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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승현 논설위원이 간다

일본산 석탄재, 쓰레기인가 시멘트 산업 자원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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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시멘트업계 덮친 한·일 갈등

시멘트공장에 일본산 석탄재가 쌓여 있다.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우고 남은 재는 다시 시멘트의 원료로 재활용된다. 지난해 일본에서 128만톤이 한국으로 수입됐다. 김승현 논설위원

시멘트공장에 일본산 석탄재가 쌓여 있다.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을 태우고 남은 재는 다시 시멘트의 원료로 재활용된다. 지난해 일본에서 128만톤이 한국으로 수입됐다. 김승현 논설위원

“저희는 원료라고 하는데 무조건 ‘쓰레기’라고 합니다. 정말 자괴감이 듭니다.”

“일본산 석탄재 국산과 다르지 않아” #반대 여론에 2023년까지 70% 감축 #최병성 목사 “국민적 공론화 필요” #규제 대신 국내 석탄재 매립 줄여야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삼표시멘트 심연석 부장의 말이다. 지난달 30일 공장에서 만난 심 부장이 말한 원료는 ‘일본산 석탄재’다. 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기 위해 석탄을 태우고 남은 석탄재는 1990년대 이후부터 시멘트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시멘트는 주원료인 석회석과 점토 등을 함께 태워서 만드는데, 광산 개발이 제한되면서 점토와 성분이 비슷한 석탄재가 대체재가 됐다.

30년 넘게 사용되던 석탄재가 최근 ‘쓰레기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일본산 석탄재의 존재가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일본의 화력발전소에서 나온 석탄재 중 약 10%인 128만여 톤(지난해 기준)이 한국에서 시멘트 원료로 쓰인다. 화이트리스트 논란 등 최근 한·일 무역 갈등으로 일본산 석탄재에 관심이 커졌다. 일본 석탄재 수입 제한이 청와대 국민 청원에 접수됐다. 10만여 명이 참여해 답변 요건(30만명 이상)은 갖추지 못했지만, 일본산 불매 운동 와중에 “왜 일본 쓰레기까지 가져오느냐”는 공분이 퍼졌다.

일본 석탄재는 도대체 왜 바다를 건넜으며 쓰레기 논란에 휩싸이게 됐을까. 산업 구조와 환경 문제, 외교적 상황까지 뒤섞인 고차방정식인 ‘일본산 쓰레기 논란’을 짚어봤다.

톤당 5만원 받고 일본 석탄재 수입

최병성 목사

최병성 목사

2000년대 초반 일본산 석탄재가 수입되기 시작했다. 일본 화력발전소는 석탄재 매립 비용 부담이 컸다. 일본에 매립하려면 많게는 톤당 20만원이 드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한국 시멘트회사에 톤당 5만원을 주고 수출(?)하는 거래가 이뤄졌다. 일본 발전소 입장에서는 매립 비용을 아끼고, 한국 시멘트업계는 돈도 벌고 원료도 구하는 윈-윈 거래였다.

그러나 2006년부터 일본산 석탄재를 ‘일본 쓰레기’라고 반대해 온 환경운동가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중금속 기준치 등 안전 문제 등에 대한 검증이 부족하다는 주장이었다. 최초로 문제를 제기했던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는 “돈 몇 푼 받자고 일본 쓰레기를 가져와야 하느냐. 일본에 있는 한국 분들이 부끄럽다고 지금도 전화를 한다”고 비판했다.

2011년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지면서 방사능 위험 문제도 제기됐다. 환경 문제에 이어 방사능 안전성 문제, 최근엔 반일 감정 이슈까지 바람 잘 날 없는 10여 년이 시멘트 업계를 태풍처럼 훑고 지나간 셈이다.

한때는 애국자라 생각

국내 시멘트업계는 싸늘한 여론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 시멘트회사 전략자원화팀에서 일해 온 심연석 부장은 “시멘트 회사도 친환경이 중대한 목표다. 써서는 안 되는 원료를 사용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는데.
“24년 시멘트 회사에서 일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대체 원료를 연구하고 유럽 기술을 스터디했다. 일본의 사정을 압박해 거래를 성사시켰을 때엔 애국한다는 생각도 했다. 국가에 이바지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환경적 관점에 이어 반일 감정으로 매도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다시 점토를 쓰면 안 되나.
“1990년대 이후 광산 개발을 막으면서 석탄재를 활용한 것이다. 옛 광산 주변은 다 관광지가 됐다. 주민들이 광산 개발을 혐오하는데 쉽겠나.”
국산 석탄재는 왜 못쓰나.
“운송 비용이 문제다. 특히 우리나라 화력발전소는 서쪽에 몰려 있어서 동해안에 있는 시멘트 회사까지 운송 부담이 커진다. 톤당 2만5000원 정도인데, 매립비용은 톤당 1만원이니 땅에 묻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일본은 매립 비용 때문에 한국 수출을 선택하게 됐다.”
일본산을 줄이는 것에는 동의하나.
“아무 문제가 없는 일본산 석탄재를 못 쓰게 하는 데 당혹스러운 게 솔직한 마음이지만, 그래도 여론을 받아들여 감축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화학 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생각이다. 찬성과 반대 쪽 모두에게 시간이 필요한 상황인 것 같다.”
전문가가 아닌 국민은 환경과 건강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도 환경 문제가 늘 복병이다. 과거에 ‘굴뚝산업’이 각광받던 때도 있었지만, 이젠 시멘트업계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국민에게 친숙한 소비재 기업이 아니다 보니 제대로 설명할 기회도 못 갖고 오해가 더 커진 측면이 있다. 산업 자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있었으면 좋겠다.”

국민 생각한 대책 없었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지난달 말 정부와 시멘트 업계는 석탄재 수입 물량을 향후 5년 내 70% 감축하는 데 합의했다. 지난해 국내에서는 시멘트 생산에 315만톤의 석탄재가 사용됐는데 이 중 41%인 129만톤이 수입산이었고, 대부분이 일본산이다. 계획대로라면 2023년에는 39만톤 정도만 수입한다는 게 정부와 업계의 협의 결과다. 이에 대해 최 목사는 “믿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 대책에 왜 부정적인가.
“10년 전에도 수입을 줄여가겠다고 협약을 맺었다. 당시 80만톤이던 수입량이 지금은 두배 이상으로 늘었다. 앞으로 여론이 잠잠해지면 또 수입할 것이다.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일본산을 쓰면 안 되나.
“우리나라도 석탄재가 나온다. 그런데 일본에서 돈을 주니까 일본 쓰레기를 가져다 쓰게 된 것 아닌가. 우리나라 경제 순위가 얼마나 높아졌는데, 일본에 가서 쓰레기를 구걸해 오는가.”
업계에서는 품질이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새집에서 생기는 아토피 등의 원인이라는 의심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 가정집에 사용하는 시멘트는 더 건강해야 한다. 시멘트업계는 국가적으로 연간 1780억원을 절감한다고 하는데, 우리 인구수로 나누면 1인당 약 3400원 정도다. 그런 돈을 절약하려고 쓰레기 시멘트 속에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그동안의 대책은 국민의 관점에서 용인을 받은 적도 없고, 국민의 건강도 생각하지 않았다. 정작 국내 석탄재는 경관 좋은 바닷가 땅에 매립되고 있다. 기업 이윤의 문제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더 공론화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걱정만 키우면 안 돼

쓰레기 시멘트 논란 중에는 가연성 폐기물 사용에 대한 문제도 있다. 가연성 폐기물은 폐플라스틱, 폐타이어, 재생정제유 등을 말한다. 쓰레기 분리수거 등에서 모인 폐기물 중 고열로 태울 수 있는 것은 잘게 부서져 시멘트공장의 소성로(燒成爐)에서 시멘트 원료와 함께 태우는 데 사용된다. 2000도의 고온에서 태워 오염물질이 거의 없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지만, 시멘트공장에서 쓰레기를 소각한다는 반론도 있다. 이에 대해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유해성의 근거가 없는데도 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대응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폐기물을 태우면 유해하지 않은가.
“시멘트를 만들 때 폐기물을 사용하는 양과 비율은 유럽 선진국이 훨씬 높다. 유해성이 있었다면 유럽 선진국에서 먼저 문제가 됐을 텐데 그런 일이 없었다. 지속적인 연구와 모니터링은 필요하겠지만, 데이터상으로 문제가 없다. 감정적인 대응으로 오해를 키우는 것은 곤란하다.”
일본산 석탄재도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인가.
“한국과 일본 모두 호주에서 수입한 유연탄으로 화력발전을 한다. 국내산이나 일본산이나 같은 석탄재인 셈이다. 방사능 우려도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200㎞ 이상 떨어진 발전소의 석탄재를 쓰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항구에서 방사선 검사가 철저히 이뤄지고 있다.”
최 목사의 주장이 과한 것인가.
“제도 정비가 안 됐던 2000년대에는 그의 문제 제기가 기여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과거 주장만 계속하다 보니 근거가 부족하다. 이런 주장이 국민의 인식에 뿌리깊게 박혀 확산되는 게 우려된다. 우리 정부 대응도 문제다. 일본산 석탄재 수입 규제만 생각했다. 일본에는 타격도 없고 국내 산업에만 피해가 되는 미봉책이다.”
대책은 뭔가.
“시멘트는 원료가 필요하다. 원료를 사용하는 공장을 다그치는 식의 규제 정책은 방향이 틀렸다. 국내산 석탄재를 우선적으로 쓰게 하려면 국내 매립처분 부담금을 현재 1만원에서 3만원 정도로 올리는 게 맞다. 시멘트 업계도 오해와 우려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만 넘기자는 식의 태도는 해법이 되지 않는다.”

김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