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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꼴찌한 한국 기업 정신차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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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산업1팀 기자

전영선 산업1팀 기자

매년 챙겨보면서도 결과와 제목은 물론 달릴 댓글 내용까지 예상되는 뉴스가 있다. 세계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 조사에서 한국이 또 꼴찌를 차지했다는 소식이다. 조사 주체가 어디든, 한국 상황은 늘 같다.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많이 나는 국가 조사와 함께 꼴찌를 도맡아 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의 이사회 젠더 다양성 조사에서도 반전은 없었다. 3000개 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을 조사해보니 39개국(56개국 중 5개 이상 기업이 있는 국가) 중 39등이다. 세계 평균이 20.6%에 달한 추세에 역행해 한국은 3.1%를 기록하는 수모를 맛봤다. 상위권 국가는 말할 것도 없이 최하위권인 파키스탄(5.5%), 일본(5.7%), 러시아(5.7%)와도 격차가 난다.

맞벌이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인데도 한국 기업에서 여성 고위직 비율은 수년째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15년 같은 조사에서 3.9%를 기록해 조만간 ‘마의 4%’를 넘기나 했더니 이듬해 다시 3.6%로 떨어졌다. 지난해는 2.9%에 그치면서 오히려 악화했다. 왜 한국은 늘 제자리일까.

입사에서 퇴직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여성은 여전히 차별의 대상이다. 최근 서울시 교통공사가 면접 점수를 조작해 합격권에 있는 여성 응시자 6명을 배제한 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민간 기업에서도 공공연하게 “여성이 하기엔 어려운 업무” 혹은 “섬세한 여성에 맞는 업무”라는 바이어스, ‘핑크게토’가 작동한다.

세계 여성임원 비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세계 여성임원 비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국 특유의 학연·지연 중심 조직 네트워킹도 여성의 기회를 배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주요 보직자가 모인 자리에 가보면 아직 이 문화는 건재하다. 초면일 경우 적어도 만남의 10분은 족보 맞추기에 할애된다. 출신지와 고등학교를 공개하고 혹시 군대 복무지가 같진 않은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주요 남고 출신으로 애향심이 강할수록 동류를 찾기 위한 집념도 강하다. 기업마다 주요 인사의 이력을 줄줄이 외우고 다니는 정보통이 꼭 한 명씩 있는데, 여전히 출세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여성 임원, 여성 경영진이 없는 기업은 경쟁력이 떨어진다. 젠더 감수성 없는 기업이 이상한 마케팅으로 헛발을 딛는 사례는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젠더 다양성과 기업 실적의 상관관계는 이미 다양한 연구를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이번 크레디트스위스 조사에서도 “경영진이 젠더 다양성을 높게 가진 기업은 주가 대비 초과 실적이 4%에 달했다”고 제시했다. 한국 기업은 이젠 정말 만년 꼴찌인 성적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할 때다.

전영선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