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마을을 만들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낮에 (집에) 계신 데 소음은 어떻게 하죠.” 페어(태국·29)… “할아버지, 할머니 잘 안 들리신대요. (웃음)” 마야다(이집트·25)… “표를 사서 들어오게끔 하면 관리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말리(스리랑카·33).
17개국 한국어 교사 19명 연수 와 #40시간 비행기 4번 갈아탄 사람도 #한국어 관심 많은데 교재가 없어 #“돌아가면 내가 교재 만들거예요”
지난 2일 오전 강원도 춘천에 있는 한림대의 한 강의실에서 진행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벽화 마을 만들기’를 주제로 한 수업에서 외국인들이 나눈 대화다. 50분가량 진행된 토론형 수업에서 학생들은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의견을 표현했다.
이들은 한림대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마련한 ‘한국어 교사 양성 및 능력 배양’ 과정에 참가한 외국인이다. 에콰도르와 페루·이집트·미얀마 등 17개국에서 온 19명이 참가했다.
“한국말 어려워서 포기한 사람 많아요. 볼리비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 교재 제가 만들 겁니다.” 수업이 끝난 뒤 근처 카페에서 만난 로레나(32·여)는 한국에 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한국어 교재를 꾸준히 사고 있다. 지난달에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까지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장 쓰기의 모든 것』 등 한국어 교육 관련 책 14권을 샀다.
볼리비아 봉사단체 등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로레나는 “볼리비아로 돌아가면 교재 제작과 함께 한국어 말하기 동아리부터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로레나처럼 남미에서 온 참가자는 대부분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는 등 30시간 넘는 이동시간도 마다치 않고 한국을 찾았다. 로레나의 경우 한국에 오는 데 40시간이나 걸렸다. 직항이 없어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에서 출발해 수도인 라파스, 페루 리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거쳐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오기 위해 탄 비행기만 총 4대다. 그는 “한국어에 관심 많은 친구가 ‘책이 없어요. 책 좀 빌려주세요’라고 말해 한국에 가기로 결심했다”며 “사고 싶은 책은 많은데 다 가져갈 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콜롬비아에서 온 실바나(22·여)도 프랑스 파리를 거쳐 30시간 만에 한국에 도착했다. 실바나는 한국 방문이 두 번째다. 2017년 7월 한국외국어대에 교환학생으로 와 1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했다.
하베리아나 대학에서 어학당 조교로 일하는 실바나는 한국인 교수가 수업할 때 통역을 담당한다. 교수 대신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벌써 4차례나 수업을 했다. 그 역시 요즘 수업 때 활용할 교재와 물품을 사고 있다. 지난달 27일 경북 안동을 방문했을 때 하회탈과 부채도 샀다.
실바나는 “앞으로 한국의 음식·역사·경제와 같은 다른 측면의 교류도 필요한데 제가 양나라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자국에 한국어 교재나 참고 자료가 턱없이 부족해 한국어를 교육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이유로 유튜브에 있는 한국어로 된 ‘숫자송’과 ‘가나다송’ ‘곰 세 마리’ 등을 교재로 많이 활용한다고 했다. 쉽고 재밌는 ‘곰 세 마리’는 특히 인기가 높다고 했다.
한림대와 KOICA는 한국어 교재가 부족한 나라에 ‘한국어 교육전문 프로젝트 봉사단’을 파견하는 등 현지 사정에 맞는 교재를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 사업을 운영 중이다. 앞으로 이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양기웅 한림대 글로벌협력대학원 원장은 “현지인과 협업해 교재를 개발하고 있다”며 “교재는 무상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전자책 등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15일부터 오는 11월 2일까지 총 80일간 한국어 교육과 문화를 체험한 참가자들은 나라별로 ‘자국의 한국어 교육 현황 및 개선점’ 등을 주제로 발표한 뒤 돌아간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