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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에듀]카카오·쿠팡이 모신 해커 "실력보다 윤리가 중요한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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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평소 컴퓨터를 좋아하던 초등학교 5학년생 박찬암은 서점에서 프로그래밍 관련 서적을 보다 해킹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무작정 책을 구해 읽고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직업에 대해 멋지다고 생각했고 공부하다 보니 일의 성격과 내용이 나와 잘 맞았다. 한편으론 운이 좋았던 셈"이라고 했다.

경력 21년 화이트 해커 박찬암 씨 #"자신이 좋아하는 일 발견이 먼저"

중학생 때는 국내외 해킹대회에 나가 우승하며 꾸준히 실력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보안업체에 근무하면서 화이트 해커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아직 30대 초반이지만 해커 경력은 21년째고 보안 컨설팅 경력은 12년 차다. 게다가 국내외 최고 수준의 해커 30명 정도로 구성된 해킹 보안 컨설팅 기업 스틸리언을 운영하고 있다. 스틸리언에선 카카오·토스·쿠팡 등 국내 대표적인 IT, 금융 기업의 보안 기술과 정책 관련 컨설팅을 하고 있다.

지난해 박찬암 대표는 미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의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이름을 올렸다. 그를 모티브로 한 드라마도 준비 중이다. 최근엔 글로벌 자동차 회사의 소프트웨어 보안을 논의하고 있다. ‘조기 성공’한 박찬암은 ‘조기 발견’이 더욱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흥미와 재능을 일찍 발견한 덕분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의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골목길을 거닐며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해커’는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실제 해커는?

“늘 후드티를 입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오랜 시간을 모니터만 뚫어지게 바라보는 소심한 성격의 사람들이 해커란 인식이 강한 것 같다. 하지만 해커도 사람이라 제각각이다. 실제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스포츠를 즐기며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몇 년 전 드라마 '유령'에서 배우 소지섭 씨가 해커 역을 연기했는데 기존의 해커 이미지와 달라 참 반갑고 고맙더라. 이른 나이에 진로를 정하고 오랜 시간 작업에 몰두하는 일이 잦다 보니 그런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 같다. 밤 근무를 하긴 하지만 그만큼 출근도 늦다. 또 해킹이란 게 창의적이지 않곤 불가능하다. 해커야말로 가장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한 직업 중 하나다.”

화이트 해커는 착한 해커를 뜻하나?

“스포츠 경기에 공격과 방어로 나뉘는 종목이 있는 것처럼 해킹에도 공격과 방어가 있다.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하는 해커가 블랙 해커다. 반대로 방어하는 해커가 화이트 해커다. 드라마나 영화에선 블랙 해커가 매력적이고 다이내믹한 역할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해 범죄자다. 디지털 환경에서 대부분의 영역에서 보안 솔루션이 요구되기 때문에 실제론 화이트 해커의 역할이 더 중요하고 직업 전망도 밝다.”

해킹 실력은 교육 이외 어떤 통로로 성장할 수 있나?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지만, 교육은 필요하고 기초를 쌓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게 실력 차이를 만든다. 국제대회에 나가보면 2~3일 잠을 자지 않고 각성제와 소량의 음식만 먹으면서 끊임없이 공격과 방어를 하면서 겨룬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교육을 받아도 할 수 없다.”

해커 입장에서 매력적인 사이트가 있을 것 같다.

“합법적으로 해킹해 보고 컨설팅하는 경우가 있다. 디지털 환경이 가속화되면서 보안 솔루션도 더 복잡하고 다양해진다.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이트에 대해 평가를 하게 되더라. 지난해 보안이 가장 우수한 금융 애플리케이션을 리스트업해서 발표한 적도 있다. 송금 애플리케이션 ‘토스’가 가장 우수했다.”

실력과 함께 해커에게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

“윤리의식이다. 다양한 정보에 접근하다 보면 윤리 의식, 기준이 모호해질 때가 있다. 또 해커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윤리, 법적 판단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과거엔 법적 문제가 있더라도 실력이 좋으면 스카우트하는 사례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윤리 의식이야말로 어릴 때부터 지키고 관리해야 하는 능력이다. 그것이 조직과 사람 관계에서 신뢰를 만들고 유지하는 힘이 된다. 기술은 공부 더하면 되는데 신뢰는 무너지면 쌓기 힘들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 꼭 좋은 학생이라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다음은 체력이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꾸준히 하려면 체력이 정말 중요하다.”

박찬암 대표는 "실력이 좋다고 좋은 해커로 인정받긴 어렵다. 어떤 직업이든 윤리의식이 중요하고 이것이야 말로 어릴 때부터 쌓아야 하는 자질"이라고 했다.

박찬암 대표는 "실력이 좋다고 좋은 해커로 인정받긴 어렵다. 어떤 직업이든 윤리의식이 중요하고 이것이야 말로 어릴 때부터 쌓아야 하는 자질"이라고 했다.

선호하는 직업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과거엔 IT 관련 일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시들해진 분위기다.

“베스트 셀러보단 스테디셀러에 주목해야 한다. 쉽게 읽히지 않더라도 고전 문학이 오랫동안 읽히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니까. 지금의 환경, 앞으로의 환경을 생각해보면 보안 솔루션은 더욱 중요하고 또 지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다. 현재 국내에 해커집단으로 이뤄진 보안 솔루션 기업은 흔치 않다. 여전히 블루오션이다.”

박 대표는 사회적으론 ‘조기성공’한 인물이다.

“아직 큰 성공은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한다. (웃음) 난 일찍 성공했다기보단 일찍 내가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다. 발견이 먼저다. 발견을 위해선 노력보단 관심이 필요한 것 같다. 자신에 대한 관심. 가끔 대학에서 강연을 해보면 정작 자신에 대한 탐구가 아쉬운 경우를 접한다. 학생들이 자신의 흥미, 재능을 발견하는데, 시간을 사용하면 좋겠다.”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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