적 조치였던 셈이다.

월 60만원 56세, 임금피크제 해도 생애임금 1억7990만원 늘어 #퇴직금 중간정산 반드시 활용해야…수령 퇴직금 3159만원 이득

문제는 이후였다.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면서 시간을 벌고, 서서히 임금체계를 바꿔 가려 했다. 그 첫걸음이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 도입이었다. 임금피크제가 임금체계 개편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길 기대했다.

현 정부에서 성과연봉제 전격 폐지하며 임금체계 개편 동력 잃어 

하지만 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를 폐지했다. 해가 바뀌면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로 돌아갔다. 성과연봉제 단계를 넘어 임금체계를 직무급 같은 형태로 선진화했던 공공기관마저 호봉제로 돌려세웠다. 이 바람에 임금체계 개편의 동력은 거의 상실했다.

정부가 앞장서 임금체계 개편에서 발을 빼자 노조는 한 발 더 나갔다. 아예 임금피크제 폐지를 들고 나왔다. 서울교통공사 노조는 올해 6월 국가인권위에 "임금피크제가 헌법이 정한 평등권에 위배된다"며 진정을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능력이 아니라 나이를 기준으로 임금을 일률적으로 깎는 것은 헌법 정신에 배치된다. 이른바 공정 위배로 볼 소지가 있다. 블라인드 채용이란 것도 능력 위주로 뽑겠다는 것 아닌가.

일본은 임금피크제 없어…호봉제→역할·성과급으로 임금체계 개편

일본에서도 이게 문제가 된 적이 있다. 흔히 임금피크제는 일본에서 시작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일본에는 임금피크제라는 용어 자체가 없다. 노·사· 정은 물론 학자들도 임금피크제라는 단어도, 제도도 모른다.

다만 신일본제철을 비롯한 극소수 기업이 1980년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긴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2년도 안 돼 폐기했다. 근로자가 법원에 "연령을 기준으로 임금에 차등을 두는 것은 차별"이라며 제시한 소송에서 승소하면서다. 일본기업은 대부분 호봉제 대신 역할·성과급으로 임금체계를 바꿨다.

우리 법원은 일본처럼 두부 자르듯 판단하지 않는다. 임금피크제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 저변에는 신의성실의 원칙과 근로자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를 따지는 논리가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2019부산장노년일자리 박람회’가 지난달 18일 부산시·한국노인인력개발원·부산상공회의소 등 공동 주최로 부산시청 1층 로비에서 열렸다. 이날 정부는 60세 이상 고령자고용지원금이라는 정년연장 촉진 방안을 발표했다. 송봉근 기자

‘2019부산장노년일자리 박람회’가 지난달 18일 부산시·한국노인인력개발원·부산상공회의소 등 공동 주최로 부산시청 1층 로비에서 열렸다. 이날 정부는 60세 이상 고령자고용지원금이라는 정년연장 촉진 방안을 발표했다. 송봉근 기자

법원 "임금피크제 해도 생애 소득 크게 늘어…연령 차별 아냐"

올해 6월 정년퇴직을 앞둔 국민건강보험공단 근로자들이 낸 소송에서 법원은 "임금피크제는 합리적 이유가 있는 조치"라는 결론을 냈다.

서울중앙지법은 "오직 근로자가 일정 연령에 이르렀다는 사정만으로 임금이 감액되므로 임금피크제는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 임금에 관해 차등을 두는 것은 맞다"며 논란의 소지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노사합의를 거쳐 적법하게 시행됐고, 고령자고용법상 연령차별 금지의 예외 사유에 해당해 법 위반이나 무효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정년이 연장돼 결과적으로 더 많은 임금을 지급받게 돼 연령을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받았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도입 과정에 근로자 동의 안 받고, 과도한 임금 감액은 무효"

그렇다고 모든 임금피크제가 법적 타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올해 2월 서울중앙지법은 학습지회사가 시행 중인 임금피크제를 '무효'라고 판시했다. 이 회사는 직급 정년제에 편입된 직원의 임금을 50%까지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근로자 동의서는 관리자가 대면해서 받았고, 그나마 소수에 그쳤다. 법원은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에 의한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거치지 않아 무효"라고 했다.

또  "임금 삭감 비율이 감급 등 징계를 당하지 않았는데도 감급 징계를 당한 경우보다 훨씬 높고, 대기발령 징계에 준할 정도"라며 "과도한 조치로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도입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과 내용의 합리성이 갖춰지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는 뜻이다.

임금피크제를 최초 도입할 때와 그 파장,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 이에 대한 법원의 최근 판단 등을 종합하면 임금피크제는 정년 연장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로 여겨진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당시 설문조사에서도 근로자 상당수가 그 필요성을 공감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생애 임금이 확 늘어난다는 점이었다. 그러면서 기업의 경영상 부담을 덜어주고자 하는 노사관계상의 배려도 작용했다.

중앙일보는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는 법안이 통과된 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근로자의 소득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계산해 보도하기도 했다. 이를 다시 상기하면 이렇다.

57세에 퇴직하던 회사에 다니는 A씨가 56세(20년 근속)일 때 받은 월평균 임금은 600만원이라고 가정하자. 정년이 연장되면서 임금피크제가 도입됐다. 감액 규모는 57세에 10%, 58세에 20%, 59세에 30%다. 꼭짓점인 56세를 지나면 549만8000원→499만7000원→449만6000원으로 임금이 준다. 그래도 생애 임금은 57세에 퇴직할 때보다 1억7990만원 늘어난다.

다만 퇴직금은 56세에 중간정산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매년 수령하는 것이 좋다. 퇴직금은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정산하기 때문이다. 임금이 적을 때 정산하면 그만큼 손해본다는 뜻이다. 56세부터 중간정산을 하면 퇴직금으로 총 1억3499만원을 수령하게 되지만 60세 퇴직 때 정산하면 1억340만원으로 3159만원 손해본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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