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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뺐다가 '데스노트' 올랐다? "정의당, 민주당과 쓸려갈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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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신용호 기자 중앙일보 편집국장

정의당 사람들이 말하는 조국 사태와 그 이후 

지난 14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상무위원회. 심상정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심 대표의 왼쪽이 김종민 부대표다. 상무위는 당 지도부 회의체다. [뉴시스]

지난 14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상무위원회. 심상정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심 대표의 왼쪽이 김종민 부대표다. 상무위는 당 지도부 회의체다. [뉴시스]

“정의당 지지율이 더민주(더불어민주당)와 동반 상승·하락하는 현상을 반복하고 있다. 국민이 정의당을 더민주의 2중대 또는 보조 정당으로 보고 있음을 가리킨다.”

[신용호 논설위원이 간다] #김세균 “국민들 민주당 2중대로 봐” #조국 국면에서 나온 자성의 목소리 #“힘든 청년들의 목소리 대변 못했다” #“그들 외면 총선까지 이어질까 걱정”

정의당 공동대표를 지낸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그는 “개혁세력이라는 자유주의 세력도 결국 수구세력과 마찬가지로 기득권 세력임을 자각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 같다”며 조국 사태를 대하는 진보세력을 비판했다. 또 “정의당이 완전히 길을 헤매고 있다”고도 했다. 대표까지 지낸 진보 원로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정의당은 어찌 된 건가.

청년 당원들의 모임인 모멘텀이 14일 낸 논평도 신랄하다. “주류 정치로의 편입에만 몰두하여 진보정당 본연의 가치인 청년, 노동자, 소수자들을 대변함에 소원했던 정의당은 조국 정국 내내 집권여당에 끌려다녔으며, 결국 조국의 자진 사퇴로 생겨난 거대한 해일에 정의당마저 휩쓸리게 만들었다”고 했다. 또 “조국 문제에 정의당이 휩쓸린 것은 민주당 2중대론을 벗어나고자 충분히 노력하지 못한 점이 낳은 비극”이라고도 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은 사퇴했지만 ‘데스노트’에서 그를 제외했던 정의당이 죽을 맛이다. 정작 ‘조국의 데스노트’에 정의당이 올라간 형국이다. 갤럽에 따르면 지난해 8월 16%까지 기록했던 지지율이 지난달 말에는 6%로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특히 노동자·청년·소수자·여성 등에게 불평등과 기득권의 문제에 있어 민주당과 차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당내 비판은 뼈아프다. 정의당 사람들은 어떤 생각일까. 이 난국을 돌파할 방안은 있을까. 15일 아침 광화문에서 김종민 부대표를 만났다. 그는 지난 7월 제5기 대표단 선출 대회에서 심상정 대표와 함께 부대표로 선출됐다. (※정의당 지도부 회의체는 상무위원회로 당 대표, 부대표, 사무총장, 수석대변인 등이 멤버다)

조국. [뉴스1]

조국. [뉴스1]

조국 후폭풍이 가라앉는 것 같지 않다.
“데스노트는 법이 아니라 국민 정서가 기준선이었다. 근데 일관성이 깨졌다. 정의당에 치명타였다. 더 아팠던 대목은 그게 하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한 점이다. 일관성이 깨진 건 정치적으로 감당하는 거라지만 청년들의 생각을 대변하지 못했다는 게 가장 뼈아프다.”
총선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겠나.
“아무것도 안 한다면 그럴 거다.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해야 한다. 심 대표가 사과했지만, 좀 더 당의 입장에서 정중한 사과 과정이 필요하고, 다시 청년들을 만나 목소리를 반영할 대책을 짜야 한다.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청년들이 ‘민주당 2중대를 벗어나고자 노력하지 못한 점이 비극’이라 했는데.
“이 문제가 성장, 또 집권 가능한 정당이 되기 위한 가장 핵심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그걸 위해 총선 전략을 세워가는 과정이었는데, 조국 상황이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발생했다. 그걸 대할 때 민주당 2중대론에서 벗어나는 현명한 전략을 폈으면 좋았을 텐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한 선거법 개정을 위한 민주당과의 손잡기는 아니었나.
“선거제가 영향을 끼치지 않은 건 아니다. 여러 고민이 있었다. (지도부에서 결정 당시) 조국 반대와 임명권 존중 입장이 반반이었다. 그런데 조국 반대 입장을 내면 안 된다는 쪽이 더 열정적이었다.”
만약 조국 사퇴 전에 당의 입장을 바꾸었다면.
“입장을 바꾸면 이쪽저쪽에서 욕먹고 완전히 초토화가 되지 않았을까. 마음으론 ‘검찰 개혁을 하자. 그러나 조국은 안 된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조 전 장관에 대한 개인적 견해는.
“당에 조국을 찬성하는 사람 거의 없을 거다.”

청년들의 생각을 어떨까. 모멘텀의 김지문 조직국장과 이도영 운영위원을 먼저 만났다. 모멘텀은 정의당 내에서도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모임이다. 당원들의 모임으로 당 공식기구는 아니다.

조 전 장관 사퇴 후 논평에서 당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했는데.
“당이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었음에도 선택을 잘못해 민주당과 함께 파도에 쓸려가게 생겼다. 상무위가 책임을 져야 한다.”
9월 초에 이미 조국 반대 목소리를 냈던데.
“그랬음에도 받아들이지 않아 안타깝다. 우리는 당에 해악을 끼치려고 조국 반대를 얘기한 게 아니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었더라면 이 해일에 쓸려가지 않았을 것 아니냐. 당이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있다.”
청년들은 조 전 장관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나.
“조국이란 인물은 이 사회 불평등의 문제 자체를 집약해서 너무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당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의당적이고 진보적인 목소리를 못 내면 연동형 비례제를 위한 선거법이 개정되더라도 총선에서 의석을 많이 차지하지 못할 거다. 설사 의석이 늘어난다 할지라도 정의당의 가치를 지킬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심상정 대표가 직접 발탁한 강민진 청년 대변인은 지난 7일 “누군가는 재산이 50억원이 넘어 사모펀드까지 하는데 누구는 월세방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가”라는 논평을 내 주목을 받았다. 지도부가 조국에 대해 임명권 존중 입장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선상 반란’이란 말도 나오던데 논평은 왜 썼나.
“조 전 장관이 사퇴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넘어 사회적 불평등과 기득권 문제가 국민을 분노하게 했고 그 문제가 본질인데 그건 논의가 안 되고 있었으니까.  청년 대변인이니 지도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라는 요구도 있었다. 청년 당원들이 위축돼 있기도 해 힘을 실어주고도 싶었다. 지도부에 반기를 들려는 건 아니다.”
실제 위기감이 어느 정도인가.
“무엇보다 다른 청년들 만나면서 어깨가 떳떳해야 하는데 그게 위축이 되니까…. 선명하게 반대했어야 한다는 말을 한다. 학교에서 ‘정의당은 뭐하는데’ 했을 때 그 부분에 대해 딱히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위기는 사실이다. (지지율) 수치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덜컹덜컹한다. 수치야 왔다 갔다 하는 거라 치지만 이번 사태에서 우려가 되는 게 20대들로부터 외면이 총선 때까지 계속될까 걱정이다. 정의당도 반대했어야 한다고 말을 많이 하니까, 정의당은 뭐했냐고 하니까.”

김종대 의원에게도 물어봤다. 안보전문가로 당 수석대변인을 맡고 있다. 그는 당의 입장이 아니라 개인적인 견해라며 물음에 답했다.

당 상황이 어려운데.
“당이라는 게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는 건데, 조국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거로 봐야 한다. 대신 그나마 버티는 거는 견고한 진성 당원 체제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심 대표가 선거법 개정에 욕심을 내서 그런 거 아닌가.
“설령 그렇다 해도 그건 거래 관계가 아니고, 4당 합의다. 민주당이 요즘 사법개혁 쪽으로 쏠리면서 선거법 개정은 따로 분리해서 나중에 처리하겠다는 말이 나오는데, 원칙에 어긋난다.”
조국 국면에서 정의당의 너무 어려워진 거 아닌가.
“민주당도 손해 봤고, 우리 당도 손해 봤다. 조국 선택은 집권당의 기획이었고, 온전히 책임져야 할 건 그분들이다. 우리는 조국 터널에서 빠져 나와서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 한다. 조국에 갇혀, 그 감옥에서 못 빠져나와서 어려움을 겪었다.”
왜 그랬나.
“사실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인 것 같다. 마음은 우리가 불평등 이슈에 집중해서 조국도 봤으면 했는데, 그게 안 된 거다. 이런 상황이 총선 때까지 이어지면 정말 곤란하다.”
극복할 방안은.
“그러니까 이젠 울타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조국 국면은 정의당의 시간은 아니었다.”
민주당 2중대론에 대해선 어떤 생각인가.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다분히 종속적인 행태가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조국 사태가 정의당에 남긴 상처가 컸다. 정의당 사람들은 많이 아파했다. 데스노트에서 스텝이 꼬이면서 불평등과 불공정에 대해 정의당의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고, 청년 세대의 상실감도 대변하지 못했다는 점은 정의당 지도부가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심상정 대표는 지난 7월 취임사에서 “이제 정의당은 정의당의 길을 갈 것”이라고 했다. 그 다짐을 깊이 다시 새기고 움직여야 할 시점이다.

신용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