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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친기업 행보 2탄···삼성 이어 이번엔 화성 현대차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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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청와대에서 전용차로 채택한 수소차(넥쏘)에 대해 설명듣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월 청와대에서 전용차로 채택한 수소차(넥쏘)에 대해 설명듣고 있다. [청와대]

2027년 경부고속도로 천안휴게소. 자율주행차를 타고 서울에서 대전까지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 운전대 한 번 잡지 않고, 가속ㆍ감속 페달 한 번 밟지 않고도 차선을 바꾸고, 앞차를 추월하고, 규정 속도를 지키면서 휴게소에 도착했다. 차가 운전자를 돕는 게 아니라, 운전자가 차를 거드는 수준이다. 전기차지만 한 번 충전하면 600㎞ 이상 달리는 데다 충전소가 휴게소 포함, 가는 곳곳에 있어 불안하지도 않다. 충전 기술이 발달해 완전히 충전하는 데 15분 걸린다.

현대차서 ‘미래차 전략’ 발표

정부가 민간과 손을 잡고 이런 일을 8년 내 현실화하는 로드맵을 세웠다. 친환경차ㆍ자율주행차 확산에도 힘을 모으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5일 경기도 화성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정부 합동 ‘미래자동차 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삼성디스플레이 탕정 사업장을 방문해 13조원 규모 투자를 끌어낸 데 이어 ‘친기업’ 행보를 가속하고 있다.

미래차 전략의 핵심은 민간에서 친환경차ㆍ자율주행차로 치고 나가면, 정부가 인프라ㆍ제도로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먼저 친환경차의 대폭 확대다. 2030년까지 국내 모든 차종(승용차ㆍ상용차)에서 친환경차를 출시하기로 했다. 양만 늘리는 게 아니라 질도 끌어올린다.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거리를 현재 400㎞ 수준에서 2025년까지 600㎞로 늘린다. 충전 시간은 현재 40분 수준에서 15분으로 단축한다. 수소차는 2022년까지 내구성을 16만㎞에서 50만㎞로 강화하고 가격은 현재 7000만원대에서 4000만원대로 낮춘다.

정부도 2020~2026년 친환경차 기술개발에 3856억원을 투자한다. 특히 친환경차가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에 집중한다. 2025년까지 전기차 충전소 1만5000개, 2030년까지 수소 충전소 660개를 구축한다. 보조금은 유지하되 2022년부터 성능ㆍ주행거리 중심으로 지급 체계를 재편하기로 했다. 2030년까지 전체 신차 판매의 3분의 1을 전기차ㆍ수소차로 채운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하나의 전략 축은 자율주행차 확산이다. 2024년까지 ‘레벨4’ 수준 완전자율주행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레벨4는 운전자를 간단한 수준에서 돕는 현재 자율주행차(레벨2), 자동차 스스로 운전하되 최종 통제권만 운전자가 갖는 자율주행차(레벨3)를 넘어 운전자가 운전에 개입할 필요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운전자 개입이 전혀 필요 없는 완전한 자율주행(레벨5) 직전 단계이다. 현대차는 최근 2조4000억원을 투자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분야 최고 기술력을 가진 앱티브와 공동으로 미국 현지에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하는 등 자율주행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는 자율주행차가 원활하게 달릴 수 있도록 돕는다. 2027년까지 경부고속도로를 비롯한 전국 주요 도로를 자율주행차가 달릴 수 있는 도로로 바꾸기로 했다. 통신 인프라를 깔고, 정밀지도ㆍ교통관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련 보험 제도를 정비한다. 예를 들어 차량이 센서로 인식하기 쉽도록 전국 도로의 신호등ㆍ안전표지판을 일치시키고 지형지물 인식에 필요한 3차원 지도 망을 구축하는 식이다.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산업에 이어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자동차 산업에 민ㆍ관 역량을 집중하기로 한 건 방향을 잘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으로 ‘유망한’ 분야인 데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산업이라서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미국ㆍ일본ㆍ독일 등 자동차 선진국에선 정부와 자동차 회사가 친환경차ㆍ자율주행차 개발에 사활을 걸고 뛰어들었다”며 “한국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만큼 정부가 힘을 보태면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과 케빈 클락 앱티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골드만삭스 본사에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 본계약에 서명하고 있다. [현대차]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과 케빈 클락 앱티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골드만삭스 본사에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 본계약에 서명하고 있다. [현대차]

전략은 정부가 발표했지만 짐은 대부분 민간 기업이 짊어졌다. 성공의 관건이 완성차 회사 역량에 달린 셈이다. 자율주행차는 하드웨어(HW)가 아니라 소프트웨어(SW)가 핵심이다. 현대차는 HW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지만, SW는 아직 뒤진다고 평가받는다. 서승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자동차 산업이 제조업에서 정보기술(IT) 산업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현대차가 얼마나 SW 기업으로 환골탈태하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민간보다 뒤졌다는 평가를 받는 건 정부다. 정부가 ‘얼마나 돕느냐’ 보다 ‘얼마나 걸림돌을 걷어내느냐’에 달렸다는 얘기가 나온다. 예를 들어 올 초 추진 전략을 발표한 수소 충전소 구축만 해도 전국 지방자치단체 곳곳에서 각종 규제를 거론하고 있어 구축에 난항을 겪고 있다. 선우명호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자율주행차 확산은 곧 규제와의 싸움이기도 하다”며 “톱-다운 식으로 규제를 풀겠다는 정부가 ‘풀뿌리 규제’까지 얼마나 완화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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