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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Km 걷기, 반려견 만세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강명주의 비긴어게인(16)

“직접 보고 안 된다고 해 그럼.” 남편과 함께 약속 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이다. 남편은 운전하면서 계속 나에게 아쉬운 듯 말하고 있다. 지인의 소개로 반려견 입양을 부탁받았다고 한다. 워낙 반려견을 좋아하는 남편이다. 그중에서 저먼 셰퍼드는 본인의 로망이다. 그 꿈에 그리던 저먼 셰퍼드를 소개받은 것이다.

직장생활에 빠진 딸을 위해 친정엄마가 집안일을 봐주고 있다. 이미 집에는 두 마리 반려견이 있다. 거기에 반려견이 추가로 더 온다면 엄마에게 나는 너무나 미안하다. 게다가 작은 강아지도 아니고 대형견이다. 반대 입장일 수밖에 없는 나를 이해는 하지만 남편은 계속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지금 입양이 안 되면 보호소에 보내진다면서 안타까워한다. 소개받았으니 함께 가서 만나보고 직접 나더러 이야기하라고 한다.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지금 키우고 있는 두 마리 반려견이 떠오른다. 이 두 마리도 뜻하지 않게 한 가족이 되었다. 명절이면 가족 모두 큰아버님댁에 간다. 10년 전이다. 그해 추석 큰아버님댁에서 갓 태어난 강아지를 보았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부비거리는 예쁜 강아지 두 마리에 내 딸은 넋을 잃었다. 추석 명절 내내 본인이 키우겠다고 끊임없이 졸라 댔다. 남편도 딸 편에서 거들었다. 할 수 없이 나는 그 예쁜 강아지를 품에 안았고 결국에는 내가 키우게 되었다. 같이 살면서 그 강아지의 사랑스러움에 그만 나도 빠지고 말았다.

옅은 갈색이 어우러진 털을 날리며 늠름하게 다가오는 잘생긴 저먼 셰퍼드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이 달려가듯 맞는다. 나는 또 이렇게 반려견 한마리를 식구로 맞이하게 되었다. [일러스트 강경남]

옅은 갈색이 어우러진 털을 날리며 늠름하게 다가오는 잘생긴 저먼 셰퍼드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이 달려가듯 맞는다. 나는 또 이렇게 반려견 한마리를 식구로 맞이하게 되었다. [일러스트 강경남]

“와~ 저 개인가 봐, 와~” 하고 갑자기 남편이 탄성을 자아낸다. 남편의 입이 귀에 걸린다. 입을 다물지 못한다. 남편의 눈은 이미 하트가 발산되고 있었다. 남편이 향하는 곳으로 내 눈도 따라가고 있다. 저 멀리서 어느 신사와 함께 금빛 나는 검은색과 진하고 옅은 갈색이 함께 어우러진 털을 날리며 늠름하게 걸어오는 잘 생긴 저먼 셰퍼드가 내 눈에도 들어 오고 있었다.

점점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 셰퍼드를 남편은 마치 달려가듯이 맞이하고 있다. 아마 나를 처음 만났을 때 내 남편이 나에게 이런 모습이었었나…. 남편은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하고 내일 당장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을 해버린다. 나는 또 이렇게 반려견 한 마리를 아무 저항도 못 하고 식구로 맞이하게 되었다.

기존 두 반려견 이름이 ‘우리’와 ‘나라’이다. 자연스레 잘생긴 셰퍼드는 ‘만세’라고 불렸다. 만세가 집에 온 후 우리 가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렇게 걱정했던 엄마는 역시 예상했던 대로 처음에 강하게 거부감을 표시하셨다. 한 달도 되지 않아 엄마는 만세의 온순함과 든든한 모습에 매료되고 말았다. 엄마는 집을 지켜주는 든든한 자식이 생겼다고 동네방네 자랑이다. 어느 순간부터 거실에는 만세가 소파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집 밖 이웃의 반응은 엇갈렸다. 좋아하는 이웃과 싫어하는 이웃으로 나뉘었다. 가끔 짖어대는 소리에 일부 이웃 주민이 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세 번씩이나 관계기관에서 집을 방문했다. 파출소에서, 구청에서, 동사무소에서. 우리 집을 찾은 그분들은 한결같이 놀라고 간다. 그저 순둥 순둥 짖지도 않고 반기는 만세를 보고 그냥 돌아갔다.

남편은 혹여 같이 살 수 없게 될까 봐 시골에 땅을 사서 만세 집을 지어야겠다고 난리다. 가까운 친척의 소개로 서울 근교에 만세와 살 땅을 결국 사고 말았다. 그리고 남편은 다짐한다. 반드시 내가 집을 지어 만세와 함께 살겠노라고. 그러던 남편은 해외 사업으로 해외에 나가게 되어 결국 만세도 내가 키우게 되었다.

더 많은 실적을 쌓기 위해 퇴근도 휴일도 마다하고 영업 일선에서 뛰어온 어느 금융인. 늘 머릿속에는 고객을 유치할 걱정으로 가득찼고, 취미는 아예 가질 생각도 안 했다. [일러스트 강경남]

더 많은 실적을 쌓기 위해 퇴근도 휴일도 마다하고 영업 일선에서 뛰어온 어느 금융인. 늘 머릿속에는 고객을 유치할 걱정으로 가득찼고, 취미는 아예 가질 생각도 안 했다. [일러스트 강경남]

퇴직 후 나는 엄마 병간호에 매달렸다. 그동안 엄마에게 의지했던 집안 살림을 내가 도맡아 하게 되었다. 가끔 밀려오는 회한과 그동안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내 자신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에 빠질 여유도 없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거기에 여러 마리의 반려견까지.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하루를 보내야 했다.

“요즈음 할 일이 없어 미치겠어요” 무엇인가 해야겠다고 찾아온 어느 금융인의 절규이다. 결혼해서 내 집 마련하기 위해, 내 자식에 더 많은 것을 해주기 위해, 돈도 더 모으기 위해 열심히 일만 해왔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지점장이 되었을 때는 혹여 실적이 안 좋아 지점이 폐쇄라도 될까 더 많은 실적을 쌓기 위해 퇴근도 휴일도 마다하고 영업 일선에서 뛰었다.

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고객을 더 많이 유치할 것인가로 채워졌다. 고객 접대를 위해 골프는 수준급으로 올렸다. 다른 취미는 아예 가질 생각을 안 했다. 막상 퇴직하고 골프는 실컷 칠수 있겠다 싶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고 골프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직장인들은 시간에 쫓겨 취미 생활을 하기도 쉽지 않다. 직장이외에 다양한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면 퇴직 후에 보란듯이 취미를 살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직장인들은 시간에 쫓겨 취미 생활을 하기도 쉽지 않다. 직장이외에 다양한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면 퇴직 후에 보란듯이 취미를 살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퇴직한 많은 사람들이 직장생활 하면서 취미를 가지는 것은 사치라고 여겨왔다. 직장 일에 매달려 실적도 내야 하고, 승진도 해야 하고, 필요한 어학 공부나 자격증 준비로 본인을 위한 취미 활동은 꿈도 꾸지 않았다. 일 열심히 안 한다고 핀잔받았지만 눈치 안 보고 취미활동 열심히 한 동료들은 퇴직 후가 다르다. 직장 이외에 다양한 경험이 축적되어 퇴직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일을 잘할수 있는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고 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퇴직 후에는 보란 듯이 그 취미를 살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 자신을 파악해보자. 직장생활 하면서 만약에 내가 직장을 그만두면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 무엇에 소질이 있었는지 파악해 보자. 그리고 어떤 일을 했을 때 행복하게 느꼈는지를 파악해 보자. 무엇을 해야 할지 파악이 되면 큰돈 들이지 않고 시작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단시일에 잘하려고 무리하지 말자. 조금씩이라도 계속 꾸준히 포기하지 말고 즐기면서 해보자.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취미 활동이 나에게 활력을 주고 나아가 그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나게 된다. 제2의 인생을 펼치는 계기가 된다.

나도 일만 해온 사람이다. 일 이외에 곁눈질 한번 하지 않았다. 다른 취미활동은 꿈에도 생각 안 했다. 일이 전부였고 기쁨이었다. 만약 나에게 반려견들이 없었다면……. 그들은 나에게 직장생활에서 어려울 때나 힘들 때나 늘 한결같이 꼬리 치고 달려들면서 힘이 되어준 가족이었다. 퇴직 후에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주었고 삶의 활력이 되어 주었다. 특히 만세는 거의 매일 산책을 함께 했다. 하루에 10km를 함께 걸었다. 같이 걷노라면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새로운 깨달음을 나에게 선사했다. 건강이라는 크나큰 선물로 나에게 보답했다.

어느새 지금은 반려견에 반려묘까지 8마리의 식구가 함께하고 있다. 이제 이들은 보석 같은 존재가 되었다. 벌써 20년이다. 함께한 그들과의 세월은 또 다른 나를 만들어주고 있다. 희망의 불씨가 되어주고 있다. 꿈도 꾸어본다. 10년 후 어느 곳에서 동물농장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강명주 WAA인재개발원 대표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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