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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000㎜ 폭우…“각자 목숨 지켜라” 공포의 1박2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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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일본 자위대가 13일 태풍 하기비스로 홍수가 난 미야기현에서 주민을 구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자위대가 13일 태풍 하기비스로 홍수가 난 미야기현에서 주민을 구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공포의 하루가 지나갔다.

연간 강수량 40% 이틀간 쏟아져 #전철 운행 중단, 편의점·마트 휴업 #후쿠시마 폐기시설 8회 누설경보 #3300억 신칸센 120량 폐차 위기

큰비와 강풍으로 12일부터 일본을 직격했던 제19호 태풍 하기비스가 13일 일본 열도를 빠져나갔다. 13개 광역단체에 내려졌던 특별경보는 모두 해제됐지만, 지쿠마(千曲)강 제방 붕괴와 범람으로 인해 나가노(長野)현 각지에서 침수피해가 확대되는 등 일본 국민들은 13일에도 긴장을 풀지 못했다.

13일 NHK에 따르면 12일부터 13일 새벽까지 도쿄를 비롯한 간토(關東)지방과 인근 도카이(東海), 도호쿠(東北) 지방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폭우를 쏟아낸 하기비스의 영향으로 오후 9시 현재 사망자 30명, 행방불명자 15명, 부상자 177명이 발생했다.

1000만명 대피권고, 하천 77개 범람

나가노시의 하천이 범람해 도시가 물에 잠긴 모습. 일본 기상청 관측 사상 최대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나가노시의 하천이 범람해 도시가 물에 잠긴 모습. 일본 기상청 관측 사상 최대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나가노현 지쿠마강 범람의 경우 광범위한 지역에서 침수피해가 발생해 자위대가 헬기와 보트 등을 통한 구조에 나섰지만 몇 명의 주민들이 고립됐는지 피해 현황 집계가 늦어졌다. 나가노현 외에 도치기(栃木)·후쿠시마(福島)현 등에서 침수 피해가 계속되고 있어 인적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기비스는 12일 오후 7시쯤 시즈오카(靜岡)현 이즈(伊豆)반도에 상륙한 뒤 수도권 간토(關東) 지방을 중심으로 폭우를 뿌리고 북동쪽으로 진행했다.

일본 정부는 도쿄도와 12개 현 등 모두 13개 광역단체에 특별폭우경보를 발령했다. 일본 기상청은 기자회견에서 해당 지역에 “목숨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는 최고 위험 레벨”이라며 “구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행동을 하시라”고 촉구했다. NHK는 “연간 강수량의 30~40%에 해당하는 비가 하루, 이틀 사이에 쏟아진 기록적 호우”라고 밝혔다.

가나가와(神奈川) 현의 인기 온천 관광지인 하코네마치(箱根町)에는 이날 새벽까지 48시간 동안 1001㎜, 시즈오카(靜岡)현 이즈(伊豆)시 이치야마(市山)엔 760㎜가 내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13일 오후까지 하천 77개가 범람했다. 저수량이 급증한 간토 지방의 댐들이 수문을 열어 긴급방류를 하면서 강 하류 지방의 수량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도쿄에서도 세타가야(世田谷)구의 다마(多摩)강이 12일 오후 10시쯤 범람하는 등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나가노현에선 신칸센 차량센터가 침수돼 열차 120칸(량)이 물에 잠겼다. NHK는 폐차 가능성을 거론하며 “2015년 JR서일본의 유가증권보고서엔 이 신칸센 차량 120칸의 제조 비용으로 328억엔(약 3300억원)이 적혀있다”고 전했다.

후쿠시마 원전 폐기물 처리 건물에선 태풍의 영향으로 8차례 누설경보가 울리기도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21개 광역단체에 1000만 명이 넘는 주민들에게 피난지시 또는 피난권고가 내려졌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12일 하루 수도 도쿄의 도시기능이 정지상태에 빠졌다”고 했다.

전철과 지하철이 사전 계획에 따라 운행을 중단하는 ‘계획 운휴’에 돌입했고, 1000개 매장이 휴업한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백화점, 마트들이 대부분 임시 휴업했다. 도쿄의 역 중 가장 붐빈다는 신주쿠역, 젊은이들로 북적대는 시부야역 주변도 인적을 찾기 어려웠다.

한국 초청 배제했던 관함식 취소

시부야역 주변에선 쥐들이 떼를 지어 활보하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이같은 기록적인 폭우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7월 서일본 호우(사망자 263명, 행방불명 8명) 때 보다는 인명 피해가 적었다. 일본 사회 전체가 태풍 피해에 미리 대비한 것이 피해를 줄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기상청은 태풍접근 3일 전부터 대대적인 주의 환기에 돌입했다. “이즈(伊豆)반도를 따라 흐르는 가노가와(狩野川)가 범람해 사망자가 1200명을 넘었던 1958년 태풍에 필적할 것”이라고 경계를 촉구했다. 국토교통성과 각 지자체는 특별폭우경보가 발령된 지역이나 주변 지역 주민, 하천 범람의 우려가 있는 지역의 주민들은 물론 위험 지역 밖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까지도 사전 대피 등 주의를 촉구하는 휴대폰 메시지와 경보를 하루종일 발송했다.

일본의 NHK는 물론 주요 민영방송들은 12일부터 재해방송 체제를 유지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14일 도쿄 인근 가나가와(神奈川)현 사가미(相模)만에서 개최할 예정이던 해상자위대 주최 국제관함식을 취소했다. “태풍 피해에 대한 대응을 우선시하겠다”면서다. 3년에 한 번 개최되는 관함식에 한국은 초청을 받지 못했고, 중국을 비롯한 7개국의 군함이 참가할 예정이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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