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제품·패티·소스까지 손댔다···정용진, 왜 햄버거에 꽂혔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노브랜드버거로 본 위기극복전략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중앙포토]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중앙포토]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오고 기회는 생각보다 늦게 온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지난 6월 28일 이마트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언급한 말이다. 정용진 부회장의 말대로 이마트는 지난 2분기 사상 최초로 영업손실(-299억원)을 기록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한 게시물. [인스타그램 캡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한 게시물. [인스타그램 캡쳐]

이마트·롯데마트 등 국내 대형 유통 기업이 위기에 부딪힌 배경 중 하나는 쿠팡·티몬 등 이커머스(e-commerce) 공세가 꼽힌다. 손가락만 클릭해서 온라인으로 제품을 사는 소비자 비중이 갈수록 확대하면서 ‘생각보다 빨리’ 위기가 닥쳤다.

지난 8월 19일 첫 매장을 개점한 노브랜드버거에는 위기를 돌파하려는 정용진 부회장의 전략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노브랜드버거는 제품·패티·소스 개발 과정에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참여했다고 해서 일명 ‘정용진 버거’라고 불린다.

패티·소스개발에 돈 안 아껴

노브랜드 버거의 개방형 주방은 야채가 상대적으로 신선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문희철 기자

노브랜드 버거의 개방형 주방은 야채가 상대적으로 신선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문희철 기자

첫째, 초저가다. 노브랜드버거가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건 가격 때문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노브랜드버거를 검색하면 ‘가격이 착하다(‘가성비가 좋다’는 의미)’는 평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불고기버거 단품은 1900원, 대표메뉴인 시그니처버거 단품은 3500원에 불과하다. 같은 제품의 세트메뉴(감자튀김·음료 포함)를 주문하더라도 5000원 미만(3900~4700원)이다.

정용진 부회장의 일관적인 경영 전략 중 하나가 초저가다. ‘노브랜드’라는 자체 브랜드(private brand) 상품부터 상시 초저가를 내세운 ‘에브리데이(everyday·일상) 국민가격’까지 그는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다. 온라인으로 장보는 소비자의 발길을 다시 오프라인 매장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다.

위기에 대처하는 정용진 부회장의 일관적인 경영 전략 중 하나가 초저가 전략이다. ‘노브랜드’라는 브랜드가 대표하는 다양한 제품부터 상시 초저가를 내세운 ‘에브리데이(everyday·일상) 국민가격’까지 온라인쇼핑으로 떠나는 소비자의 발목을 붙들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경쟁사 패티(왼쪽) 대비 노브랜드버거 패티(오른쪽)는 풍미가 있고 촉촉한 느낌이 강했다. 문희철 기자

경쟁사 패티(왼쪽) 대비 노브랜드버거 패티(오른쪽)는 풍미가 있고 촉촉한 느낌이 강했다. 문희철 기자

둘째, 소비자 만족도다. 가격을 낮추면서 품질을 높인다는 건 모순이다. 때문에 정 부회장은 소비자 만족도를 좌우하는 핵심가치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만족도가 크지 않은 분야에서 과감하게 원가를 낮췄다.

햄버거 패티가 대표적이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노브랜드버거의 NBB시그니처버거 패티가 상대적으로 촉촉하고 육즙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확인할 수 있다. 보통 치즈버거는 치즈 때문에 다소 느끼하다는 느낌을 주기 마련인데, NBB시그니처버거 패티는 새콤한 맛이 패티 본연의 맛을 살렸다. 미국 서부에서 인기 있는 인앤아웃버거의 패티와 비슷한 부분이다.

또 정용진 부회장이 개발에 참여했다는 소스는 노브랜드버거의 숨겨진 인기비결이었다. NBB시그니처버거의 번 밑에 살짝 발라둔 치즈소스가 패티의 감칠맛을 상당히 배가했다.

유통 기업 역량도 최대한 활용

경쟁사 번(12mm·왼쪽)이 NBB시그니처버거(10.5mm·오른쪽)보다 14% 컸다. 문희철 기자

경쟁사 번(12mm·왼쪽)이 NBB시그니처버거(10.5mm·오른쪽)보다 14% 컸다. 문희철 기자

이렇게 상승하는 비용은 소비자 선호 차이가 크지 않은 부분에서 만회했다. 예컨대 햄버거빵(번·bun)을 꼽을 수 있다. 줄자로 대략 크기를 재어봤더니, 경쟁사의 번(12mm)보다 NBB시그니처버거(10.5mm)의 번이 14% 작았다.

또 경쟁제품은 빵 반죽에 버터·달걀을 넣은 프랑스식 빵(브리오슈·brioche)에 호밀을 추가해서 고소한 단맛을 살렸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더 큰 포만감을 줬다. 이에 비해 노브랜드버거는 호밀 등 추가 재료 없이 반죽법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차별화했다.

경쟁사 감자튀김보다 노브랜드 버거 감자튀김(왼쪽)은 도톰하고 간이 잘 되어있었다. 문희철 기자.

경쟁사 감자튀김보다 노브랜드 버거 감자튀김(왼쪽)은 도톰하고 간이 잘 되어있었다. 문희철 기자.

그렇다고 눈에 확연히 띄는 부분에서 원가를 절감하진 않았다. 예컨대 감자튀김의 경우 경쟁제품보다 1~2mm 도톰하고 속간이 잘 배어있었다. 덕분에 노브랜드버거의 감자튀김은 감칠맛이 우수했다.

셋째, 유통 강자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했다. 이마트는 다양한 식자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공장을 보유한 국내 최대 유통 기업이다. 전문성을 보유한 공장에 일부 제조 공정을 맡겼다.

실제로 노브랜드버거 토마토·양배추 등 야채의 신선도는 경쟁 제품보다 돋보였다. 경쟁 제품 대비 노브랜드버거가 사용한 야채는 보다 신선하고 순이 살아있었다. 이는 신세계푸드 이천공장이 햄버거용 채소를 제조·관리·가공한 덕분이다. 햄버거뿐만 아니라 다양한 식자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공장에서 야채를 납품받기 때문에 야채 신선도 관리 노하우를 차용할 수 있었다.

저렴하지만 맛있는 햄버거를 표방한 노브랜드 버거 1호점. 개방형 주방에 'Why pay more? It's good Enough'라고 쓰여있다. 문희철 기자.

저렴하지만 맛있는 햄버거를 표방한 노브랜드 버거 1호점. 개방형 주방에 'Why pay more? It's good Enough'라고 쓰여있다. 문희철 기자.

야채의 신선함은 개방형 주방(open kitchen)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성인 남성이라면 누구나 슬쩍 엿볼 수 있을 정도로 조리대 칸막이가 낮은 편인데, 여기서 확인한 조리전 야채가 상당히 신선했다. 또 최근 노브랜드버거가 입소문을 타면서 회전율이 빨라지자 상대적으로 신선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었다.

최정용 신세계푸드 메뉴개발팀장은 “지난 3년 동안 2500명을 대상으로 시식평가를 진행하면서 노브랜드버거 대표메뉴인 NBB시그니처버거를 개발했다”며 “가격은 저렴하지만 경쟁사 햄버거보다 품질은 절대 저렴하지 않다”고 말했다.

초저가·프리미엄으로 시장 재정의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뉴스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뉴스원]

넷째, 시장 재정의다. 기존 햄버거 시장은 맥도날드·롯데리아 등 중간 가격대 시장을 중심으로 수제버거 등 고가 시장이 확대하는 추세였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중간 가격대 시장이 점차 축소한다고 본다. 정 부회장은 신년사에서 “앞으로 유통시장은 ‘초저가’와 ‘프리미엄’의 두 가지 형태만 남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초저가 시장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가 저렴한 노브랜드버거와 함께 미국 햄버거 체인 ‘자니로켓’ 한국매장을 운영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신세계푸드 외식사업부가 진행하는 자니로켓은 1인분 가격이 최대 1만7000원이다(베이컨체다더블). 프리미엄 버거(자니로켓)와 가성비 버거(노브랜드)로 중간 가격대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니로켓은 수제버거 매니어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최근 30호점을 개장했다.

김동연 전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대화하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왼쪽). [중앙포토]

김동연 전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대화하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왼쪽). [중앙포토]

유통 산업 트렌드 변화를 파악하려면 밀레니얼(Millennials)의 소비 성향을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햄버거 시장을 찾는 소비자는 주로 20·30대다. 그가 초저가 실험을 진행하는 일종의 테스트베드로 햄버거를 선택한 배경이다.

지금까지 정 부회장의 전략은 성공적이다. 2호점(부천점)은 스타필드시티에 입주한 모든 식음료매장 중에서 노브랜드버거가 매출액 1위를 기록했다. 또 9월 30일 개장한 노브랜드버거 3호점(코엑스점)은 햄버거가 하루에 1200(평일)~1500개(주말)씩 팔린다. 경쟁 기업은 통상 일일 햄버거 판매량이 1000개 이상이면 특A급 매장으로 분류한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햄버거 매장을 통해서 이들의 소비 패턴·데이터를 수집하면, 오프라인 기반 유통업계 전반의 수익성을 제고하는데 도움이 된다”며 “노브랜드버거는 단순한 햄버거 시장 진출이라는 의미를 뛰어넘어, 유통 산업의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유통기업이 자체브랜드(private brand)로 수익성을 실험하는 공간”이라고 분석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