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위기 체크? 탈북모자 놓쳤다

중앙일보

입력 2019.10.0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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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전남에 사는 채모(83)씨는 2016년 이후 정부의 ‘위기가구 리스트’에 8차례 올랐다. 2016년 4월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했다. 5명의 자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자 혜택이 끊겼다. 자녀의 소득·재산이 어느 정도 있으면 부모가 수급자가 될 수 없다. 대신 지자체의 노인돌봄서비스를 받았다.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못 받은 노인에게 가사를 지원하는 서비스다.

정부 위기가구 발굴시스템 한계
전남 83세 8차례 찾아냈지만
쌀 할인 고작, 복지 지원 겉돌아

채씨는 석 달 후 또 위기가구 리스트에 올랐다. 여전히 기초수급자 탈락 상태였고 월 4만여원의 월세살이를 하는 점 등 때문에 위기가구 발굴시스템에 포착됐다. 이후에도 6차례 위가가구에 올랐다. 거의 매번 지자체에서 ‘조치 완료’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지원한 게 별 게 아니다. 2016년 6~9월 쌀 50% 할인, 통합문화이용권 등이다. 대부분 민간단체에서 지원했다.

위기가구는 인공지능(AI)이 반복 학습(머신 러닝)을 해서 골라낸다. 단전·단수·건보료 체납 등 29가지 자료를 종합해 두 달마다 5만~7만명의 위기가구를 찾아서 통보한다. 지차제가 조사해서 적합한 복지를 지원한다. 그런데도 채씨는 왜 8차례나 위기가구에 들어갈까.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3일 사회보장정보원 자료를 분석해 위기가구 발굴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의원은 “위기가구 지원의 60%가 민간자원을 활용한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지원이어서 빈곤층이 복지 사각지대에 내몰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위기가구 발굴시스템은 2017년 1월~올 5월 62만9329가구를 발굴했다. 이 중 25%가 2회 이상 중복으로 발굴됐다. 채씨처럼 8회 중복이 6가구이다. 5회 이상이 4727가구에 달한다. 민간 지원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푸드뱅크·희망풍차(대한적십자사) 등에서 하거나 후원금을 연결하는 것이다. 대개는 ‘얕은 지원’이다 보니 위기가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김상희 의원은 “아무리 위기가구 발굴을 강화해도 기초수급 자격이 까다로우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며 “문재인 정부의 공약인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예산 왜곡도 문제다. 최근 10년 복지예산이 매년 10% 안팎 증가해 올해는 예산의 약 35%를 복지에 쓴다. 하지만 아동수당·기초연금·무상보육 등 소위 ‘보편적 복지’에 빨려 들어가면서 빈곤층 복지 몫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김 의원은 AI 발굴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굶주리다 숨진 것으로 알려진 탈북 모자 한모씨는 17개월 동안 23만60원(월 1만3550원)의 건보료를 체납했다. 이 정도면 위기가구로 선정돼야 한다. 반면 12개월 81만7760원을 체납한 이모씨는 지난 5월 고위험 가구로 분류됐다. 건보료 체납만으로 1029가구가 위기가구 리스트에 들었다. 김 의원은 “한씨의 건보료 연체 기간이 긴데도 AI가 발굴하지 못한 점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단전·단수·단가스 가구를 찾아갔더니 이미 문제가 해결된 경우도 많다. 또 오랫동안 건보료를 체납해 위기가구로 발굴된 사람을 찾아가 보면 이미 복지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지자체가 다른 경로를 통해 위기 상황을 인지해 대응했기 때문이다. AI가 일종의 ‘뒷북 발굴’을 한다는 뜻이다. 김 의원은 “머신러닝 시스템이 새로운 위기가구 패턴을 읽기 힘든 것 같다. 현장 공무원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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