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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4번타고 40시간 걸려 왔다···한국어에 빠진 볼리비아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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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2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옥천동에 있는 한림대 도서관 앞에서 수업을 마친 ‘한국어 교사 양성 및 능력배양’ 과정 참가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 2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옥천동에 있는 한림대 도서관 앞에서 수업을 마친 ‘한국어 교사 양성 및 능력배양’ 과정 참가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벽화 마을을 만들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낮에 (집에) 계신 데 소음은 어떻게 하죠.” 페어(태국·29)… “할아버지, 할머니 잘 안 들리신대요. (웃음)” 마야다(이집트·25)… “들어올 때 표를 사서 들어오게끔 하면 관리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말리(스리랑카·33).

볼리비아, 페루, 이집트 한국어 배우는 사람 늘어 #외국인 한국어 강사들 춘천 한림대서 교육 받아 #17개국 19명 참가자 8월 15일부터 80일간 머물러

지난 2일 오전 강원도 춘천에 있는 한림대의 한 강의실에서 진행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벽화 마을 만들기’를 주제로 한 수업에서 외국인들이 나눈 대화다. 50분가량 진행된 토론형 수업에서 학생들은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 농담도 주고받았다.

이들은 한국을 더 깊이 알기 위해 한림대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마련한 ‘한국어 교사 양성 및 능력 배양’ 과정에 참가한 외국인이다. 세계 각지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로 콜롬비아와 볼리비아, 에콰도르·페루·이집트·모로코 등 17개국에서 온 19명의 참가자는 지난 8월 15일부터 교육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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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교사 양성 및 능력배양’과정에 참가하기 위해 볼리비아에서 온 로레나(32)와 콜롬비아에서 온 실바나(22)가 최근에 산 한국어 교재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박진호 기자.

‘한국어 교사 양성 및 능력배양’과정에 참가하기 위해 볼리비아에서 온 로레나(32)와 콜롬비아에서 온 실바나(22)가 최근에 산 한국어 교재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박진호 기자.

한국어 어려워 포기하는 이들 많아 한국 행 결심

“한국말 너무 어려워서 포기한 사람 많아요. 볼리비아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국어 교재 제가 만들 겁니다.” 수업이 끝난 뒤 근처 카페에서 만난 볼리비아 국적의 로레나(32·여)는 한국에 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한국어 교재를 꾸준히 사고 있다. 지난달 21일에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까지가 『서울대 한국어』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장 쓰기의 모든 것』등 한국어 교육 관련 책 14권을 샀다.

볼리비아 현지 교회와 봉사단체 등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로레나는 “볼리비아에선 한국어책을 구할 수 없어 많이 사가려고 한다”며 “사고 싶은 책은 많은데 다 가져갈 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로레나처럼 남미에서 온 참가자들은 대부분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는 등 30시간 넘는 이동시간도 마다치 않고 한국을 찾았다. 로레나의 경우 한국에 오는 데 40시간이나 걸렸다.

직항이 없어 볼리비아 산타크루즈에서 수도인 라파스로 가는 비행기에 올라탄 그는 비행기를 두 차례 갈아탄 뒤 페루의 수도 리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11시간을 기다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를 탄 뒤 또 한차례 경유를 거쳐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로레나가 한국에 오기 위해 탄 비행기는 총 4대다. 그는 “한국어에 관심 많은 친구가 ‘어떻게 한국어 배웠어요. 책 없어요. 책 빌려주세요’라고 물어봐 한국에 가기로 결심했다”며 “한국어를 혼자 공부했는데 발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힘들었다. 교육을 마치고 볼리비아로 돌아가면 한국어 말하기 동아리와 스페인어로 된 한국어 교재를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업 때 쓰려고 안동 하회탈과 부채 구매

콜롬비아에서 온 실바나(22·여)도 수도 산타페데보고타에서 프랑스 파리를 거쳐 한국에 도착했다. 대기 시간을 합치면 30시간이 넘게 걸렸다. ‘아싸라비아 콜롬비아’라는 말을 즐겨 쓰는 실바나는 한국 방문이 두 번째다. 2017년 7월 한국외국어대에 교환학생으로 와 1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했다.

콜롬비아 하베리아나 대학에서 외국어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실바나는 어학당 조교로 일하고 있다. 한국인 교수가 수업할 때 통역을 담당한다. 교수가 건강 문제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렵자 4차례나 대신 수업을 진행할 정도로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그도 요즘 콜롬비아로 돌아가 수업을 할 때 활용할 교재와 물품을 구매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경북 안동시를 방문했을 때 전통문화 관련 수업에 활용할 하회탈과 부채를 샀다.

실바나는 “한류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많은데 교수는 한명 밖에 없어 수업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며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뒤 한국을 알리는 일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한국의 음식, 역사, 경제와 같은 다른 측면의 교류도 필요한데 제가 양나라를 연결하는 브릿지 역할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7일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찾은 ‘한국어 교사 양성 및 능력배양’ 과정 참가자들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한림대]

지난달 27일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찾은 ‘한국어 교사 양성 및 능력배양’ 과정 참가자들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한림대]

현지에 한국어 교재 턱없이 부족해 지원 절실

참가들은 자국에 한국어 교재나 참고 자료가 턱없이 부족해 한국어를 교육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과정에 참가한 미얀마 양곤외국어대 미에 미에 머(55·여) 한국어학과 교수는 “23년간 한국어 교육 관련 일에 종사했고 대학에서 학생들의 논문 지도를 하고 있는데 참고 자료가 부족해 어려움이 많다”며 “한국대학의 도서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 등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림대와 KOICA는 한국어 교재가 있어야 하는 나라에 ‘한국어 교육전문 프로젝트 봉사단’을 파견하는 등 현지 사정에 맞는 교재를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지원 사업을 운영 중이다. 스리랑카에 이어 내년에는 베트남에 봉사단을 보낼 계획이다.

한림대 글로벌협력대학원 양기웅 원장은 “교재의 현지화를 위해 해외에 봉사단을 보내고 현지 한국어 교수들과 협업해 교재를 개발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교재는 무상으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전자책 등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할 계획”이라며 “이번 교육 과정도 참가자들이 현지에 맞는 교재를 만들 수 있도록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 목표다. 교육이 끝난 뒤에도 교재 제작 관련 지원은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번 한국어 교사 양성 과정 참가자들은 한국어 교육 관련 기관에서 1년 이상의 교육 경험이 있는 강사 이상 교사진으로 한국어능력시험(TOPIK) 4급 이상 소지자다. 4급 이상 소지자는 ‘뉴스, 신문 기사’ 중 평이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지난 8월 15일부터 오는 11월 2일까지 총 80일간 ‘비원어민 교사를 위한 한국어 교사론’ 등 다양한 한국어 교육과 문화를 체험한 참가자들은 나라별로 ‘자국의 한국어 교육 현황 및 개선점’ 등을 주제로 발표한 뒤 자국으로 돌아간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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