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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촛불집회 논란에 대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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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촛불집회, 일탈이냐 일상이냐.’ 2004년 3월 21일 필자가 쓴 중앙일보 시론의 제목이다. 당시 국회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를 규탄하는 대대적인 촛불집회가 열렸을 때다. 전통적인 대의민주주의 시각에서 보면 촛불시위는 제도권 정치를 우회해 이뤄지는 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인 현상으로 보일 수 있으나, 실상 촛불집회와 같은 직접행동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활성화된 일상적인 항의 방식이며 ‘2004 탄핵 반대 촛불집회’는 제도권 정치의 실패에 대한 시민정치의 정당한 개입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여하튼 촛불집회는 한때 일탈적이고 심지어 사회병리적인 현상으로까지 여겨졌었지만, 2002년 ‘효순이, 미순이 사건’으로 불리는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 추모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2004년을 거치면서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정치참여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촛불집회는 이제 일탈 아닌 일상 #시민들 4, 5년 만의 투표로는 불만 #관제시위 논란과 진영논리를 넘어 #촛불집회의 전통과 유산 계승해야

2008년은 촛불집회의 전성기라 할 수 있었다. ‘2008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반대 촛불집회’는 기존 시민사회단체들과 사회운동 진영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주도하는 촛불집회의 새 역사를 열었고, 시민사회 운동의 주류로 자리 잡는다. 흥미롭게도 당시 한 보수 신문의 칼럼니스트도 이를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촛불을 끌 수 있을까? 촛불시위에 대한 올바른 성격 규명부터 해야 한다. 현대의 시민은 통치 대상으로 머무르기를 거부한다. 4년 혹은 5년 만에 한 번 하는 투표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거리에서, 학교에서, 마을에서 직접 정치과정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 그러자면 정부는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 시민참여를 활성화하는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지만 촛불을 끄려면 촛불을 통치과정으로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다(동아일보, 정성희, ‘시민 권력과 거버넌스’).”

2016년은 아마 우리 촛불집회 역사의 정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016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는 단 한 건의 폭력도, 단 한 명의 체포자도 발생하지 않은 평화로운 집회를 이어가며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하고 새로운 민주 정부를 출범시켰다. 세계 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쓴 모델 케이스로 인정받는다. 2016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대한민국 1700만 촛불시민은 독일의 권위 있는 비영리 공익·정치재단인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수여하는 2017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상장의 문구는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촛불시민] 귀하는 대한민국의 평화적 집회와 장기간 지속된 비폭력 시위에 참여하고, 권위주의에 대항하며 신생 민주주의 대한민국 법치국가의 실현을 위해 헌신하고, 집회의 자유 행사를 통한 모범적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이 상을 수여합니다.”

이러한 촛불집회 전통에 비추어 볼 때, 지난 9월 28일 서울 서초동 반포대로 일대에서 시작된 ‘검찰개혁 촛불집회’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선 참여 인원 규모 논란이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기껏해야 5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추산에서 최대 200만 명에 이른다는 주장이 널뛴다. 보수·자유한국당 쪽에서는 참여 인원을 최소로 추산하면서 이번 촛불집회가 현 정권의 특정 지지층, 그들만의 집회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 의미 또한 최소화한다. 진보·더불어민주당 쪽은 전통적인 여권 지지층뿐 아니라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뜻을 같이하는 중도층까지 돌아오고 있다며 그 규모와 의미를 최대주의적으로 해석한다. 이제 막 시작된 첫 집회이기에 더 지켜봐야 하고, 앞으로 광화문과 서초동의 보혁 집회에 각각 얼마나 많은 시민이 참여할지도 관심사다. 확실한 건 지난 28일 촛불집회에는 주최 측 포함,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대규모의 시민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더 중요한 건 촛불집회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다. 우선 자유한국당과 일부 보수 언론은 이번 촛불집회를 관제 시위, 군중 정치, 홍위병 정치 등으로 폄하·비판한다. 한마디로 문재인 대통령의 동원령에 따라 현 정권의 지지자들이 촛불을 들고 나와 정당한 법 집행을 하는 검찰을 겁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등 독재자들이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고자 극렬 지지층을 동원했던 수법과 다르지 않다는 과도한 표현도 들린다. 이는 우리 촛불집회의 전통과 유산을 모독하는, 받아들이기 힘든 비판이며 촛불집회의 역사를 만들어온 촛불 시민들을 분노케 하는 언사다. 보수·자유한국당 쪽이야말로 어제 광화문 집회에 사활을 걸고 총동원령을 내렸다지만, 그곳에 모인 상당수의 보수적 시민들 또한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하러 나왔을 것이다.

‘촛불 민란으로 정치 검찰을 제압하자’라는 한 민주당 의원의 선동적 언사도 촛불집회의 정신에 어긋난다. 서초동에 모였던 촛불 시민들은 ‘조국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해도 너무하다.’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을 시민이 견제하자’ 등의 여러 의사를 표하러 나왔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느 TV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한 부모의 진솔한 표현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우리 아이들에게 누가 이 나라의 주인인지 보여주러 나왔습니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