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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DNA 안나온 화성 10차, 증거물 없는 6차도 미제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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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춘재(56)의 DNA가 3차 사건에서도 검출됐다. 4차·5차·7차·9차 사건에 이은 5번째 검출이다. 이춘재가 10건의 사건 중 중 5개 사건의 진범일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일부 사건 현장 증거물은 남아있지 않거나 이춘재의 DNA가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영원한 미제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1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과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수사본부에 따르면 국과수는 지난 11일 3차 화성 살인 사건의 증거물에서 이춘재의 DNA가 나왔다는 결과를 경찰에 통보했다. 현장 증거물 일부에서 피해자와 이춘재의 DNA만 소량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3차 사건은 1987년 4월 23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현 화성시 안녕동)의 한 논둑에서 주부 A씨(당시 25세)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A씨는 1986년 12월 12일 수원시의 한 제과점에서 야근하던 남편과 저녁을 먹고 홀로 귀가를 하던 중 실종됐다. 이 사건에서는 A씨가 착용하고 있던 옷가지로 결박과 재갈을 물리고 살해당하는 등 이춘재 특유의 범행 인증(시그니처·Signature) 수법이 발견됐다.

5개 사건서 이춘재 DNA 검출, 나머지는?

현재까지 이춘재의 DNA가 검출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전체 10개 사건 중 3차, 4차, 5차, 7차, 9차 등 5개 사건이다. 경찰은 이 결과를 토대로 이춘재를 강간살인 등 혐의로 피의자로 입건했다. 그러나 일부 사건 현장 증거물에선 이춘재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거나 증거물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차 화성 연쇄 살인 사건 현장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 경찰관들. [중앙포토]

10차 화성 연쇄 살인 사건 현장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 경찰관들. [중앙포토]

경찰 등에 따르면 국과수 감정 결과 10차 화성 살인 사건 증거물에선 이춘재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10차 살인은 1991년 4월 4일 화성군 동탄면 반송리(현 화성시 반송동) 한 야산에서 B씨(당시 69세)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B씨는 전날 딸의 집에 갔다가 귀가하던 중 실종됐다. B씨는 검은 천으로 목이 졸린 채 발견됐다. 성폭행 흔적도 있었지만, 피해자의 옷가지로 결박하거나 재갈을 물린 흔적 등은 없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정액을 통해 분석된 용의자의 혈액형도 B형으로 나왔다. 이춘재(O형)와 달랐다. 이로 인해 다른 용의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6차 사건의 증거물은 경찰이 국과수에 감정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증거물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6차 살인은 1987년 5월 9일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 화성시 진안동) 야산에서 주부 C씨(당시 29세)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C씨는 일주일 전 퇴근하는 남편을 마중 나갔다가 실종됐다. C씨는 입고 있던 옷가지로 살해됐다. 결박이나 재갈을 물린 흔적은 없었다. 그러나 당시 비가 많이 와 현장 증거물이 남아있지 않거나 훼손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서는 용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발자국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이 확보한 용의자의 신발 크기는 245㎜였다. 경찰은 비가 와 실제보다 신발 크기가 축소됐을 것으로 예상해 255㎜로 추정했다. 경찰은 6차 사건 이후 이춘재를 용의 선상에 올려 조사를 하기도 했다. 한 주민이 “이춘재가 1986년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것 같다”고 제보하면서 수사를 벌였다. 그러나 현장 증거물이 없고 이춘재의 알리바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어 수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춘재 DNA 없고, 증거물 없는 사건도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A양의 집. [중앙포토]

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A양의 집. [중앙포토]

현재 국과수는 억울한 옥살이 논란이 일고 있는 8차 사건 증거물을 조사하고 있다. 1988년 9월 16일 태안읍 진안리 한 가정집에서 13살 여중생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윤모(당시 22세)씨를 범인으로 붙잡았다. 윤씨는 20여년 수감 생활 끝에 2009년 가석방됐는데 “당시 경찰의 고문 등 가혹 행위로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씨는 재심 전문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와 당시 억울하게 용의자로 몰린 이들의 변호인으로 나섰던 김칠준 변호사와 손잡고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증거물은 현재 기록 보존 기한 만료로 폐기된 상태다. 경찰이 가지고 있는 증거물은 범행 현장에서 나온 토끼풀과 8차 살인 현장 침입 수법과 비슷한 다른 지역 범행 현장 창호지 정도다. “의미 있는 증거물은 아니다”라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이 가지고 있는 당시 수사 기록 사본도 완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가 차려진 화성경찰서 태안지서. [중앙포토]

과거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가 차려진 화성경찰서 태안지서. [중앙포토]

국과수는 8차 사건 증거물에 대한 분석이 끝나면 1차·2차 사건 증거물에 관한 DNA 분석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들 사건에서도 피해자의 옷가지를 범행에 사용하는 이춘재 특유의 시그니처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화성 사건 일부는 이춘재와 관련이 없거나, 이춘재가 관여했다고 해도 밝힐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증거물이 없거나 DNA가 나오지 않은 사건이라도 이춘재가 자백한 내용을 토대로 조사해 신빙성을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모란·최종권·심석용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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