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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정학적 위기 처음, 30년 갈 것” 총수들 줄잇는 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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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017년 4월 6일(현지시간) 정상회담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앙포토]

2017년 4월 6일(현지시간) 정상회담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중앙포토]

“최근 우리 기업인이 지정학적 리스크 심화에 대한 우려를 연이어 표출하고 있다.”

미·중 갈등에 기업 실적 악화일로 #대중국 수출 11개월째 마이너스 #한·일, 중동까지 불확실성 가중 #“단기로 안 끝난다” 장기전략 압박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1일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한미재계회의 결단 간담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허 회장이 꺼내 든 지정학적 위기론은 재계에서 나온 우려의 종합판 성격이다. 최태원 SK회장도 “20년 간 회장으로 일하면서 이런 종류의 지정학적 위기는 처음”이라며 “지정학적 위기가 (향후) 30년은 갈 것으로 본다. 단시일에 끝날 것 같지 않으니 적응하는 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SK의 밤 행사에 참석해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삼성리서치를 찾아 “불확실성이 클수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흔들림 없이 하자”고 강조했다.

최근 재계를 중심으로 지정학적 위기론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 지정학적 위기는 미·중·일 사이에 위치한 한국의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파생된 경제적 위기를 말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이어 한국과 일본의 경제갈등이 더해지면서 지정학적 위기론은 힘을 받는 모양새다. 여기에 지난달 한국의 최대 원유 수입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정유 시설에 대한 드론 테러가 이어지면서 지정학적 위기론은 현실이 됐다. 대기업 총수와 경제단체장의 목소리로 위기론이 표출되고 있지만, 재계에선 이런 위기론이 싹을 틔운 지 오래란 분석이 많다. 그 시작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이다. 엄치성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변수로 시작한 미-중 무역분쟁이 이제는 기업을 옥죄는 상수가 됐다”고 분석했다. 미-중 무역분쟁을 고려하지 않고선 기업 경영에 나서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왔다는 의미다.

‘상수’가 된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한국 기업의 피해는 통계로 증명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중국을 상대로 한 수출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9월까지 마이너스(전년 동기 대비)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을 상대로 한 수출은 올해 6월부터 마이너스(전년 동기 대비) 성장에 접어들었다. 문제는 수출에서 30%를 이상을 차지하는 대 중국 수출 감소폭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5월 대 중국 수출액은 110억1600만달러(13조2000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20.5%가 감소한 수치다. 올해 6월과 8월, 9월의 경우 대 중국 수출 감소폭은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을 기록했다. 이와 비교해 올해 1월과 2월 대 중국 수출 감소폭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9%, 17.3%를 기록했다.

중국 수출 감소폭이 증가함에 따라 기업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출 기업 4만5963곳 중 중국 수출에 의존하는 기업은 1만5694곳으로 전체의 34.1%를 차지한다. 이들 중 53.8%(8447개)가 중국 수출 비중이 50%를 넘는다. 제현정 무역협회 통상지원단장은 “미-중 분쟁은 단기적인 리스크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기업도 통상 전략을 세워야 할 때”라며 “단기적으론 모니터링 강화와 통상 전문 인력 확충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론 선진국에서 개도국으로 수출 지역을 바꾸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여기에 한-일 무역분쟁이 더해지면서 기업의 경영 불확실성은 더해지고 있다. 정부도 이런 위기를 인정하고 있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은 지난달 26일 한 경제포럼에 참석해 “미-중 통상분쟁, 노딜 브렉시트, 홍콩의 불안, 일본의 보복 등 불확실성이 중첩되고 있다”며 “정부, 기업 모두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나 너무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미중 무역분쟁 일지. [연합뉴스]

미중 무역분쟁 일지. [연합뉴스]

문제는 지정학적 위기가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며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우디와 이란을 중심으로 한 중동발 지역 분쟁이 대표적이다. 특히 사우디의 국내 수입 원유 비중에서 29%를 차지하고 있어 향후 중동 분쟁이 격화될 경우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제조업 타격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여기에 더해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와해하면서 세계 무역 질서가 국가 대 국가로 변화하는 것도 기업의 지정학적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미국의 입김으로 WTO 다자무역체제 약화는 불가피하다”며 “(정부가) 백화점식 수출지원 정책을 버리고 효율성 위주의 수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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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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