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에서 전투 공적을 세우고도 지금까지 훈장을 받지 못한 전투 영웅 45명이 14일 무공훈장을 받았다.
육군은 이날 충남 계룡대에서 당시 1사단 소속인 김두식(88) 예비역 중령(당시 소위), 백금봉(88) 예비역 하사(당시 일병)와 5명의 전투 영웅에 대한 무공훈장 수여식을 열었다. 이외 38명에 대한 수여식은 39사단 등 거주지역 부대에서 열렸다.
[서소문사진관]
김 예비역 중령은 1952년 12월 노리(NORY)·베티(BETTY) 고지 전투에서 부상하고도 대원들을 이끌고 적진으로 돌격해 적을 격퇴하고 진지를 사수한 공적을 인정받아 이날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노리고지는 휴전회담이 진행되던 1952년 남과 북이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 중 하나다.
경기도 연천군 서남면 고장리 고왕산 7km 지점에서 임진강 상류의 서쪽 기슭을 따라 동남으로 뻗은 곳에 있는 노리고지는 표고 110m 내외의 조그맣고 낮은 고지다. 전후로 약 30m의 사이를 두고 소(小) 노리와 대(大) 노리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당시 대(大) 노리는 인민군이 점령하고 있었고, 소(小) 노리는 국군 1사단이 점령하고 있었다.
1952년 12월 초 인민군은 야간에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소(小) 노리를 기습 공격해 이곳을 점령했다. 이로부터 약 1주일간 국군과 인민군의 치열한 전투가 시작됐다. 국군은 3개 대대의 병력을 투입하고 포탄 약 21만발을 퍼부어 고지를 재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김 예비역 중령은 “6·25전쟁 당시 조국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수많은 전투에서 적과 싸웠는데 이제라도 공적을 인정받아 훈장을 받게 되어 감사하다”며 “당시 전장에서 함께 한 전우들에게 모든 영광을 돌린다.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이 계속되어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예우받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 예비역 하사는 1952년 10월 연천 북방지구 전투에서 적의 티엔티(TNT) 공격으로 정신을 잃은 뒤 고립됐다가 탈출에 성공했다. 탈출 과정에서 보았던 적진의 상황을 아군에 보고해 차후 반격작전에 크게 기여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이날 수여식에 참석하지 못한 문학연(91) 하사(당시 병장)도 보은지구 패잔병 토벌 작전에서 적을 사살·생포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이외에 이미 고인이 된 4명의 전투 영웅에게도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됐다. 민경호 하사(당시 상병)는 함창지구 전투에서 특공대대원으로 적을 생포했고, 최안 병장(당시 상병)은 조림산 전투에서 적 잠복조를 탐지하고 격멸한 공을 세웠다.
공상렬 병장(당시 상병)은 운산지구 전투에서 적 공격 속에서 고지를 점령하는 데 기여했고, 이해영 일병(당시 일병)은 적군에게 포위된 아군을 탈출시키고 섬멸한 공으로 훈장이 수여됐다.
이 자리에서 서욱 육군참모총장은 “늦었지만 69년이 지난 지금에라도 전투 영웅들께 훈장을 달아드리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선배 전우들의 숭고한 조국애와 군인정신을 계승해 이제는 우리 후배들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나가겠다”고 밝혔다.
무공훈장은 수여기준에 따라 태극, 을지, 충무, 화랑, 인헌으로 나누어진다. 충무무공훈장은 직접 작전에 참전하여 특출한 공적을 세움으로 아군 작전에 크게 기여한 자에게 수여된다. 화랑무공훈장은 직접 참전하여 현저한 공적을 세워 아군 작전에 크게 기여한 자에게 수여되는 훈장이다.
임현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