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축구 생중계 결국 무산…“평양 상부서 홍보말라 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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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평양에서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 남북 축구경기 생중계가 결국 불발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14일 “마지막까지 (북한 당국과 중계 문제를 협의해온 에이전시의) 중개인이 방북해 노력했지만, 어려워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오늘 오후 5시30분 월드컵 예선전 #통일부, 평양~서울 상황실 가동 #경기 진행 상황 전달하기로 #선수 “장기판은 가져가도 되나요”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15일 오후 5시 30분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원정 경기를 치른다. 1990년 10월 평양 ‘통일축구’ 친선경기 이후 29년 만의 남북 축구대결이다. 관련 상황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평양 상부에서 이번 경기와 관련해 ‘일체 홍보도 하지 말라’는 내부 지침을 북한축구협회에 내려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거액의 중계권료를 요구해 어그러졌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그보다는 평양 상부의 지시가 중계와 취재진·응원단 방북 불발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축구협회가 중계 문제를 에이전시와 순조롭게 논의해오다 최근 평양 상부 지시를 들며 묵묵부답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중개인이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일에 평양에서 북한 당국과 최종 협의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정부도 취재·중계 문제 등에  협조하라는 통지문을 보냈지만, 북한의 답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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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15일 평양 남북전을 국민에게 전달할 방안은 현재로선 ‘깜깜이’인 상황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한국 축구대표팀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과 정부서울청사 내에 각각 상황실을 가동해 경기 진행 상황을 전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인터넷과 국제전화, 휴대전화 등 북측이 보장해주는 통신수단에 따라 경기 전달 속도가 달라진다”며 “가급적 신속하게 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아시아축구연맹(AFC)이 홈페이지에 제공하는 문자 중계 서비스로 경기 상황을 파악하는 방법도 있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5일 북한-레바논전도 취재진을 제한했고, 경기도 생중계하지 않았다. 다만 북한은 경기 전 애국가 연주와 태극기 게양은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대로 이뤄진다는 점을 보장했다고 이 당국자는 밝혔다.

중계·취재·응원단 3무(無)로 ‘외로운 방북길’에 오른 한국 축구대표팀은 평양 현지에서도 ‘외로운 승부’를 펼쳐야 한다. 13일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북한 비자를 발급받고 14일 평양에 입국한 한국 측 인원은 선수단 25명과 대한축구협회 관계자 30명 등 총 55명이다. 선수 11명을 제외하면 많아야 40여명이 우리 대표팀을 응원한다. 반면 북한 팀 응원단은 최대 10만 명까지도 가능하다. 실제 1990년 통일축구 때도 한국이 선제골을 넣자 능라도 5.1경기장에 모인 10만 관중이 야유를 쏟아냈고, 결국 2대 1 북한 승리로 돌아갔다. 1박2일 방북길에 따른 체력 고갈에, 통신 두절, 김일성경기장의 인조 잔디, 일방적 응원 등이 한국 대표팀이 이겨내야 할 난관이다.

지난주 한국 축구대표팀에게 방북 교육을 한 당국자는 “여러 열악한 여건을 설명했지만, 신세대 대표팀 선수들답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며 “휴대전화 반입이 안 된단 설명에 장기판은 되느냐고 물어, 그건 가능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평양시 중구역의 김일성경기장은 1945년 10월 14일 당시 소련(러시아)에서 귀환한 김일성 주석이 연설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모란봉 기슭에 있어 모란봉경기장으로 불리다 1982년 증축해 김일성경기장으로 개칭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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