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하나인 듯 둘이다…노무현이면 조국을 경질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문재인·노무현의 결정적 차이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8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오른쪽은 노 전 대통령 그림). [중앙포토]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8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오른쪽은 노 전 대통령 그림). [중앙포토]

하나인 듯 둘이다. ‘운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반응했다. “나야 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문재인의 운명』) 그 글귀는 상속자의 고뇌다. 하지만 권력의 속성은 분화다. 살아 있는 권력은 사라진 정권과의 차별화에 나선다. 그 순간 운명의 길은 얽히며 갈라진다.

[박보균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문’진영 보호의 트라이벌리즘 득세 #‘노’지지층 이탈 극복한 유연한 진보 #노무현의 ‘무장평화론’이 경계한 #구한말 비극의 그림자 서려 있어

나라가 쪼개졌다. 광화문과 서초동의 함성은 충돌한다. 그곳은 보수우파와 진보좌파의 진지다. 조국 사태로 험악한 대치다. ‘퇴진’과 ‘수호’의 전선은 긴박하다. 8일 문 대통령의 시각이 드러났다. “국론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순간 갈라짐은 깊어진다.

좌파는 노무현의 비극을 소환했다. 논두렁 시계의 기억은 윤석열 총장의 검찰 성토로 옮겨진다. 노무현의 유산은 다층적이다. 검찰 개혁은 그의 열망이다. 다른 소망은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이다. 노 대통령이면 두 개의 풍광에 어떻게 응수했을까.

‘문·노’ 현·전직 대통령은 원칙주의자다. 그들의 이념은 진보좌파다. 지도력의 구성요소는 비슷하다. 하지만 실천 과정은 다르다. 국정은 복잡한 이해관계의 조화·돌파다. 노무현 정권의 접근은 명분과 실용의 전략적 융합이다. 그는 “참여정부 노선은 유연한 진보다. 교조적 진보에 대응하는 개념”이라고 했다(2006년 청와대 브리핑). 그 때문에 강경 좌파와 불화를 겪었다.

대통령은 2012년 대선 패배 보고서를 썼다. “우리의 확장을 가로막았던 근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2007년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왼쪽)과 문 비서실장. [중앙포토]

2007년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왼쪽)과 문 비서실장. [중앙포토]

(『1219 끝이 시작이다』) 성찰은 잊혀졌다. 문재인 정권은 고집과 독주다. 그들만의 신념·원리를 고수한다. 그것은 근본·교조주의 특성이다. 탈원전·소득주도성장은 바뀌지 않는다.

‘문·노’ 두 사람은 노동친화적이다. 대통령 취임 뒤 노무현의 노동개혁 착수는 의외였다. 노동단체의 항의는 거셌다. 그 시절 노동장관 김대환(인하대 명예교수)은 이렇게 정리한다. “노 대통령은 국정 기조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라면 지금 정권의 민주노총 우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반대했을 것이다.” 국정 성취의 발판은 지도자의 변신과 용기다. 그것은 노무현 리더십의 매력이다. 민노총은 촛불 탄핵의 주역을 자처한다. 민노총은 ‘조국 수호’의 전위에 있다. 문 정권은 대기업 노조와 결속한다. 그것은 권력 안위를 대비한 정치보험이다.

촛불 광장의 원조는 노 정권이다. 그때 386운동권은 권력 무대에 진입했다. 2004년 노무현은 탄핵 위기를 겪었다. 좌파진보 진영은 그를 수호했다. 노 대통령은 빚을 졌다. 그는 그 부담을 국정에 반영하지 않았다. 임기 후반 승부수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와 제주 해군기지다. 그것은 국익과 실용의 질주다. 지지층은 그를 비난했다.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다.”

문재인·노무현 정권의 국정 관리

문재인·노무현 정권의 국정 관리

문재인 정권은 진영논리에 성실하다. 386 출신의 위상은 강화됐다. 김성재 전 문화장관(김대중 아카데미원장)의 진단은 이렇다. "적과 동지로 나누는 운동권 권력의 이분법은 심해졌다. 트라이벌리즘(tribalism·부족주의)의 행태다.” 부족주의는 폐쇄·배타적이다. 내 편의 불법은 감싸고 보호한다. 반대 진영의 비리는 용서 못할 적폐다. 조국 사태는 트라이벌리즘의 절정이다.

‘문·노’의 역사관 바탕은 비슷하다. 『문재인의 운명』은 이렇게 썼다. "대학 시절 나의 사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리영희 선생이다. 노 변호사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문 대통령은 "신영복 선생을 존경한다”고 했다(2018년 평창올림픽). 신영복은 통혁당 사건의 무기징역 장기수(1988년 가석방)였다. 그는 노무현의 고교(부산상고) 선배다. 봉하마을 노무현 생가에 그의 글씨가 걸려있다. ‘사람 사는 세상’ ‘愚公移山(우공이산)’이다. 노무현은 보수우파의 역사적 정체성을 경멸했다.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 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다.” 하지만 그의 역사이념 용광로는 포괄적이었다. 그는 거기에 실용을 넣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있었다. 미국은 파병을 요청했다. 당시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노무현의 복심(腹心)으로 불렸다. 그의 저서(『기록』)에 담긴 노무현의 파병 결단은 장엄하다. "나의 결정은 대한민국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나는 달라졌다.” 한·미 군사적 제휴는 보수의 역사관에 있다. 문 대통령의 역사주류 교체는 공세적이다. ‘김원봉 훈장 논란’은 그 정점이다.

정부의 권력은 청와대로 집중한다. 장관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이낙연 총리의 한계는 뚜렷하다. 조국 법무장관의 검찰 개혁은 속도전이다. 그것은 청와대의 검찰 장악 의도로 의심받는다.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는 그 수단이다.

그런 풍광은 노 정부와 대조적이다. 윤태영은 이렇게 회고한다(『기록』).

"노 대통령은 이해찬 총리에게 내치의 상당 부분을 맡겼다. 정동영(통일)·김근태(보건복지) 장관 등 분야별 책임 장관의 분권형 국정 운영을 도모했다.” 노무현의 검찰 개혁 구상도 권력 분산이다. 그 시절 청와대 참모진 위치는 2선이다. ‘민정수석·비서실장 문재인’도 전면을 피했다. 정작 그의 시대는 판이하다. ‘죽창가’는 조 장관의 민정수석 때 장면이다. 청와대 참모가 대중 선동에 나선 것이다. 그런 행태는 통치방식의 결정적 변모다. 권력 상속의 충격적 이탈이다. 문 대통령의 의지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는 나라 만들기’다. 권력 집중은 목표 집약의 방편일 것이다.

노무현 정치는 반전과 돌출이었다. 그는 연정(聯政)을 모색했다. 역풍이 불었다. 집권 좌파는 분통을 터뜨렸다. 야당은 교묘한 미끼라고 거부했다. 그것은 노무현식 국민통합의 노력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 약속은 깨졌다. 협치는 사라졌다. 극한 대결의 제로섬 게임이다. 민주당은 보수 궤멸을 다짐한다. 한국당은 좌파독재 타도로 맞선다.

무현 시대의 자주 안보는 갈등과 반목을 낳았다. 하지만 그는 남방(한·미 동맹, 한·미·일 공조) 노선에 충실했다. 임기 말 제주 해군기지 결심은 무장평화론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조선 말기 지정학적 비극의 재발 방지다.

문재인 시대의 한·미 동맹은 헝클어졌다. 중국은 우리를 경시한다. 한·일 관계는 최악이다. 북한은 문 대통령을 조롱한다.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仰天大笑).” 문 정권은 노무현의 고뇌와 궁리를 이어받지 않았다. 안보·외교 상황은 불길하다. 이 상태로 가면 구한말의 위기가 재현된다.

두 대통령의 구호는 같은 듯 다르다. 노무현은 ‘사람 사는 세상’이다. 문재인은 ‘사람이 먼저다’. 정치는 말이다. 노무현은 그 관계를 간파했다. "정치는 돈·권력이 아닌 말·글로 하는 것이다.” 그 구절은 그의 본능적 통찰이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는 강렬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세 구절의 나눔은 윤태영의 작품이다. 단문은 절묘하게 꽂힌다. 그 말은 문재인 언어의 기함(旗艦)이다. 그 중심 어휘는 침몰했다. 조국이 일으킨 탐욕의 거친 파도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면 조국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그는 자신의 핵심 문구를 동원했을 것이다. 그것은 반칙과 특권의 퇴출이다. 그는 조 장관을 내쳤을 것이다. 말의 타락은 국정의 난조다. 노무현의 언어 공간에서 조국은 존재할 수 없다. 김대환은 단언한다. "노 대통령은 정권이 아닌 나라를 봤다. 경질은 당연하며, 의혹이 발견됐다면 법무장관 임명도 안 됐을 것이다.”

문 정부는 ‘노 정부 2기’인가.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그것을 일축한다. 그는 원조 친노다. "문재인 정부는 권력 관리·국정 가치·인적 요소·정책에서 노무현 정부와 다르다. 조국 사태로 차이가 확연해졌다.” ‘문·노’의 같음은 옅어졌다. 다름은 선명해졌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