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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덕후들의 '덕질'은?

중앙일보

입력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9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월트디즈니코리아 매장에서 관람객들이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9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월트디즈니코리아 매장에서 관람객들이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이다. 어떤 분야에 집중적으로 시간과 정성을 쏟고, 몰두하는, 열정과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다. 자동차 덕후, 운동화 덕후, 게임 덕후, 커피 덕후 등 디지털을 통해 한 번쯤 접해본 일종의 '마니아'. 그런데 조선 시대에도 덕후들이 있었다면 어떨까. 조선 시대 덕후들은 무엇에 열정을 쏟아부었을까. 한국국학진흥원이 웹진 담담(談) 10월호에서 '조선 시대 덕후들'을 소개했다.

18세기 조선 덕후 처음 등장 #덕질은 담배·꽃·벼류·여행 등 #한국국학진흥원 웹진서 공개 #조선 최고 물맛은 충주 달천수 #

조선 시대 덕후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대략 18세기다. 청나라를 통해 서구의 신문물이 막 들어오기 시작한 때다. 덕후들을 당시 주변에선 '벽(癖)', '광(狂)', '치(痴)' 등으로 불렀다. '병든', '미친', '어리석은'과 같은 부정적인 호칭이다.

조선 시대 관련 도서 등을 살핀 소설가 김현경 씨는 웹진 담담(談)에서 조선 시대 덕후 베스트 5를 소개했다. 우선 담배 덕후. 선비 이옥(1760~1813)이다. 그는 담배를 피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담배에 관해 쓴 『연경』이라는 책을 집필했을 만큼 담배를 즐겼다.

꽃 덕후도 있다. 유박(1730~1787)이 유명했다. 백화원이라는 화원을 직접 경영한 그는 큰 돈을 들여 다양한 꽃을 수집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꽃에 대한 연구 결과를 『화암수록』이라는 책으로 남겼다.

책 덕후는 선비 이덕무(1741~1793)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생계를 잇기 힘든 형편에도 당시 책 수백권을 모았다. 책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책 수백권을 모으는 것은 현재 어렵지 않지만, 예전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책 한권 사 모으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덕무는 직접 읽은 책만 2만권에 달했다.

여행 덕후는 선비 정란(1725~1791)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정란은 전국 각지를 여행했다. 여행기도 썼다. 오늘날의 여행작가인 셈이다. 백두산과 한라산 여행을 당시론 노인으로 불릴 나이인 50대 후반에 달성했다. 선비 정철조(1730~1781)는 대표적인 벼루 덕후. 그는 별다른 연장도 없이 칼 하나를 갖고 다니며 적당한 돌만 보면 닥치는 대로 깎아 벼루를 만들었다고 한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벼루는 누가 달라고 하면 공짜로 다 주고, 또 만들기를 반복했다.

물맛에 대해 까다롭던 조선 선비들. [삽화 한국국학진흥원]

물맛에 대해 까다롭던 조선 선비들. [삽화 한국국학진흥원]

물도 덕후들이 열정을 쏟은 분야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조선 시대 선비들의 일기류를 분석한 결과, 조선 시대 선현 대부분은 때와 장소에 따라 물맛을 섬세하게 분류하는 물 덕후들이었다. 1841년 4월 5일, 선비 강희영은 『금강일기』를 통해 금강산 물맛을 상세히 기록했다. '금강수를 마신다. 금강수는 매우 맑고 차서 사람의 피부와 뼈를 침으로 찌르는 것 같았다.'고 했다. 강희영은 일행들과 석 잔의 금강수를 더 마셨다고 일기에 적었다. 금강수가 약을 달이는 데 쓰이는 귀한 물이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당시 선비들은 물의 위치와 맛에 따라 다르게 불렀다. 서울 북악산을 중심으로 오른쪽 인왕산 줄기에서 흐르는 물을 '백호수', 왼쪽 삼청동 뒷산에 흐르는 물은 '청룡수', 남산에서 흐르는 물은 '주작수'라고 불렀다. 선비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물맛 좋은 물로는 충주의 '달천수'를 꼽았다고 한다. 오대산에서 나와 한강으로 흘러드는 '우중수'를 둘째로, 속리산에서 흐르는 '삼타수'를 그다음으로 쳤다고 한다.

안동=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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