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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고문" 화성 8차 수사, 그때 그 경찰 5명 특진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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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윤모(53)씨를 검거한 경찰 수사팀 중 5명이 특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화성 사건 용의자 이춘재가 이 사건 역시 자신의 소행이라 주장하면서 윤씨는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특진 명단에는 윤씨가 "나에게 가혹 행위를 했다"며 지목한 경찰 2명도 포함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경찰관들이 범인을 추측하는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경찰관들이 범인을 추측하는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고문했다' 지목 받은 형사도 특진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경찰관 5명이 1계급 특진했다. 형사 등 3명은 순경→경장이 됐고, 2명은 경장→경사로 특진했다.

윤씨는 최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형사가 3일 동안 잠도 재우지 않았고, 그 중 두 명은 주먹으로 때리거나 다리가 불편한데 쪼그려뛰기를 시키고 폭행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형사가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며 겁을 줬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당시 수사팀은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낼 이유가 없었다며 가혹 행위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가혹 수사 여부에 대해 사실 관계를 조사하는 중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 [사진 CJ엔터테인먼트]

특진 사유는 화성 범인 검거

경찰 자료에 따르면 이들이 특진한 시기는 각각 1989년 10월 11일과 12월 11일이다. 일부는 윤씨의 1심 선고(10월 20일)가 내려지기 전에 특진했다. 아직 확정판결이 내려지기 전부터 경찰이 ‘범인을 잡았다’며 포상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통상 범인을 검거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특별승진 공적으로 인정한다”며 “형사 재판 결과를 기준으로 하면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어 평가 기간이 너무 늘어지게 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제시한 당시 특진 사유는 ‘화성 연쇄살인사건 범인 검거’였다. 당시 경찰이 8차 사건에 대해선 연쇄 살인이 아니라 모방 범죄로 결론 지은 것과도 앞뒤가 맞지 않다. 경찰청은 “당시 특진 사유를 왜 그렇게 표기했는지는 지금으로선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아직 특진 취소된 선례 없어…재수사 결과 봐야"

만일 경찰이 윤씨에게 가혹 수사를 했다는 게 인정되면 특진이 취소될 수 있을까. 경찰청은 “아직까지는 이미 특진한 경찰이 취소된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윤씨가 재심을 준비하고 있고 수사 본부에서도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으니 결과에 따라서 적절하게 조치를 취할 방법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홍익표 의원은 “화성 8차 사건 또한 자신의 소행이라는 이춘재의 진술에 점점 신빙성이 높아져가고 있다”며 “경찰의 반인권적인 강압수사가 실제로 있었는지 엄정한 조사와 함께, 조사 결과에 따른 특진 취소 등 후속 조치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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