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투자 한다던 국민연금, 한진칼 주주권 행사 뒤 지분 절반 처분

중앙일보

입력 2019.10.1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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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서울 중구 한진칼 사옥 모습. [뉴스1]

서울 중구 한진칼 사옥 모습. [뉴스1]

국민연금이 한진칼에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한 뒤 3개월도 안 돼 보유 지분의 절반 이상을 매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기 투자자로서 주주가치를 높여 장기적인 수익률을 높인다는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원칙) 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3월 횡령임원 해임 정관변경 요구
“위탁 투자사에 개입 안했다” 발뺌
특정기업 길들이기 지적 나와

1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명연 의원(자유한국당)이 공개한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3월 29일 사상 첫 적극적 주주권(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해 한진칼에 정관변경을 요구했다. 그 이후 3개월 만에 기존 한진칼 지분율(7.34%)의 절반이 넘는 3.89%를 매도했다.

지난 1월 16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진칼에 대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시사하면서 “국민연금은 장기 투자자로서 단기보다 장기 수익률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지난 2월 1일 국민연금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한진칼에 대해 제한적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를 의결했다. 국민연금이 투자기업에 대해 경영참여를 결정한 건 한진칼이 처음이다.

당시 기금운용위는 지난 3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임원이 횡령·배임을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는 경우 임원직에서 자동 해임된다’는 내용을 포함하는 정관 변경 안건을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정관 변경은 경영참여 주주권 가운데 가장 강도가 약한 조치다. 좀 더 센 조치로는 임원 해임, 사외이사 선임, 의결권 사전공시 등이 있다.

김 의원은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한 이후에 한진칼의 지분을 매도하기 시작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월 16일 국민연금이 한진칼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시사할 당시 지분율은 7.34%였지만 정관변경 안건이 상정된 직후인 지난 3월 말에는 보유지분율이 6.19%로 축소됐다. 이어 4월 말 4.12%, 5월 말 3.78%, 6월 말 3.45%로 줄었다. 지속해서 지분을 매도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공단은 “한진칼의 지분은 전량 위탁 투자사의 지분으로 지분 변화에 직접 개입할 수 없었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 의원은 “애초에 장기 보유가 불가능한 위탁 투자사 보유종목에 대해 ‘장기수익률 제고’를 위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한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결국 스튜어드십코드의 취지가 왜곡되고 무색게 하는 것으로 특정 기업 길들이기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결과를 낳았다”라고 지적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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