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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선 곰 세 마리 따라 부르며 한국어 배워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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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2일 한림대 인근에서 만난 로레나(32·볼 리비아·왼쪽)와 실바나(22·콜롬비아)가 한국어 교재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 2일 한림대 인근에서 만난 로레나(32·볼 리비아·왼쪽)와 실바나(22·콜롬비아)가 한국어 교재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박진호 기자

“벽화 마을을 만들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낮에 (집에) 계신 데 소음은 어떻게 하죠.” 페어(태국·29)… “할아버지, 할머니 잘 안 들리신대요. (웃음)” 마야다(이집트·25)… “표를 사서 들어오게끔 하면 관리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말리(스리랑카·33).

17개국 한국어 교사 19명 연수 와 #40시간 비행기 4번 갈아탄 사람도 #한국어 관심 많은데 교재가 없어 #“돌아가면 내가 교재 만들거예요”

지난 2일 오전 강원도 춘천에 있는 한림대의 한 강의실에서 진행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벽화 마을 만들기’를 주제로 한 수업에서 외국인들이 나눈 대화다. 50분가량 진행된 토론형 수업에서 학생들은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의견을 표현했다.

이들은 한림대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마련한 ‘한국어 교사 양성 및 능력 배양’ 과정에 참가한 외국인이다. 에콰도르와 페루·이집트·미얀마 등 17개국에서 온 19명이 참가했다.

“한국말 어려워서 포기한 사람 많아요. 볼리비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 교재 제가 만들 겁니다.” 수업이 끝난 뒤 근처 카페에서 만난 로레나(32·여)는 한국에 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한국어 교재를 꾸준히 사고 있다. 지난달에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까지가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장 쓰기의 모든 것』 등 한국어 교육 관련 책 14권을 샀다.

볼리비아 봉사단체 등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로레나는 “볼리비아로 돌아가면 교재 제작과 함께 한국어 말하기 동아리부터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로레나처럼 남미에서 온 참가자는 대부분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는 등 30시간 넘는 이동시간도 마다치 않고 한국을 찾았다. 로레나의 경우 한국에 오는 데 40시간이나 걸렸다. 직항이 없어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에서 출발해 수도인 라파스, 페루 리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거쳐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오기 위해 탄 비행기만 총 4대다. 그는 “한국어에 관심 많은 친구가 ‘책이 없어요. 책 좀 빌려주세요’라고 말해 한국에 가기로 결심했다”며 “사고 싶은 책은 많은데 다 가져갈 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콜롬비아에서 온 실바나(22·여)도 프랑스 파리를 거쳐 30시간 만에 한국에 도착했다. 실바나는 한국 방문이 두 번째다. 2017년 7월 한국외국어대에 교환학생으로 와 1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했다.

하베리아나 대학에서 어학당 조교로 일하는 실바나는 한국인 교수가 수업할 때 통역을 담당한다. 교수 대신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벌써 4차례나 수업을 했다. 그 역시 요즘 수업 때 활용할 교재와 물품을 사고 있다. 지난달 27일 경북 안동을 방문했을 때 하회탈과 부채도 샀다.

실바나는 “앞으로 한국의 음식·역사·경제와 같은 다른 측면의 교류도 필요한데 제가 양나라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자국에 한국어 교재나 참고 자료가 턱없이 부족해 한국어를 교육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이유로 유튜브에 있는 한국어로 된 ‘숫자송’과 ‘가나다송’ ‘곰 세 마리’ 등을 교재로 많이 활용한다고 했다. 쉽고 재밌는 ‘곰 세 마리’는 특히 인기가 높다고 했다.

한림대와 KOICA는 한국어 교재가 부족한 나라에 ‘한국어 교육전문 프로젝트 봉사단’을 파견하는 등 현지 사정에 맞는 교재를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 사업을 운영 중이다. 앞으로 이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양기웅 한림대 글로벌협력대학원 원장은 “현지인과 협업해 교재를 개발하고 있다”며 “교재는 무상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전자책 등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15일부터 오는 11월 2일까지 총 80일간 한국어 교육과 문화를 체험한 참가자들은 나라별로 ‘자국의 한국어 교육 현황 및 개선점’ 등을 주제로 발표한 뒤 돌아간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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