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거절 두려움에 떠는 세일즈맨 지켜줄 두가지 심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이경랑의 4050세일즈법(17)

본사에 불만이 많은 현장의 목소리를 대신 듣고,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본사의 정책을 전달하는 것이 대리점 영업팀 관리자가 하는 일이다. [사진 pixabay]

본사에 불만이 많은 현장의 목소리를 대신 듣고,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본사의 정책을 전달하는 것이 대리점 영업팀 관리자가 하는 일이다. [사진 pixabay]

20대 때 모 기업에서 대리점을 관리할 때였다. 대리점 점주들을 만나 본사의 영업 정책을 전달하고(때론 감시자가 되기도) 대리점 영업사원들로부터 진행되고 있는 현안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린 나이에 영업 현장에서 베테랑으로 통하는 점주와 영업사원들에게 이런저런 내용을 전달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그보다 더 어려웠던 일도 있었다. 바로 ‘대리점 개설’ 활동이었다.

내가 맡은 지역 상권을 돌아다니다 해당 업종의 매장에 들어가서 책임자에게 인사를 한 다음 ‘친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상권 현황을 파악하고, 우리 브랜드 전문 매장이 되면 어떠냐며 ‘영업’하는 일이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광고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던 내가 입사하자마자 영업팀에 배치됐다.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며 길거리를 배회하는 그 기분이란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도 맡은 ‘직무’는 수행해야 했기에 쑥스럽지만 대리점 점주와 영업사원들을 만나고, 담당 상권의 다른 브랜드 대리점도 방문했다. 처음 낯설었지만 ‘아는 사람’이 되고, 서로 근황을 묻는 사이가 됐다. 그들과 믹스 커피 한잔을 나누고, 백반집에서 점심도 같이 먹게 됐다.

본사에 불만이 많은 현장의 목소리를 대신 듣고,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본사의 정책을 전달하면서 요즘 업계 현황은 물론 세상 사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미숙했지만 ‘내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었다.

쑥쓰럽고 민망한 세일즈 초년병

사람들은 자부심 강한 사람의 내공과 카리스마를 좋아하지만 그에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아 조언을 하거나 도움을 주는 데 주저하게 된다. [사진 pixabay]

사람들은 자부심 강한 사람의 내공과 카리스마를 좋아하지만 그에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아 조언을 하거나 도움을 주는 데 주저하게 된다. [사진 pixabay]

겨우 3년이 채 안되는 동안의 경험은 세일즈를 연구하고, 교육하고, 코칭하는 일을 하는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많은 영향을 끼쳤다. 쑥쓰러움, 민망함, 낯설음…. 이 모든 감정을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세일즈를 본격 경험하면서 주어진 첫 과제였다. 당시 복잡했던 내 심리는 어떤 책에서도 나와 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고객을 직접 만나고 발굴하는 B2B 세일즈부터 B2C·세일즈 트레이닝 등의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감정 극복의 기회를 가졌다. 감적 극복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이를 위해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세일즈가 인문학이고, 마케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심리와 기업과 소비자의 구매결정 과정을 파악해야 하는 다소 복잡하고 난해한 주제이지만 출발점에서 보면 이와는 조금 다르다. 바로 자기 자신의 ‘감정 극복‘이라는 과정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어떤 감정을 극복하는 것일까. ‘자존심’이라는 단어로 구체화해 보자. 거부에 대한 두려움, 그 과정에서 겪을 감정의 상처, 낯설음에 대한 불편함 등은 모두 자존심이라는 단어로도 표현될 수 있다. 두려움이 있지만 애써 무시하고, 상처를 받지만 치유하며, 불편하지만 참아내야만 하는 것, 그래서 세일즈 뿐 아니라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자존심 따위는 버려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그럼 세일즈맨은 과연 자존심을 버리고 일을 하는 것일까?

사전에서 자존심은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맞다. 자존심은 감정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존심이 상하면 화를 내게 되거나 상대를 반박하게 된다. 세일즈맨이 자신의 감정에 치우치면 일을 그르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일은 자존심을 버리고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존심은 큰 에너지가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경쟁을 통해 성장하게 하는 동기랄 수 있다. 자존심을 지켜내기 위해 더 열심히, 집중하는 경험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자존심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해 흔들리기 쉬운 감정이므로 본질이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는 행동이나 결정은 삼가야 한다.

조금은 불안정한 에너지인 자존심을 지켜내기 위해서 세일즈,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자부심’이라는 단어를 많이 강조한다. 사전에선 자부심을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된 것에 대해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풀이한다.

자존심이 누군가에 의한 평가의 개념이라면 자부심은 스스로의 믿음에 해당하므로 상대적으로 ‘내공 있는 자기 사랑’이라는 해석이 어울릴 듯하다. 그래서 내면의 만족을 가져다주고, 스스로를 자부심에 맞게 가꾸어 가게 한다. 그래서 자신이 속한 조직과 사회에 대한 애정으로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부심’이 강하면 무조건 좋은 것일까. 자부심이 너무 강한 나머지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유연한 변화나 대응력을 떨어뜨리게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부심 강한 사람의 내공과 카리스마를 좋아하지만 그에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아 조언을 하거나 도움을 주는 데 주저하게 된다.

성장의 에너지 ‘자존심’과 ‘자부심’

내가 하는 일의 가치와 방향, 사업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믿음이 강하면 상처받은 자존심은 '자부심'이라는 소신으로 극복된다. [사진 pixabay]

내가 하는 일의 가치와 방향, 사업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믿음이 강하면 상처받은 자존심은 '자부심'이라는 소신으로 극복된다. [사진 pixabay]

세일즈 현장에 있다 보면 ‘자존심’과 ‘자부심’ 두 단어가 어떻게 하모니를 이루어 감정을 극복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더 성장시키는 에너지’로 활용하는지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똑같은 상품을 판다고 할 때 비슷한 논리와 화법으로 고객에게 다가가지만 매 순간의 결정과 판단, 고객에게 쏟는 정성과 노력의 정도가 미세하게 다르다. 내공 있는 세일즈를 지속해서 펼쳐가는 세일즈맨에게는 멋진 자존심과 부드러운 자부심이 느껴진다.

세일즈맨 뿐 아니다.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가 아닐까. 누군가의 마음을 열어야 할 때, 내가 전달할 메시지를 제안할 때 거절 혹은 거절의 두려움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자존심’ 상하고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의 가치와 방향, 사업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믿음이 강하면 상처받은 자존심은 ‘자부심’이라는 소신으로 극복된다. 그리고 자존심을 다치지 않기 위해 돌아서서 노력하고 ‘자부심’이라는 무기를 더 강하게 다듬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20대 신입사원 시절 자존심에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성장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었으리라. 지금도 나에게 ‘자존심’은 너무나 중요한 열망의 에너지가 된다. 주어진 업무, 내가 하는 일의 무게감으로 버텨왔던 경험은  역시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사랑과 믿음의 ‘자부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날의 ‘자부심’ 역시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이정표다.

자존심은 우리가 더 성장해야 하는 이유를, 자부심은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고 활동해야 하는 이유를 각각 제공한다. 세일즈가 논리나 전략, 구조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우리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객의 감정, 설득의 심리뿐 아니라 나 스스로의 감정을 세심히 들여다보고, 잘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 세일즈의 출발이자 안정적인 성장의 필수 요소다.

이경랑 SP&S 컨설팅 공동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