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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차, 방울토마토… 시작은 이스라엘 대학 캠퍼스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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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스라엘이 낳은 세계적 자율주행 시스템 기업 모빌아이는 최근 사세 확장과 함께 예루살렘 내 새로운 캠퍼스로 본사와 연구소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8월27일 새 캠퍼스 착공식을 찾아 자율주행차를 시승하고 있다. [UPI=연합]

이스라엘이 낳은 세계적 자율주행 시스템 기업 모빌아이는 최근 사세 확장과 함께 예루살렘 내 새로운 캠퍼스로 본사와 연구소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8월27일 새 캠퍼스 착공식을 찾아 자율주행차를 시승하고 있다. [UPI=연합]

 제조업 기반이 약한 이스라엘의 성공 스토리는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히든 챔피언’이 되는 또 다른 길을 제시한다. 철저한 기술사업화와 스타트업 창업, 인수ㆍ합병(M&A)이 그 비결이다. 이스라엘은 1980~90년대 살인적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에 시달렸다. 팔레스타인 분쟁에 공산권 붕괴까지 이어지면서 100만 명이 넘는 러시아계 유대인이 대거 몰려든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ㆍ연구소의 기술 사업화와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히브리대의 이숨과 와이즈만연구소의 예다로 대표되는 이스라엘 9대 대학 기술지주회사는 연구실 안에서 잠자고 있던 기술을 시장으로 이끌어냈다. 정부와 한 몸이 된 벤처 투자 펀드와 인큐베이터는 스타트업들은 카메라 센서 부문 세계시장 점유율 95%를 기록하고 있는 모빌아이처럼 세계가 주목하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혁신 생태계 만든 기술지주회사 #대학 R&D 성과 발굴해 사업화 #17조원 가치 모빌아이도 키워 #이숨·예다 로열티 수입 1800억원

지난달 23일 오후 방문한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 있는 히브리대 캠퍼스. 상대성이론을 낳은 앨버트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12명 히브리대 설립자들의 초상이 도서관 건물 1층 입구에 걸려 있다. 메인홀을 지나 왼쪽 복도에 들어서니 ‘혁신가의 길(Innovators Way)’이란 전시공간이 나타났다. 모빌아이의 창업자 암논 샤슈아, 지구촌 어디나 샐러드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방울 토마토를 만들어낸 하임 라비노비치 등 20명의 사진과 업적이 전시돼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히브리대 교수 출신이란 점이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스타트업 내이션(Start-up Nationㆍ창업국가)’으로 잘 알려진 이스라엘의 힘의 원천은 기술 상용화에서 시작한다. 대학ㆍ연구소의 실험실 속 연구 결과물이 논문 실적 경쟁에 그치지 않고, 창업을 통해 시장으로 나오고 세계가 주목하는 기업으로 성장한다. 이스라엘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에서 세계 1ㆍ2위를 다투지만 생산성에서는 21위(블룸버그 2018 혁신지수)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과는 차별화된다.

.예루살렘 히브리대 구내에 전시된 '혁신가의 길'. 모빌아이 등 히브리대가 낳은 주요 성과들이 전시돼 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 구내에 전시된 '혁신가의 길'. 모빌아이 등 히브리대가 낳은 주요 성과들이 전시돼 있다.

기술 상용화는 대학ㆍ연구소의 기술지주회사들이 담당한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대학 히브리대에는 이숨(Yisumm)이 있다. 1964년 설립된 이숨은 현재 세계 3위의 기술이전회사다. 예루살렘 캠퍼스 내 기숙사 옆 소박한 단층 건물에 자리 잡고 있지만 성과는 놀랍다. 히브리어로 ‘실행(application)’이란 뜻에 걸맞게 실험실 속 우수 연구성과를 발굴해 ‘사업화’로 이끌어낸다. 지금까지 특허만 1만750건에 이르며, 180개의 회사가 이숨에서 싹을 틔워 독립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로열티로만 6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모빌아이 역시 이숨을 통해 세상으로 나왔다. 암논 샤슈야 모빌아이 회장은 히브리대 컴퓨터과학과 교수 출신이다. 뇌ㆍ인지공학을 전공한 샤슈야 교수는 창업 붐이 일기 시작하던 99년 이숨의 도움을 얻어 모빌아이를 설립했다. 2014년 미국 나스닥에서 이스라엘 회사로는 최대 규모로 상장에 성공한 모빌아이는 2017년 3월 약 17조원에 인텔에 인수되는 대박을 터뜨렸다. 샤슈야 회장은 지금도 모빌아이 회장 겸 인텔의 수석 부사장 타이틀을 가지고 인텔그룹 산하 자율주행 관련 모든 부문을 총괄하고 있다.

르호봇에 자리한 세계 5대 기초과학연구소 중 하나인 와이즈만연구소의 기술지주회사 ‘예다(Yeda)’는 세계 최초와 최대의 타이틀을 모두 거머쥔 곳이다. 히브리어로 ‘지식’이란 뜻의 예다는 1959년 와이즈만 연구소의 성과를 사업화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설립됐다. 전 세계 기술지주회사의 롤모델이 된 곳이 바로 예다다. 세계 74개국으로 기술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로열티 수입만 매년 1000억원이 넘는다. 이스라엘이 낳은 세계적 제약회사 테바의 대표약품인 다발성 경화증 치료제 코팍손이 와이즈만에서 예다를 거쳐 나왔다.

이스라엘의 경제와 창업 생태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이스라엘의 경제와 창업 생태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모데카이 셰베스 와이즈만연구소 부총장 겸 예다 이사회장은 “이스라엘은 기초연구를 포함한 모든 연구에서 기술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연구자들은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어야 하지만 기술지주회사는 최고의 기술이전 전문가들로 구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오전 취재진이 예다를 방문했을 때는 마침 한국 바이오 중견기업 바이오리더스의 박영철 회장이 와 있었다. 바이오리더스는 지난 8월 1000만 달러를 투자해 와이즈만연구소와 함께 조인트벤처 ‘퀸트리젠’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와이즈만의 기술을 바탕으로 암 억제 유전자인 p53 유전자를 활용한 신약을 개발할 계획이다.

박영철 회장은 “바이오리더스에 71억원을 투자한 이스라엘 요즈마펀드가 와이즈만과 한국 바이오리더스의 다리를 놨다”며 “세계 최초의 자궁경부 상피이형증 치료제 등 여러 단계의 임상 과정을 거치고 있는 바이오리더스의 성과를 요즈마와 와이즈만이 높게 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재 요즈마그룹 아시아총괄대표는 “이스라엘에는 히브리대ㆍ와이즈만연구소를 비롯한 9개 주요 대학ㆍ연구소에 독립된 기술지주회사를 두고 있다”며 “대학이 기술혁신의 원천이 돼 창업의 씨를 뿌리고 엑셀러레이터와 펀드가 스타트업을 키워내는 혁신과 창업의 생태계를 통해 세계시장으로 뻗어가는 이스라엘 기업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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