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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같은 날 다른 재앙…정쟁으로 달라진 국감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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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겸 경기도 행정1부지사는 지난주 국회를 찾아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 계획을 의결했거나, 검토 중인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여야 간사를 만났다. 그는 경기 지역에 번지고 있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대한 총력 대응 중에 국감까지 받으면 방역 작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고, 경기도 공무원의 업무 과중 우려가 있으니 국감을 연기하거나 취소해달라고 호소했다.

ASF에는 ‘농촌당’, DLF에는 증인 달랑 1명

당초 경기도에 대한 국감을 계획·검토한 상임위는 국토교통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행정안전위·환경노동위 등이었다. 여기에 가장 빠르게 답한 것은 국토위였다. 국토위는 지난달 26일 국감 대상 기관을 논의하면서 경기도를 뺐다. 지난달 30일에는 농해수위가 응답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대한 국감을 지난 2일에서 18일 종합감사로 미루겠다고 밝힌 것이다.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의 “현장 총력 대응을 위해 국감을 연기해 달라”는 요청도 일부 반영된 결과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지난 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환경부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연합뉴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지난 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환경부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연합뉴스]

환노위는 국회 국정감사 첫날이었던 지난 2일 국감 개시 전 전체회의를 열어 국정감사계획서 변경의 건을 상정했다. 오는 16일로 예정됐던 경기도에 대한 국감 취소 등을 의결하기 위해서였다. 앞서 환노위는 지난 20일 전체회의를 열고 경기도를 포함한 주요 기관에 대한 국감 일정을 확정했는데, 당시에도 “이럴 때 우리가 피해 주는 게 오히려 재해에 대해 부조(扶助·거들어 도와줌)하는 것 아닌가 싶다”(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의견이 있었다. 그런데도 경기도 국감 계획을 강행했다가 ASF 관련 상황이 날로 악화하며 급히 일정을 바꿨다.

같은 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오는 18일로 계획된 경기도에 대한 국감 일정을 변경 또는 취소하는 것과 관련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 “ASF 발병 지역 지자체의 총력 대응을 도와야 한다”는 의견과 “ASF뿐만 아니라 다른 현안도 있으니 예정대로 하는 게 맞다”는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서다. 경기도 관계자는 “현재 도의 모든 실·국장들이 지역을 나눠 현장 상황을 챙기고 있는 마당에 국감까지 준비할 여력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이르면 4일이나 7일에 국회의 결정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3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의 한 양돈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해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농장 내부를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의 한 양돈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해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농장 내부를 조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돼지 농가에 ‘재앙’이라는 ASF에 대해선 여야 없이 ‘농촌당(黨)’을 결성하는 분위기지만, 금융계의 또 다른 ‘재앙’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는 모습이다. 수천억 원대의 원금 손실이 현실화 되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얘기다.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에서는 지난 2일 단 한 명의 증인도 채택하지 못한 채 국감을 시작하는 초유의 일이 있었다. 민병두 정무위원장은 국감 개시에 앞서 “사상 초유의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심각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암초는 ‘조국’이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의 사모펀드 투자 의혹을 들여다보기 위해 관련 증인을 국감장에 세워야 한다는 야당과,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여당이 맞서면서 DLF 사태의 책임을 따져 물을 은행권 증인들은 뒷전이 됐다. 관련 조사에 나선 금융감독원이 지난 1일 중간 검사 결과 발표에서 “DLF 판매서류를 전수 점검한 결과 서류상 하자가 있는 것만 20% 내외로, 추가 사실관계 확인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비율은 더 높아질 수 있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했지만, 국회는 ‘조국 이슈’를 두고 지루한 공방만 벌였다.

우리·하나은행의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펀드(DLS·DLF) 피해자비대위가 지난 1일 오전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앞에서 금융사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우리·하나은행의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펀드(DLS·DLF) 피해자비대위가 지난 1일 오전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앞에서 금융사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결국 정무위는 이날 오후 9시 반쯤 여야 합의를 통해 극적으로 16명의 증인·참고인 명단을 확정했다. 그 결과 조 장관 관련 증인은 2명, DLF 관련 증인은 1명(정채봉 우리은행 부행장)이었다. DLF 사태는 우리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라 KEB하나은행 등 여러 곳에 걸친 문제지만, 다른 증인은 협상 과정서 제외됐다.

조 장관 일가의 사모펀드 투자 의혹을 국감에서 들여다보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조 장관을 두고 ‘퇴진’ ‘수호’에 함몰된 여야가 정작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서로 다른 촛불이 켜지는 동안에도 한 번쯤은 돌아볼 일이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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