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실로 신원 미상의 뇌경색(뇌혈관이 막힘) 환자가 실려 왔다. 중앙의료원 신경외과 A의사는 수술 동의서에 환자 지장을 찍었다. 두개골 내 압력을 낮추기 위해 야간 수술에 들어갔다. A의사는 환자의 머리를 열고 혈관을 연결하는 ‘혈관문합술’이라는 수술법을 처음 시도했다. 수술 종료 4분 후 "혈관문합술 첫 사례"라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환자 뇌 사진을 올렸다. 환자는 수술 34시간 후에 숨졌다.
김순례 의원, 국감서 A의사 수술 지적 #"4년간 뇌출혈 등 수술 38건 문제 추정 #뇌사 상태 많고 무의식 '지장' 동의 다수" #A의사 "환자 위급하면 무조건 수술 해야 #노숙자 여부 등 안 따져, 윤리 위반 없어" #김 의원 "정 원장 미리 알았지만 조치 X"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은 8일 국립중앙의료원 국정감사에서 "두개골 수술과 환자 사망이 유독 한 명의 의사(A의사를 지칭)에게 수십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A의사가 2015~2018년 수술한 뇌경색·뇌출혈 환자 중 38명(상당수가 뇌출혈)에게서 문제점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 중 28명은 수술 후 3일을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환자 대부분은 노숙인이며 22명은 뇌사(腦死) 상태이거나 뇌사에 가까웠다. 의식이 없거나 희미한 환자의 지장을 찍은 것으로 의심되는 수술 동의서가 10건이며, 17명은 수술 후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지 않았다"고 말했다.
뇌 수술은 대개 5~6시간 걸린다. 김 의원 자료에 따르면 38명 중 5명은 1시간이 채 안 걸렸다. 1~2시간은 12명, 2~3시간은 4명이었다. 한 국립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B씨는 "뇌사가 확실한 상황이라면 수술 자체가 의미가 없다"며 "뇌 수술 후엔 환자의 뇌 CT를 찍는 게 기본인데, 찍지 않은 것은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중앙의료원 사정을 잘 아는 C씨는 "A의사가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실상 '수술 연습'을 한 것처럼 보인다. 다른 의사들이 말렸는데도 수술을 강행한 케이스가 있다"며 "무연고·저소득 환자가 많아 이슈화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B교수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수술 동의서는 환자 서명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A의사는 "중증 응급환자가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뇌사여부를 따질 여유가 없어 무조건 수술을 진행할 수 밖에 없다. 노숙자이냐, 보호자가 있냐에 따라 치료가 달라지지 않는다"면서 "환자 상태가 안 좋은데 보호자 연락 안 되면 일단 지장 찍고 수술대에 올릴 수 밖에 없다. 환자가 위급하면 수술을 빨리 하니 자연히 시간이 짧아진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수술에 있어 윤리적 문제는 없었다. 수술 차트 수백건 중 문제가 될만한 것만 추려져 38건이 공개된 걸로 안다. 다만 환자 동의 없이 뇌 사진을 올린 건 생각이 좀 부족했다"고 말했다
공익 신고자는 지난 8월 A의사의 수술 건별 기록, 수술 동의서, 사망 경과 등의 자료를 첨부해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권익위는 지난달 보건복지부에 이 사실을 통보했다. 그런데 김순례 의원에 따르면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은 권익위 신고 전부터 A의사 문제를 알고 있었다. 김 의원은 "지난 5월 한 의사단체가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에 사건을 제보했지만 정 원장은 '직원의 모함'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여전히 (A의사는) 진료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공익 신고자 측은 이달 초 정 원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정기현 원장은 8일 국정감사에서 "상급기관인 복지부에서 조사하라고 의뢰한 게 없다.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조사에) 한계가 있어 외부 전문가 추천을 받아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김소윤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개두 수술 대상인지, 수술을 제대로 했는지, 수술 후 환자 관리가 적정했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순례 의원은 지난해 국감에서 드러난 중앙의료원 직원들의 독감 백신 불법 구입ㆍ투약에 대한 징계 문제도 지적했다. 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 직원 103명은 독감 백신을 개당 1만5000원에 550개 구매했다. 이 중 23명은 의사 처방전 없이 병원 밖에서 백신을 불법 투약했다. 국감 후 중앙의료원 내부 감사를 거쳐 지난해 11월 피부과 소속 2급 직원이 감봉 2개월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중앙의료원은 올해 1월 이 직원이 ‘진정성 있게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했다’는 이유로 징계 수위를 견책으로 낮췄다. 의료법ㆍ약사법 등을 위반했는데도 가장 낮은 징계를 받은 것이다. 다른 4급 직원도 올 6월 뒤늦게 견책 징계를 받았다. 솜방망이 징계라는 지적이 일자 정기현 원장은 "백신 불법 사용 관련 처분을 타 기관 사례와 비교해서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김순례 의원은 "정 원장의 제 식구 감싸기는 병원 기강을 세워 제대로 운영하는 데 큰 걸림돌이다. 공공 의대 신설 등의 외연 확장에만 치중하지 말고 본연의 업무를 잘 챙겨야 한다"면서 "독감 백신 관련 직원들을 재조사·징계하고 신경외과 수술 사건도 철저히 확인해 국회에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