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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북한의 SLBM 도발…낙관론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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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이 어제 아침 동해 해상에서 잠수함탄도미사일(SLBM)로 추정되는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합참이 밝힌 탄착거리는 450㎞지만 고각(高角)이 아닌 정상 각도로 발사했다면 사정거리는 2000㎞ 정도일 것으로 분석된다. SLBM은 은밀하게 이동하면서 발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상 미사일과는 비교가 안 되는 위협이다.

미국과의 실무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공표한 뒤 하루 만에 감행된 이번 도발은 협상 전망을 대단히 흐리게 한다. 북한이 협상에서 호락호락 양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미국이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지 않으면 언제든 판을 깨뜨릴 수 있다고 압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전략적 의도를 정확하게 읽는 것이다. 북한의 도발은 대미 압박을 극대화함으로써 협상력을 높이려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매번 ‘협상용’으로 단정하고 한쪽 측면만 보면 북한의 진정한 의도를 놓칠 수 있다. 북한은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 등 대화 국면 속에서도 한편으론 핵·미사일 전력을 꾸준히 강화해 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사이 북한은 고체추진체 기반의 미사일 개발에 성공해 종전의 액체연료 미사일에 비해 위협의 수위를 훨씬 높였다. 외부로 드러나는 미사일 개발뿐 아니라 핵물질 생산과 핵탄두 제조 역시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핵전력을 바탕으로 협상에 나서되 언제든 판을 깨고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게 북한의 본질이다.

상황이 엄중함에도 우리의 대응 자세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북한의 도발을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한 정경두 국방장관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합의문에 ‘미사일 발사 금지’가 명문화되어 있지 않다는 게 정 장관이 내세운 이유다. 국방 책임자의 판단이 이러하니 무슨 수로 북한에 단호한 대응을 할 수 있겠는가. 9·19 합의에는 육해공에서의 적대행위를 금지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미사일 도발은 적대행위가 아니란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은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김 위원장이 참석할 가능성에 대비해 행사 준비를 하고 있다며 한술 더 떴다. 성사 여부가 극히 불확실한 단꿈에 젖어 우리의 안보 태세가 마냥 느슨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북한의 어제 SLBM 도발은 대화 노력은 하되 대화 국면 자체가 깨질 경우를 대비한 플랜B를 세워야 함을 일깨워 준다. 대통령과 정부가 낙관론에만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