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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6조 '포에버21' 한인부부…미국판 동대문 신화의 몰락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13일 미국 뉴욕에 위치한 포에버21 대형 매장앞을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13일 미국 뉴욕에 위치한 포에버21 대형 매장앞을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말그대로 미국판 '동대문 신화'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동대문시장 격인 자바시장에서 25평짜리 작은 옷가게로 시작한 '포에버21'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SPA브랜드가 됐다. 더욱이 신화를 만든 주인공이 무일푼으로 미국에 건너가 접시닦이와 세탁소 등 온갖 궂은 일로 생계를 이어가던 한국계 이민자 장도원·장진숙 부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포에버21은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포에버21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접수하면서 장씨 부부의 성공신화도 막을 내렸다. 로이터통신은 포에버21이 미국 델라웨어주에 있는 연방파산법원에 파산법 11조(챕터11)에 따라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챕터11은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이 파산법원의 감독하에 영업과 구조조정을 병행하며 회생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난 6월부터 경영위기 및 구조조정설이 돌긴 했지만, 파산보호신청이 공식 접수되면서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씁쓸한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무일푼 한국계 이민자의 '성공 신화'   

포에버21을 설립한 장도원·장진숙 부부는 1980년대 초반 LA로 이민을 간 한국계 이민자다. 이들은 세탁소, 경비, 주유소, 식당일 등으로 마련한 종잣돈으로 LA 한인타운에 '패션21'이라는 이름의 옷가게를 차렸다. 이 옷가게가 포에버21의 모체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1년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에서 39위에 오른 포에버21의 장진숙(왼쪽)씨와 남편 장도원씨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2011년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에서 39위에 오른 포에버21의 장진숙(왼쪽)씨와 남편 장도원씨의 모습. [연합뉴스]

이후 포에버21은 '5달러 셔츠와 15달러 드레스'로 표현되는 저가 의류의 대중화를 이끌며 2000년대 초반 큰 성공을 거뒀고, 이후 지속적인 성장 가도를 달려왔다. 자라, H&M, 유니클로 등 세계적 SPA브랜드와 경쟁하며 한때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미국을 넘어 유럽과 아시아·중남미 등으로 매장을 확장하며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펼쳤다.

포브스 선정 억만장자, LA 10대 갑부 반열에  

포에버21이 급성장하면서 2011년에는 권위 있는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꼽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중 39위에 장진숙씨가 선정되기도 했다. 2016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400대 억만장자에 장씨 부부가 이름을 올리며 두 부부의 얼굴이 표지를 장식했다. 이 무렵 부부의 자산은 약 50억달러(약 6조원)로 평가됐으며 LA지역 부호 10위 안에 꼽혔다.

 포브스 ‘미국 400대 부자’ 특별호(2016년 10월)에 나온 장도원ㆍ장진숙 포에버21 대표. [사진 포브스]

포브스 ‘미국 400대 부자’ 특별호(2016년 10월)에 나온 장도원ㆍ장진숙 포에버21 대표. [사진 포브스]

사업 확장에 따라 장씨 부부의 자녀들도 경영에 뛰어들며 포에버21은 가족경영 시스템을 갖췄다. 도원씨가 총괄 경영을 맡았고, 진숙씨가 판매를 담당했다. 2009년부터는 명문대에 다니던 장녀 린다장(현재 부회장)과 차녀 에스터장이 경영에 참여해 각각 마케팅과 디스플레이를 담당했다.

온라인거래 활성화에 매출 '뚝'…상표권침해 논란도

뉴욕타임스(NYT) 등은 포에버21의 추락 원인으로 지나치게 공격적인 매장 확장을 지적했다. 실제 린다장 부회장은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6년도 안 되는 기간에 7개국에서 47개국으로 뻗어갔는데 그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아마존 등 온라인 거래 활성화로 인한 오프라인 매장 매출 감소도 위기에 한몫 했다. 린다장은 "매장 방문객들이 줄고 온라인으로 매출이 더 많이 넘어가는 등 (의류)소매업이 변하는 것이 확실하다"고 밝힌 바 있다.

포에버21은 상표권 침해로 50여 차례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의 유명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가 포에버21을 상대로 자신의 '7링스' 뮤직비디오와 5집 앨범 '생큐, 넥스트' 표지를 무단으로 도용했다며1000만달러(약 12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화제가 됐다.

포에버21은 파산신청과 함께 캐나다·일본을 포함한 40개 국가에서 사업체를 폐쇄할 예정이다. 미국 내에서 178개 점포, 전 세계를 통틀어 최대 350개 점포가 문을 닫게 된다. 다만 매장 소유주가 운영하는 미국 내 수백개 점포,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 점포, 웹사이트 운영은 계속하기로 했다. 블룸버그 통신이 입수한 파산 신청서에는 포에버21의 부채가 자회사 것까지 합산한 기준으로 10억∼100억 달러(1조2천억∼12조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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