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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브랜드버거 10만개 팔렸다는데…햄버거에 꽂힌 정용진,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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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정용진 부회장과 노브랜드버거.

정용진 부회장과 노브랜드버거.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오고 기회는 생각보다 늦게 온다.”

“초저가·프리미엄만 살아남는다” #소비자 다시 오프라인 끌어오기 #햄버거로 2030 소비성향 실험 #패티·야채 품질 최상급 값은 절반 #코엑스점 주말 1500개 팔려 나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 6월 28일 이마트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한 말이다. 정용진 부회장의 말대로 이마트는 지난 2분기 사상 최초로 영업손실(-299억원)을 기록했다.

이마트·롯데마트 등 국내 대형 유통 기업이 위기에 부딪힌 배경 중 하나는 쿠팡·티몬 등 이커머스(e-commerce) 공세가 꼽힌다. 손가락만 클릭해서 온라인으로 제품을 사는 소비자 비중이 갈수록 확대하면서 ‘생각보다 빨리’ 위기가 닥쳤다. 8월 19일 첫 매장을 개점한 노브랜드버거에는 위기를 돌파하려는 정 부회장의 전략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첫째, 초저가다. 불고기버거 단품은 1900원, 대표메뉴인 시그니처버거 단품은 3500원에 불과하다. 경쟁 제품과 비교하면 반값에도 못 미친다.

정용진 부회장의 일관적인 경영 전략 중 하나가 초저가다. ‘노브랜드’라는 자체 브랜드(private brand) 상품부터 상시 초저가를 내세운 ‘에브리데이(everyday·일상) 국민가격’까지 그는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다. 온라인으로 장보는 소비자의 발길을 다시 오프라인 매장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다.

둘째, 소비자 만족도다. 정 부회장은 소비자 만족도를 좌우하는 핵심가치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만족도가 크지 않은 분야에서 과감하게 원가를 낮췄다. 예컨대 노브랜드버거 햄버거 패티는 가격 대비 품질이 우수하다. 경쟁 제품 대비 촉촉하고 육즙도 살아있어 정크푸드(junk food)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정용진 부회장이 개발에 참여했다는 소스도 마찬가지다. 햄버거빵(번·bun) 밑에 살짝 발라둔 치즈소스가 패티의 감칠맛을 배가한다. 이렇게 상승한 원가는 소비자 선호 차이가 크지 않은 부분에서 만회했다. 경쟁사의 번(12㎜)보다 NBB시그니처버거(10.5㎜)의 번을 14% 작게 만들었다. 호밀 등 고가 재료도 배제했다.

셋째, 유통 강자 이점을 충분히 활용했다. 이마트는 다양한 식자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국내 최대 유통 기업이다. 전문성을 보유한 공장에 일부 제조 공정을 맡겼다. 실제로 신세계푸드 이천공장이 노브랜드버거의 햄버거용 채소를 제조·관리·가공한다. 덕분에 노브랜드버거 토마토·양배추 등 야채는 신선도가 경쟁 제품보다 돋보인다.

넷째, 시장 재정의다. 정 부회장은 맥도날드·롯데리아가 대표하는 중간 가격대 시장이 점차 축소한다고 본다. 그는 신년사에서 “앞으로 유통시장은 ‘초저가’와 ‘프리미엄’의 두 가지 형태만 남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가 저렴한 노브랜드버거와 함께 미국 햄버거 체인 ‘자니로켓’ 한국매장을 운영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신세계푸드 외식사업부가 진행하는 자니로켓은 1인분 가격이 최대 1만7000원이다(베이컨체다더블). 프리미엄 버거(자니로켓)와 가성비 버거(노브랜드)로 중간 가격대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통 산업 트렌드 변화를 파악하려면 밀레니얼(Millennials)의 소비 성향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햄버거 시장을 찾는 소비자는 주로 20·30대다. 초저가 실험을 진행하는 일종의 테스트베드로 햄버거를 선택한 배경이다.

지금까지 정 부회장의 전략은 성공적이다. 9월 말까지 10만개가 팔렸고, 2호점(부천점)은 스타필드시티 식음료매장 매출액 1위를 기록했다. 3호점(코엑스점)은 햄버거가 하루에 1200(평일)~1500개(주말)씩 팔린다. 통상 일일 판매량이 1000개 이상이면 특A급 매장으로 분류한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햄버거 매장을 통해서 이들의 소비 패턴·데이터를 수집하면, 오프라인 기반 유통업계 전반의 수익성을 제고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노브랜드버거는 단순한 햄버거 시장 진출이라는 의미를 뛰어넘어,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유통기업이 수익성을 실험하는 공간”이라고 분석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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