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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벌금 1800만원 냈다···축구 약체 홍콩의 '축구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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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현지시간) 이라크 바스라 스포츠시티 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 홍콩과 이라크 경기에서 홍콩의 알렉산더 아칸데(오른쪽) 선수와 이라크 알라 알리 음하위 선수가 충돌하고 있다.이라크가 2대0으로 이겼다.[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일(현지시간) 이라크 바스라 스포츠시티 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 홍콩과 이라크 경기에서 홍콩의 알렉산더 아칸데(오른쪽) 선수와 이라크 알라 알리 음하위 선수가 충돌하고 있다.이라크가 2대0으로 이겼다.[로이터=연합뉴스]

홍콩은 축구 약체다.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에 참가 중이지만, 1무 2패로 조 최하위를 달리는 홍콩이 예선을 통과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FIFA, 9월 홍콩-이란 경기 지적 #홍콩시민들 경기 중 민주화 시위 #중국국가 거부 검은색 홍콩기 들어 #2015년도 징계 11월 홈경기 주목

그럼에도 홍콩 축구, 정확히는 홍콩축구협회(HKFA)가 세계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사실이 보도되면서다. AP·AFP통신 등은 FIFA가 지난 9일 홍콩축구협회에 1만5000 스위스프랑(약 18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 사실을 전했다. 이유는 경기 중 정치 메시지 전파 행위였다.

지난달 10일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린 홍콩과 이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 경기 직전 홍콩 시민들이 중국 국가가 연주되자 항의의 표시로 뒤를 돌아 서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지난달 10일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린 홍콩과 이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 경기 직전 홍콩 시민들이 중국 국가가 연주되자 항의의 표시로 뒤를 돌아 서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FIFA는 축구 경기장 내 정치 및 종교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 FIFA는 “홍콩축구협회에 벌금 처분을 내린 것은 국가 연주 중 방해 행위 때문”이라며 “(홍콩 관중들이 경기 중에) 스포츠에 적합하지 않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수단을 사용했다”고 징계 이유를 설명했다.

FIFA가 문제 삼은 건, 지난달 10일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란과 홍콩의 월드컵 2차 예선 경기다. 경기 시작 전 홍콩 축구대표팀을 상징하는 국가로 중국 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이 흘러나오자 관중석의 홍콩 시민들이 일제히 뒤로 돌아섰다. 가운뎃손가락을 올리는 욕을 하거나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많은 관중이 중국 국가 대신 ‘Glory to Hong Kong(홍콩에 영광을)’이란 제목의 노래를 불렀다. 홍콩의 반중(反中) 시위대들이 ‘홍콩의 국가’라며 시위 도중 부르는 노래다. 중국과 홍콩 정부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빨간 색 바탕을 검게 칠한 홍콩 깃발을 들거나, 영국이 홍콩을 통치하던 시절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난 6월 송환법 도입 반대로 시작된 홍콩 시민의 민주화 요구 시위를 방불케 했다.

지난달 10일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린 홍콩과 이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 경기 직전 중국 국가가 흘러나오자 검은색 홍콩 깃발을 흔들고 있다.[EPA=연합뉴스]

지난달 10일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린 홍콩과 이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 경기 직전 중국 국가가 흘러나오자 검은색 홍콩 깃발을 흔들고 있다.[EPA=연합뉴스]

이날 경기는 2대0 이란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경기장을 찾은 홍콩 시민들은 승부보다 국제사회에 홍콩의 상황을 알릴 수 있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당시 홍콩 시민 마블러스 챈은 알자지라에 “오늘 축구 경기는 홍콩 시민의 요구를 전세계에 표현할 기회”라고 말했다. AFP통신과 인터뷰한 한 홍콩 시민은 “우리의 요구를 국제사회에 어필하는 가장 평화로운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0일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린 홍콩과 이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 경기 중 홍콩 시민이 '홍콩을 위해 싸워달라'는 메시지가 적힌 현수막을 들어보이고 있다.[EPA=연합뉴스]

지난달 10일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린 홍콩과 이란의 2022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 경기 중 홍콩 시민이 '홍콩을 위해 싸워달라'는 메시지가 적힌 현수막을 들어보이고 있다.[EPA=연합뉴스]

홍콩 시민들이 국제축구 경기 중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중국과의 경기에 앞서 중국 국가가 연주되자 홍콩 관중들이 야유를 보냈다. 당시에도 홍콩축구협회는 FIFA에 1만 스위스프랑(약 1200만원)의 벌금을 냈다. 이후 홍콩 시민들은 홍콩에서 벌어지는 국제축구 경기에서 지속적으로 중국에 대한 항의표시를 해왔다.
홍콩 축구 대표팀은 다음 달 14일 홍콩 스타디움에서 바레인과 월드컵 2차 예선 경기를 갖는다. FIFA의 징계 처분에도 불구하고 홍콩 시민들은 이날도 경기장에서 민주화 요구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4일 홍콩 정부가 복면금지법을 제정하면서 홍콩 시위대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日욱일기 응원 벌금…韓선수 메달 박탈 위기

지난 2017년 4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G조 조별예선 5차전 수원삼성블루윙즈 대 가와사키프론탈레의 경기 모습. 당시 일본 응원단이 전범기인 욱일기를 내걸어 응원했고, AFC는 이를 문제삼아 가와사키 구단에 1만5000달러의 벌금을 내렸다.[중앙포토]

지난 2017년 4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G조 조별예선 5차전 수원삼성블루윙즈 대 가와사키프론탈레의 경기 모습. 당시 일본 응원단이 전범기인 욱일기를 내걸어 응원했고, AFC는 이를 문제삼아 가와사키 구단에 1만5000달러의 벌금을 내렸다.[중앙포토]

국제축구 경기 중 정치적 의사표현 행위로 징계를 받은 경우는 홍콩 만이 아니다. 2017년 4월 수원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5차전 수원 삼성과 일본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경기에서 가와사키 응원단이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 응원을 펼쳐 논란이 됐다. 당시 AFC 측은 “가와사키 응원단의 행동은 상대 팀에 모욕감을 주거나 정치적으로 인식되는 슬로건을 내보이는 행위를 금지하는 징계규정을 위반했다”며 가와사키 구단에 벌금 1만5000달러(약 1780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같은 이유로 징계 받은 한국 축구선수도 있다. 2012년 8월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3·4위전에서 한국이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경기 직후 박종우(현 부산) 선수가 관중으로부터 건네받은 종이를 들고 경기장을 내달렸는데, 종이엔 ‘독도는 우리 땅’이라 적혀 있었다. 이에 FIFA는 박종우 선수에게 A매치 2경기 출전 정지와 함께 3500 스위스프랑(약 42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다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우발적 행동이었다는 박종우의 해명을 받아들여 메달을 박탈하진 않았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3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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