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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죽음 내몬 악플, 11년뒤 설리 추모글에도 등장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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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악플러 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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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25)가 평소 우울증을 앓았다는 진술이 나왔다. 15일 경기도 성남 수정경찰서에 따르면 유가족 등은 설리가 평소 우울증을 앓아왔다고 진술했다. 그래서 평소 설리에게 자주 연락을 취하고 집으로 찾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설리는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전원주택에서 홀로 살았다.

“악플러는 얼굴 없는 살인자” 비난 고조 #유가족 “설리 최근 힘들어했다” #동료들 “관대한 세상 됐으면” 애도 #‘인터넷 실명제’ 국민청원 올라와 #2008년 최진실 숨졌을 때 추진 #“표현의 자유 침해” 반대로 실패 #전문가 “규제보단 자정 운동 필요”

설리의 매니저는 경찰에서 “설리가 평소 우울증 증세를 보여 걱정을 해 왔다”며 “13일 오후 6시 30분 통화한 이후 연락이 닿질 않아 집으로 찾아갔다가 숨진 설리를 발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가족들도 “설리가 최근 아주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걱정하고 있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경찰은 설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면서도 정확한 사인 등을 알기 위해 오는 16일 시신을 부검하기로 했다. 또 설리가 병원에서 치료받은 전력 등도 확인하고 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설리가 자신의 심경을 적은 메모장 등이 발견됐다. 다이어리에 일기를 쓴 것처럼 여러 심경을 적었다고 한다. 모든 글에 날짜는 적혀있지 않고, 맨 마지막 장에선 긴 메모가 발견됐는데 ‘괴롭다’ 등 부정적인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민병철 “선플 인성 교육 의무화해야”

설리는 평소 악플 등으로 힘들어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돌 그룹 에프엑스(F(X))로 활동하던 2014년에도 악성 댓글과 루머 등으로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하기도 했다. 이듬해 8월 연기에 집중하고 싶다며 팀에서 탈퇴했다.

설리는 최근에도 심경에 큰 변화가 생겨 출연하던 JTBC 예능프로그램 ‘악플의 밤’에서 하차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설리가 사망한 채로 발견된 날은 JTBC2 예능 프로그램 ‘악플의 밤’ 녹화일로 제작진은 이날 설리가 연락이 되지 않아 그 없이 녹화를 진행했다. ‘악플의 밤’은 오는 18일 방송을 쉬기로 했다.

설리는 사망 전까지 ‘악플의 밤’ MC로 활약하며 자신의 심경을 담담하게 말한 바 있다. 그는 방송에서 “실제 인간 최진리의 속은 어두운데 연예인 설리로서 밖에서는 밝은 척해야 할 때가 많다”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두운 부분이 있는데 겉으로는 아닌 척할 뿐”이라고 털어놨다.

설리의 장례 절차는 당초 비공개 예정이었으나 소속사와 유족 측이 팬들의 조문은 받기로 했다. 설리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설리 팬들은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7호(지하 1층)에서 이날 오후 4~9시와 오는 16일 정오부터 오후 9시까지 조문할 수 있다.

설리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며 15일 연예계에서는 행사 취소와 온라인 애도가 계속되고 있다. CJ ENM은 이날 오전 11시 상암동에서 열 계획이던 엠넷 예능 ‘썸바디2’, 오후 2시 예정된 올리브 예능 ‘치킨로드’ 제작발표회를 취소했다. 넷플릭스 공개 코미디쇼 ‘박나래의 농염주의보’ 제작발표회 역시 예정대로 진행하려다 결국 취소했다.

설리, 위아자 나눔장터에 ‘마지막 선물’

설리는 최근 사회 지도층 인사와 연예·스포츠계 스타, 일반 시민들이 기부한 물품을 판매해 저소득층 아이들을 돕는 위아자 나눔장터에 온정을 보탰다. 그는 최근 유행하는 스타일의 슬리퍼 한 켤레를 보냈다. 자신의 사인을 정성껏 남겼고 이와 함께 별도의 사인 카드도 기부했다.

설리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다양한 기부 활동을 했다. 주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돕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룹 에프엑스(F(X))로 활동할 당시 팬들에게 받은 쌀화환 500㎏을 지역아동센터에 기부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조손가정(조부모와 함께 사는 가정)의 생활을 돕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화보 촬영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동료 스타들은 온라인에 추모글을 올렸다. 고인과 절친했던 가수 구하라는 전날 늦은 밤 인스타그램에 “그 세상에서 진리가 하고 싶은대로”라는 글과 함께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 세 장을 공개했다. 카라 박규리도 “예쁘고 밝았던 아이, 어떤 말로도 심정을 담기 힘든. 조금 더 모두에게 관대한 세상이 되었으면”이라는 글을 남겼다.

온라인에 만연한 악성 댓글 문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계속됐다. 배우 신현준은 “또 한 명의 소중한 생명이 우리 곁을 떠났다. 악플러, 비겁하고 얼굴 없는 살인자”라고 비판했다. 양정원도 “너는 얼마나 당당하고 깨끗한데 가만히 좀 냅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걸스데이 출신 민아는 설리 애도 글에도 악플이 달리자 “신고하겠다”고 분노했다.

설리가 세상을 떠난 후 그를 향한 악성 댓글은 확연히 줄었지만, 여전히 일부 커뮤니티 등에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에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인터넷 실명제를 부활하자는 글도 올라왔다.

2008년 10월 최고 인기스타였던 배우 최진실(당시 40)씨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근거 없는 소문과 이로 인한 네티즌들의 악플이 원인이라는 경찰 조사 결과가 나왔다. 당시 경찰이 루머의 출처를 확인한 결과 한 증권사 여직원이 ‘최씨가 사채업자’라는 사설 정보지를 유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여당은 최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뼈대로 한 이른바 ‘최진실법’ 도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인터넷 통제를 강화하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야당의 반대로 댓글 실명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민병철 생활영어’로 유명한 민병철 선플달기운동본부 이사장은 “12년 동안 선플 운동을 했으나 악플은 줄지 않았다”며 “어렸을 때부터 내가 단 악플이 한 사람의 생명까지 뺏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한 학기에 한 번씩이라도 ‘선플 인성 교육’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우리 사회 악성 댓글은 임계점을 넘은 지 오래된 게 사실이고 최근 더 독해졌다”면서도 “표현의 자유가 걸린 문제라 규제 개념보다는 자정 분위기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모란·이가영·최은경 기자, [연합뉴스]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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