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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남성, 마땅히 여성 존중해야" 노벨경제학상 뒤플로의 뒤끝작렬 발언 나온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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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고, 남성은 여성에게 마땅한 존경을 보이길 바랍니다.”

여성으로 역대 두 번째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에스테르 뒤플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수상 소감에서 남성들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그동안 백인·남성·미국인을 위한 잔치로 여겨졌던 노벨경제학상은 올해 뒤플로 교수와 그의 남편 인도인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을 수상자로 선정하며, ‘여성’과 ‘유색인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스포트라이트는 여성인 뒤플로 교수에게 집중됐다. 노벨위원회는 수상자 발표와 동시에 뒤플로 교수에게 콘퍼런스콜을 걸어 소감을 물었다. 한집에 사는 둘 중에서 “여성을 원한다”며 콕 집어 뒤플러 교수와의 통화를 요청했다. MIT에서도 ‘바네르지와 그의 부인’이 아닌 ‘뒤플로와 그의 남편’이라고 기사를 써달라고 취재진에 당부했다.

노벨경제학상이 10년 만에 여성에게 주어진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이를 환호하는 학계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그동안 경제학계에서 여성이 철저하게 소외됐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종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더 뿌리 깊다.

뒤플로 교수는 “노벨상 받는 여성이 적은 이유는 상을 주는 사람들이 여성을 홀대해서가 아니라 경제학계의 통로가 소수계층에 충분히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제학계의 성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올 초부터 제기됐다. 지난 3월 전미경제학회에 참석한 여성 경제학자 3명 중 1명이 차별을 느꼈다고 밝혔다. 여성 경제학자가 학계 행사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응답은 66%, 동료 학자에게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비율은 63%였다.

실제로 여성 경제학도가 교수가 될 가능성은 남성보다 현저히 낮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경제학 학사,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여학생의 비율은 각각 58%, 32%지만, 여성 정교수는 13%밖에 되지 않는다. 경제학 박사가 조교수(여성 비율 23%), 부교수(22%), 정교수로 승진할 때마다 여성의 비중은 더 줄어든다.

학계에서 여성이 겪는 고충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에 익명을 요구한 여성 경제학자는 외모에 대한 지적을 받거나, 남성 동료에게 스토킹을 당하거나, 술에 취한 지도교수가 스킨십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괴롭힘에도 여성 학자들이 함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교수 임용 심사 시 지도교수의 평가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추천서·공동연구·학회초청 등 학계의 성공을 결정짓는 모든 요소는 동료 평가로 이뤄지기 때문에 서로에게 잘 보여야 하는 구조다.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하버드대 조교수 시절 남자 동료 중 누구도 자신과 논문 공저를 하지 않으려는 성차별을 경험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한국은 더하다. 한국경제학회 첫 여성 학회장으로 선출된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여자는 경제학과 교수로 채용하지도 않았다”며 “여전히 상위권 대학의 여교수는 10%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올해 반가운 소식이 많다. 뒤플로 교수의 노벨경제학상 수상뿐 아니라 크리스틴 라가르드 차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내년 전미경제학회장에 부임하는 옐런 등 경제학계에 역대 어느 때보다 거센 '여풍(女風)'이 분다. “남은 일생을 경제학계의 양성평등을 위해 바치겠다”고 한 옐런의 약속대로, 학계에 성차별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사회과학의 '여왕'을 자처하는 경제학이 성차별 비난을 받는 건 참으로 면목없는 일이니까.

배정원 글로벌경제팀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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