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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수 브랜드] ⑦ BYC “메리야스의 숨은 뜻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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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장수 브랜드] ⑦ BYC 메리야스

1958년 탄생해 아직도 연간 230만장 이상 팔리는 런닝셔츠. [사진 BYC]

1958년 탄생해 아직도 연간 230만장 이상 팔리는 런닝셔츠. [사진 BYC]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집에서 ‘라운지웨어’로도 즐겨 입는 흰색 ‘런닝셔츠’. 이를 포함한 속옷을 우린 종종 ‘메리야스’라고 부른다. 언뜻 일본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메리야스는 스페인어로 양말을 뜻하는 ‘메디아스(Medias)’, 혹은 포르투갈어 ‘메이아스(Meias)’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메디아스를 부르기 쉽게 변형하면서 한국에선 ‘메리야스=속옷’으로 굳어졌다.

1946년 양말 기계 한 대로 시작 #백양표로 한국 의류 산업의 역사 #85 ·90·95·100…사이즈 분류 도입 #연 235만장 팔리는 흰색 기본 런닝 #유통환경 변화 속 새로운 도전 중

어쩌다 한국에선 양말이 속옷을 뜻하게 되었을까. 전세계 어딜 가도 없는 독특한 명칭 뒤엔 국내 속옷 기업의 맏이, BYC가 있다. 창업주인 한영대 회장은 BYC의 모태 한흥 메리야스 공장을 1946년에 세웠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지나오면서 물자 수급 등 경제 전반으로 피폐해져 있었고 생필품은 턱없이 부족했다.

한 회장은 당시 양말 직조 기계의 몸통을 크게 개조해 내의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큰 편물을 짤 기계를 들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양말 기계에서 만든 속옷이라는 의미에서 메리야스라고 통칭한 것으로 추정된다. 왜 하필 스페인어였는지 남아있는 기록은 없다. BYC 관계자는 “니트(Knit) 양말용 편직기였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다는 것은 알려졌지만 현재로는 자세한 사정을 알 수가 없다”며 “편직기가 스페인산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흥산업이 자사 속옷을 메리야스로 부르며 팔기 시작하자 전 국민이 따라 부르게 됐다. BYC는 그만큼 오랜 기간 한국 속옷 브랜드의 대명사였다. 국민 대부분이 ‘백양메리아스’와 친숙했다. 양말 기계로 속옷을 만들던 한흥산업㈜은 성장을 거듭해 57년 ‘백양’ 상표를 등록한다. 귀가 단순하게 표현된 양 옆머리 상표는 이때 나왔다. 79년에는 기업과 브랜드 이미지 통합을 위해 사명을 ㈜백양으로 변경하고 96년에는 국제화 시대에 발맞춘 기업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BYC로 다시 변경했다. 62년 삼남메리야스로 설립돼 77년 이름을 바꾼 쌍방울(TRY를 생산하고 있다)과 함께 한국 의류 산업의 살아있는 역사다.

1960년대 후반 서울 광화문의 한 백양메리야스 직영점. 동네마다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사진 BYC}

1960년대 후반 서울 광화문의 한 백양메리야스 직영점. 동네마다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사진 BYC}

환갑 넘은 흰색 런닝셔츠, 여전히 스테디셀러

한국인의 의류 문화에 BYC의 기여도는 다양하다. 우선 속옷 사이즈를 처음으로 세분화한 공이 있다. 50년대 후반까지 속옷은 ‘대인용’과 ‘소아용’으로만 나뉘어 생산했다. 속옷에 몸을 맞추는 지경이었다. 문제점을 느낀 당시 한흥은 국민의 가슴둘레 사이즈를 조사해 성인용 제품 사이즈를 85ㆍ90ㆍ95ㆍ100cm의 4단계로 나누어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4단계 사이즈는 60년대 초 메리야스 내의 규격화 때 그대로 적용됐다. 이후 커진 국민 체격을 반영해 105ㆍ110cm 등 대형 사이즈가 추가됐다. 이 사이즈 체계는 현재까지 국내 패션업계에서 널리 쓰인다.

1980년대 백양 전주 공장에서 직원이 백물(흰색 속옷) 봉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BYC]

1980년대 백양 전주 공장에서 직원이 백물(흰색 속옷) 봉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BYC]

BYC는 ‘속옷 외길’을 걸어온 자부심이 강하다. 지금은 촌스럽다 여기지만 백양 마크를 붙인 새하얀 내의는 당시로써는 혁신적 연구·개발(R&D)의 결실이었다. 58년 국내 최초로 아염소산소다 표백 기술을 도입해 변색이 적고 내구성이 높은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전에는 나오던 내의는 변색이 잘 되는 누런색으로 보기에 썩 좋지 않았고, 위생 문제도 있었다. 새하얀 기본 런닝셔츠는 여전히 BYC 대표 상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지난해에만 235만장이 팔렸다.

달라진 유통 환경, 새로운 도전  

현재는 대부분의 토종 의류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유통 산업 변화로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1975년 상장 이후 적자를 낸 적은 없지만, 성장은 눈에 띄게 둔화했다. 지난해 간신히 매출 2000억원을 돌파했다.예전엔 동네마다 백양 메리야스 대리점이 있었지만, 이젠 다 사라져 수도권에선 쉽게 볼 수 없다. 여기에 해외 SPA 브랜드 공세와 속옷 직구 열풍, 해외 여행 자유화 등의 영향으로 국내 시장 점유율을 잃었다.

BYC는 최근엔 뉴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제품과 마케팅을 선보이고 있다. 오래된 듯 친숙한 감성이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밀레니얼들로부터 새롭다는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창립 73주년을 기념해 추억의 빨간 BYC 상표를 부착된 양말 3종 한정판 1000세트는 1주일 만에 완판되기도 했다. 구매자는 대부분 20대다.

BYC가 73주년을 기념해 출시한 한정판 복고풍 양말. 뉴트로 감성을 입혀 온라인에서 완판됐다.[사진 BYC]

BYC가 73주년을 기념해 출시한 한정판 복고풍 양말. 뉴트로 감성을 입혀 온라인에서 완판됐다.[사진 BYC]

7월 초 시작된 일본제품 불매 운동을 기회로 삼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유니클로 히트텍과 에어리즘 대체재로 꾸준히 거론된 보디 히트와 보디 드라이는 최근 매출 호조를 보이면서 시장 탈환을 노리고 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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