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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조카 “삼촌의 로봇 작품, 내 장난감이 재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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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테이트 모던 백남준 회고전에 등장한 ‘시스틴 채플’.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26년 만에 재현됐다. [런던=연합뉴스]

테이트 모던 백남준 회고전에 등장한 ‘시스틴 채플’.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26년 만에 재현됐다. [런던=연합뉴스]

1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꼽히는 이 미술관이 세계적 전위예술가 백남준(1932~2006)의 회고전을 마련했다. 독일과 미국 등 전 세계 미술관에서 어렵게 대여한 작품 225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다. 백남준은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망명한 뒤 독일로 유학했고 미국에서도 활동했다.

런던 테이트 모던 대규모 회고전 #내년까지 ‘TV 정원’ 등 225점 전시

도쿄와 뉴욕에서 그와 함께 생활한 조카 백건(69·일본명 하쿠타 켄)씨도 이날 전시장을 찾았다. 자녀가 없던 백남준의 작업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피붙이인 그는 전시된 ‘로봇 K-456’을 보며 "삼촌이 일본 도쿄의 내 방에서 만든 작품이다. 내 장난감을 재료로 많이 썼다”고 설명했다.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파격적인 작품이 눈에 띈다. 어두운 방에 푸른 식물과 텔레비전 수십 대가 섞여 있다. 클래식에서부터 자연음 등을 배경으로 TV 화면에 다양한 영상이 펼쳐지는 작품 ‘TV 정원’(1974~77)이다. 테이트 모던은 “기술이 자연과 별개가 아니라는 미래의 풍경을 형상화했다. 사물이 연결돼 있다는 불교 철학도 반영됐다”는 해설을 달았다.

이번 전시는 이숙경 테이트 모던 국제미술 수석 큐레이터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루돌프 프릴링 미디어아트 큐레이터와 공동 기획했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됐던 작품 ‘몽골 텐트’를 이 큐레이터는 보기 힘든 작품으로 꼽았다. 백남준은 1980년대 몽고족이 쓰는 텐트를 구매해 집처럼 꾸몄는데, 내부에 자신의 얼굴을 본뜬 브론즈 가면을 놓았다. 몽골 텐트 옆에는 서울 종로의 과거와 현대 풍경을 담은 작품이 자리를 잡았다.

백건씨는 “삼촌은 한국을 정말 사랑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더 그랬다”며 “월드컵을 할 때면 늘 한국팀만 열심히 응원했다”고 귀띔했다.

백남준은 TV를 미술의 도구로 활용한 첫 예술가로 꼽힌다. 서구에서도 TV가 막 보급되던 1974년 그는 ‘일렉트로닉 슈퍼 하이웨이(전자 초고속도로)’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어 냈다. 이 큐레이터는 “인터넷은 고사하고 세계 통신망이 가능하다는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시절에 백남준은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고 예언했다”며 “예술 작업에 그 개념을 사용한 것이야말로 독창적”이라고 평했다.

전시장 안쪽 방을 가득 채운 ‘시스틴 채플(성당)’은 백남준의 이런 작품 세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테이트 모던은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서 선보여 최고상을 받은 작품을 26년 만에 처음으로 재현했다. 작업에만 1년 가량이 걸렸다. 가운데 구조물에 달린 36개 프로젝터에서 나오는 자연 풍경과 몽골족의 모습 등 역동적인 영상이 음악과 함께 변하며 천정과 벽면을 가득 채웠다. 해당 전시실을 들어서자마자 “와~”하고 탄성을 내뱉는 이들이 많았다. 이 큐레이터는 “미켈란젤로가 15년 간 벽화 ‘천지창조’를 완성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을 비디오 아트로 구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50년 이상 진행된 백남준의 작업 세계를 한 자리에서 보여주는 회고전이다. 음악에 바탕을 둔 초기 작업부터 TV를 사용한 작업, 70년대 그가 선보인 기술적 실험에 이어 80년대 세 차례나 진행한 위성을 사용한 작품까지 갖췄다. 전위 첼리스트 샬롯 무어맨이나 작곡가 존 케이지, 안무가 머스 커닝햄, 예술가 요셉 보이스 등과 협업한 작품도 다수 소개되고 있다. 15일 언론 사전 공개를 시작으로 회고전은 17일 개막해 내년 2월까지 열린다. 이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테델릭미술관, 미국 시카고 현대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싱가포르 내셔널갤러리 등을 돌 예정이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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