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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만 외치는 못난 정치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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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가영
이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가영 사회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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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이후 검찰이 조 장관 주변을 압수수색하고 인사청문회 당일 아내 정경심 교수를 기소할 때 솔직히 눈살이 찌푸려졌다. 조 장관을 둘러싼 의혹이 있더라도 대통령의 장관 임명과 국회 인사청문회라는 정치 행위에 검찰이 불쑥 끼어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정치적 고비마다 검찰은 주요 플레이어로 작동했다. 주연은 아니지만 ‘신스틸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좋음과 싫음, 찬반은 나뉜다. 영화를 보며 주연만 부각되기를 원하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존재감 있는 조연을 사랑하는 팬들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조 장관 주변에 대한 수사 이후 여권과 지지자들은 검찰에 대해 연일 공세를 펴고 있다. 지난달 28일엔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시위를 벌였다. 반면 국정농단 수사 때 검찰 비난에 열을 올렸던 자유한국당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추켜세우고 있다.

노트북을 열며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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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행보를 마냥 신뢰감 있게 볼 수 없지만 최근 정치권에선 검찰보다 더한 불신과 불편함이 느껴진다. 정치인의 사명인 타협은 온데간데없고 무작정 검찰을 물고 늘어지며 “법대로 하자”는 태도가 모순적이어서다.

우선 정치무대의 핵심 주역인 문재인 대통령은 장관 지명 철회 여부를 ‘위법’과 결부시켰다. 여권 인사들은 앵무새처럼 이를 따라 읊었다. 당사자인 조 장관은 한술 더 떴다. 그는 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최종적 사법 결과는 재판 결과까지 포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2일엔 여당이 조 장관 자택 압수수색 당시 검사와의 통화가 대정부질문에서 공개된 것을 문제 삼아 수사팀을 피의사실 공표혐의로 고발했다. 한국당은 이 통화와 관련해 조 장관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했고,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배당했다. 이런 과정에서 여당은 철저히 국민여론과 정서는 외면한 채 “법대로”를 외쳤다. 과거 자신들의 언행과는 정반대다. 야당도 질세라 무슨 일만 생기면 고소·고발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이쯤 되면 정치권이 검찰을 정치무대의 정중앙으로 초대했다는 걸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검찰의 정치개입 길을 정치권이 활짝 열어젖힌 셈이다. 이는 명백한 정치인들의 직무유기이자 못난 행동이다. 국민이 정치인에 표를 줄 땐 복잡다단한 세상사를 잘 절충해 타협점을 이끌라는 책임도 함께 줬다. 그런 정치인들이 직무는 팽개친 채 서로 비판하다 걸핏하면 검찰에 기대고, 칭얼대고, 맘에 안 들면 독설을 퍼붓는다. 정치인들이 “법대로 하자”고 할 것 같으면 왜 세금으로 정당을 지원하고 선거를 하나. 그냥 수많은 검사·판사를 양성해내면 될 일 아닌가.

이가영 사회1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