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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 부르는 식욕억제제 오남용…혼자 하루 44개 처방도

중앙일보

입력

국감에서 식욕억제제 처방에 따른 문제가 제기됐다. [사진 Pixabay]

국감에서 식욕억제제 처방에 따른 문제가 제기됐다. [사진 Pixabay]

지난 4월 배우 Y씨가 펜터민 등 식욕억제제 8알을 먹고 환각 증세를 보였다. 그는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다니는 등 이상 행동을 하다 현장에서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됐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식욕 억제제 과다 복용에 따른 부작용으로 밝혀져 무혐의로 풀려났다.

마약류지만 1년간 124만명 억제제 처방 #환자 의료쇼핑, 의료진 과다처방 문제 #한 해 같은 곳서 80번 처방받은 환자도 #"환자 불법 판매 등을 식약처 확인해야"

Y씨 사례처럼 심하면 환각, 심장이상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는 식욕억제제가 무분별하게 처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7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식욕억제제(상위 5개 품목)는 지난해 7월~올해 6월 환자 124만명에게 처방됐다. 처방량은 2억3500만개를 넘는다. 하루 평균 3400명에게 64만6000개가량 처방되는 셈이다.

특히 환자의 ‘의료 쇼핑’이 문제였다. 김 의원이 처방량 상위 30명 환자 기록을 살펴보니 최근 1년간 환자 한 명이 평균 12개 의료기관을 돌아다니며 식욕억제제 1만6310개를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처방량이 가장 많은 A씨는 처방 1건당 175개씩 받았다. 매일 44개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아 사용한 셈이다.

의료진도 ‘과다 처방’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환자 B씨는 의료기관 한 곳에서만 1만752개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다. 1년간 80번이나 같은 병원을 찾아갔다. 하루 평균 30개 가까운 약을 처방받은 식이다. A씨와B씨는 식욕억제제 불법 판매와 오ㆍ남용이 의심되는 대표적 사례다.

식욕억제제 처방 많은 의료기관. [자료 김상희 의원]

식욕억제제 처방 많은 의료기관. [자료 김상희 의원]

식욕억제제는 마약류로 지정ㆍ관리되고 있다. 과다 복용 시 환청, 환각뿐 아니라 심장이상, 정신분열 등이 발생하면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2016년 이후 부작용 보고 건수는 1279건이다. 이 중 사망도 4건이다. 부작용이 심각함에도 처방은 줄지 않고 있다. 최근 1년간 처방량의 96.4%는 의원급에 집중된다. 처방량 상위 30명 의사가 전체 처방량의 25%, 처방 환자 수의 19%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이미 숨진 환자 이름으로 약이 처방된 사실도 드러났다. 8개 의료기관에서 사망자 8명의 이름으로 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등 식욕억제제 6종 1700여개가 처방됐다. 이러한 사실이 적발된 8개 병원은 수사를 받고 있다.

식약처는 의약품 허가 기준에 따라 식욕억제제 처방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서 의료기관에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처방권은 의사 고유 권한이다. 가이드라인을 어긴다고 해도 제재할 규정이 없다. 김상희 의원은 "의사가 환자 오ㆍ남용 방지할 수 있도록 환자 투약 내역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과도한 처방과 오ㆍ남용,  환자 불법 판매 등을 식약처가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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