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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또 서초동 가십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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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수진 국제외교안보팀 차장대우

전수진 국제외교안보팀 차장대우

미국도 한국 만만찮게 분열의 시대다. CNN 뉴스를 보고 있자면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모레쯤 침몰할 것 같다. 폭스뉴스로 돌리면 트럼프 대통령은 시대가 몰라보는 영웅이다. 이 글을 쓰는 현재, CNN 웹사이트엔 “트럼프에겐 어리석은 실수를 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이건 심했다”는 제목으로 시리아 철군 결정을 비난하는 칼럼이 주요 뉴스다. 같은 시각 폭스뉴스엔 “CNN의 편협함이 드러났다”는 간판 앵커 터커 칼슨의 뉴스 시리즈가 톱이다. CNN과 폭스뉴스가 트럼프 찬반의 진영을 대표하는 나팔수가 되어 전면전을 벌이는 중이다. 어느 한쪽만 접하면 미국의 반쪽만 보는 셈이다.

하긴, 한국만 하랴. 나라를 차라리 둘로 나누는 게 정신건강에 좋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서울은 ‘광화문 vs 서초동’으로 동강 났다. 서초국(國), 아니 서초동에 모인 분들과 태극기·성조기에 때론 이스라엘 국기까지 챙겨 덕수궁 앞에 모이는 분들은 서로가 미워 죽겠다는 기세가 등등하다.

노트북을 열며 10/16

노트북을 열며 10/16

분노는 힘이 세다. 독은 빨리 퍼진다. 건강한 비판 아닌 독기 어린 비난은 한 애먼 여성 검사에 대한 부적절한 외모 비판으로 이어지고(자기 외모에 자신 없는 사람들일수록 이런 비난에 능하다), 기자들 신상털이로 옮아간다. 조국 장관 사퇴로도 이 불길은 꺼지지 않는 듯, 집회는 계속된다고 한다. 높은 분들이야 사퇴 후 복직하거나, “매우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하면 되겠지만, 그 광화문 거리를 매일 걷고 서초동으로 출퇴근하는 일반인들 마음의 생채기는 어찌할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업, 참 피곤하다.

이달 초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한 칼럼은 그래서 신선했다. ‘좌파가 폭스뉴스를 봐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폭스뉴스에 반대할수록 폭스뉴스를 봐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폭스를 제대로 이해해야 건강한 비판도 가능하다는 논리였다. 반향도 컸다. 15일 현재 달린 댓글만 1049개다. 미국의 분열은 그래도 아직 건강해 보이는 이유다.

우리도, 서초동이든 광화문이든 가기 전에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열어보면 어떨까. 우리에게 입은 하나, 귀가 두 개인 데는 다 이유가 있을 터다.

집회 여파 때문인지 덕수궁 앞 명소였던 목판 조각가의 작업장도 얼마 전부터 썰렁하다. 15일 오후에 가본 그곳엔 그가 간판으로 내걸었던 목판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가 새겼던 글귀는 이랬다. ‘우리 사랑 서로 협력하며 우리 귀히 여겨 참사랑 실천하는 한민족 조국이어라.’ 그 목판이 뒤집힌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 허망했다.

전수진 국제외교안보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