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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 복귀 10분만에 김명길 “결렬” 성명…평양지침 미리 받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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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북한 측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5일 오후 6시40분쯤(현지시간) 스웨덴 주재 북한 대사관 정문 앞 계단 위에서 북·미 실무협상 결렬을 발표했다.

오전협상→대사관 150분→오후협상 #오전 성과 없자 보고 후 발표 준비

회담장인 스톡홀름 외곽의 ‘빌라 엘비크 스트란드’에서 북한 대사관으로 돌아온 지 10여분 만이었다. 대사관으로 들어설 때 그는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지자 “기다려 달라. 조금 후 입장을 밝히겠다”고 발표를 예고했다. 이후 권정근 외무성 전 미국국장 등이 밖으로 나와 정문 앞 계단 위에서 김 대사가 발표한다고 알리며 굳게 닫힌 대사관 정문을 열어 취재진을 안내했다.

김 대사는 미리 준비한 글을 읽어 나갔다. 날이 어두워져 휴대용 조명을 든 직원이 김 대사가 든 종이를 비췄다. 회담 결렬의 원인이 모두 미국에 있고, 미국은 새 계산법에 따른 내용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비난이었다. 김 대사의 발표를 옆에 선 직원이 일일이 통역했는데, 그 역시 미리 준비한 영문 원고를 들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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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사의 입장 발표에 앞서 권 전 국장은 질문을 세 개 받겠다고 안내했고, 실제 취재진의 질문 세 개를 연달아 받았다. 하지만 김 대사는 이들 질문과 관련해 하나하나 답하지 않고 다시 종이에 적힌 발표문 내용을 읽었다. 회견 내내 김 대사가 준비된 원고를 보지 않고 임의로 답한 것은 몇 문장에 불과했다.

발표문과 통역 상황 등을 감안하면 김 대사가 협상장을 떠나 대사관에 복귀한 뒤 회견하기까지 10분 이내에 준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인쇄한 입장문과 통역 직원이 들고 있던 영문 입장문에 휴대용 조명까지 사전에 준비했다는 게 더 적절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북한이 대미 협상에서 성과가 없을 것을 예상해 발표문을 미리 준비해 둔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김 대사는 앞서 이날 정오쯤 협상장을 떠나 북한 대사관으로 돌아가 2시간30분가량 머물렀다. 저녁 입장문 발표로 보면 김 대사는 오전 협상에서 나온 미국 측의 입장을 들은 뒤 낮 시간에 평양에 보고하고 추후 발표할 입장문 내용까지 조율을 거쳐 모두 준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에 대한 비난 내용 역시 당연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재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결렬이건 합의건 ‘최고존엄’의 승인 없이는 발표할 수 없다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상식이다.

스톡홀름=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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