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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새 계산법 없었다" 美 "창의적 아이디어 냈다"···결국 결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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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실무협상 북측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운데)가 미국측과 회담후 북한대사관으로 돌아와 미국을 비난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스톡홀름=김성탁 특파원

북미 실무협상 북측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운데)가 미국측과 회담후 북한대사관으로 돌아와 미국을 비난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스톡홀름=김성탁 특파원

베트남 하노이 2차 정상회담 이후 219일 만에 열린 스웨덴 스톡홀름 북·미 실무협상이 5일(현지시간) 8시간 30분 만에 결렬됐다. 결렬 이유를 놓고 북한 수석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미국이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을 하나도 들고나오지 않았다"고 미국에 책임을 돌렸다. 반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모건 오르태거스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져갔다. 싱가포르 성명의 4개 항을 진전할 많은 새로운 방안(initiative)을 제시했다"고 반박했다. 북·미가 한나절 만에 결렬을 선언한 것은 결국 "제재 완화는 안 된다"고 배제한 미국과 "제재 완화부터"를 요구한 북한의 예고된 충돌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무부 "창의적 구상, 새 방안 많이 소개" #김명길 "구태의연한 입장·태도 못버렸다" #美 "2주 뒤 보자"-北 "연말까지 숙고하라" #"트럼프 양보없이 협상 시간만 끈다 의심"

외교 소식통은 이날 "미국은 이번 실무협상에서 하노이 정상회담 때 제시한 것을 완전히 뛰어넘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특히 제재 완화는 이번에도 영변 해체와 같은 비핵화 초기 단계에서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고 말했다. 북·미 연락 사무소 설치와 양국 교류 확대, 한국전 종전선언과 인도적 지원 확대 등 큰 틀에서 미국의 제안은 크게 바뀌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무협상 직전 미국 인터넷 언론 복스가 "영변과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 폐쇄 대가로 36개월간 한시적으로 유엔 대북 석탄·섬유 수출 제재를 유예하는 방안을 제안할 방침"이라고 보도하자 정부 관계자들이 "완전한 오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스티븐 비건 미 대북특별대표가 4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외교부를 방문한 뒤 떠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스티븐 비건 미 대북특별대표가 4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외교부를 방문한 뒤 떠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북한은 비핵화 이전에 제재 완화가 선결돼야 한다는 요구를 고수한 것으로 보인다. 김명길 순회대사가 현지 북한 대사관에서 발표한 회담 결렬 입장에서 "미국이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을 하나도 들고나오지 않았다“며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은 미국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제도적 장치를 제거하는 조치를 실천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렬은 미국이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선(先) 핵포기 후(後) 제재완화를 고수했다는 뜻이다.

북한의 안전을 위협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제도적 장치의 사례로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에만 미국은 15차례에 걸쳐 제재를 발동하고, 합동군사연습도 재개했으며, 한반도 주변에 첨단 전쟁 장비를 끌어들여 우리의 생존권과 발전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제재 완화뿐 아니라 연합훈련 완전 중단과 미 첨단자산의 철수를 요구한 셈이다.

향후 협상 재개에 대해서도 북·미는 입장이 갈렸다. 미국은 2주 뒤 스톡홀름에서 협상을 재개하라는 스웨덴 정부의 초청을 수락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북한 김명길 순회대사는 "“미국이 우리와 협상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판단하고 연말까지 더 숙고해 볼 것을 제의했다”고 말했다. 연말까지 실무협상 장기 공전을 위협하며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라고 재차 압박한 셈이다.

김명길 신임 협상대표는 회담 직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준비된 성명을 통해 미국에 결렬 책임을 전가하면서 통일전선부에서 외무성이 협상 전권을 넘겨받은 뒤 회담 실패에 철저히 준비된 모습도 보였다. 이런 치밀함은 미국이 세 시간 뒤 성명에서 "우리는 좋은 대화를 나눴다"며 완전 결렬을 부정하고, "70년간 전쟁과 적대의 유산을 토요일 하루 만에 극복할 수는 없다"며 후속 협상 재개에 매달리는 모습까지 끌어냈다.

켄 고스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중앙일보에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양보는 하지 않으면서 협상을 계속 끌려고만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며 "제재 완화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는 한 스톡홀름으로 복귀할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로서도 탄핵에 맞서 싸우는 상황에서 국내에서 집중포화만 맞을 수 있고, 얻을 게 없는 과감한 대북 조치를 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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