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를 위한 미국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북한은 ‘빈손’으로 비난했다. 미국이 2주 내 협상 재개를 제안하자 북한은 단칼에 거절했다. 지난 4~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간 실무협상이 결렬로 끝난 뒤 양측 입장에서 드러난 차이다.
“적대정책 철회 안하면 협상 없다” #2주 내 추가 협상 제안도 거부 #북 외무성 “역스러운 회담 못한다” #체제 보장, 제재 완화 놓고 평행선 #“북 셈법은 트럼프 통 큰 결단” 분석 #미, 미사일 탐지 정찰기 일본 배치
실무협상 뒤 북한은 두 차례에 걸쳐 입장을 냈다. 직후인 5일 오후 6시40분쯤(현지시간, 한국시간 6일 오전 1시40분쯤) 스톡홀름에선 북측 협상 수석대표인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6일 오후 8시(한국시간)를 조금 넘겨서는 평양에서 외무성 대변인이 담화를 냈다.
김 대사는 현지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빈손으로 협상에 나온 것은 문제를 풀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이래서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며 결렬을 선언했다. 또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우리의 안전과 발전을 위협하는 모든 장애물이 깨끗이 제거될 때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더 직설적이었다. “미국이 우리 인민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저해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게 철회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이번과 같은 역스러운 협상을 할 의욕이 없다”고 밝혔다. ‘역스러운’은 ‘역겨운’의 북한말이다.
김명길 “미국 빈손 협상 불쾌” 미국은 “창의적 방안 냈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요구해 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에 북한은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적대시 정책 철회’로 맞선 것이다.
특히 이는 미국의 입장 표명 이후 나왔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이 김 대사의 입장 발표 3시간여 뒤 “앞서 나온 북한 대표단의 발표는 협의 내용과 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미국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가져갔으며, 북측 상대방과 좋은 협의를 했다”고 했는데, 북한이 격을 높여 반박한 것이다. 협상 결렬로부터 약 18시간, 미국 입장 발표로부터는 약 15시간 지난 뒤 나온 만큼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협상팀의 보고를 받고 숙고한 끝에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오테이거스 대변인이 2주 내에 스톡홀름에서 다시 만나 협의하자는 스웨덴의 제안을 공개하며 “(북측에도) 이를 수용하라고 제안했다”고 한 것도 단번에 거절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이번 협상에서 양측이 두 주일 후에 만날 의향이라고 사실과 전혀 무근거한 말을 내돌리고 있는데, 판문점 수뇌 상봉으로부터 99일이 지난 오늘까지 아무것도 고안해 내지 못한 그들이 두 주일이라는 시간 내에 우리의 기대와 전세계적 관심에 부응하는 대안을 가져올 리 만무하다”며 “조·미 대화의 운명은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으며 그 시한부는 올해 말까지”라고 못 박았다.
이 밖에도 “미국 측 대표의 구태의연한 태도는 우리의 기대가 너무도 허황된 희망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은 더 큰 법”이라고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협상에서 양측은 북한이 요구해 온 체제 안전보장과 제재 해제를 놓고 평행선을 달렸다. 특히 북측은 제재 해제뿐 아니라 한·미 연합훈련 중단, 미국 전략자산 전개 중단 등 미국이 취해야 할 행동을 협상장에서 제시했다고 한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요구한 미국의 ‘실제적인 조치’가 이에 맞닿아 있다.
반면에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미 측 대표단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4개 항에서 각기 진전을 볼 수 있는 새로운 구상(new initiatives)을 소개했다”며 유연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비핵화의 최종 목표와 로드맵부터 합의한 뒤 행동은 동시병행적으로 한다는 미국의 기본 원칙은 그대로였다고 한다. 제재는 협상력 확보를 위해 가능한 한 오래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에도 변함이 없었다.
결국 북한의 셈법은 북·미 정상회담을 열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통 큰 결단을 얻어내겠다는 것으로 관측된다. 김 대사가 “우리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지가 계속 유지되는가, 되살리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에 달렸다”고 한 건 김 위원장이 김 대사의 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발신한 엄포라는 것이다. 다만 김 대사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 원칙을 다시 확인하며 여지는 남겼다.
한편 미국의 정찰기인 E-8C조인트스타스(JSTARS)가 일본 오키나와의 가데나 미 공군기지에 배치됐다. 6일 해외 군용기 추적 사이트인 ‘에어크래프트 스폿’ 등은 전날인 5일 E-8C 2대가 가데나 기지에서 포착됐다며 “한반도 작전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250㎞ 밖의 지상 표적을 감시할 수 있는 E-8C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도발에 앞서 동아시아 일대를 비행했다.
이번엔 북·미 실무협상 국면에서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시험발사한 데 이어 ICBM 발사까지 언급하자 관련 감시에 들어갔다는 관측이다.
스톡홀름=김성탁 특파원, 유지혜·백민정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