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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발품 팔아 '호국영웅' 아버지 기록 찾아준 예비군지휘관

중앙일보

입력

전인석(55) 육군 35사단 전주대대 전주시 완산구지역대장이 지난달 27일 전주시 완산구 교동 군경묘지를 찾아 6·25 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고(故) 이점수(아명 이상오) 하사의 묘비를 닦고 있다. [사진 육군 35사단]

전인석(55) 육군 35사단 전주대대 전주시 완산구지역대장이 지난달 27일 전주시 완산구 교동 군경묘지를 찾아 6·25 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고(故) 이점수(아명 이상오) 하사의 묘비를 닦고 있다. [사진 육군 35사단]

"(우리) 모녀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이 이제야 풀린 것 같습니다."

[착한뉴스] 전인석 전주 완산구지역대장 #故 이점수 하사 6·25 전사자 자료 발견 #1953년 연천지구 전투서 포탄 맞아 숨져 #2009년 이길순씨 부탁 받고 돕기 시작 #이씨 "66년간 응어리진 한 이제야 풀려" #유족연금 혜택도…35사단, 훈장 전달키로

전북 전주에 사는 이길순(66·여)씨는 1일 육군 35사단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김모(86)씨 배 속에 있을 때 육군에 입대해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 고(故) 이점수씨가 6·25 전쟁 중 북한군과 싸우다 전사했다는 사실을 66년 만에 공식 기록에서 확인해서다. 국가유공자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이씨는 육군 35사단 전주대대 전인석(55) 전주시 완산구 지역대장에게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전인석 대장은 이씨 부탁으로 10년 노력 끝에 이씨 아버지의 6·25 전사자 기록을 찾아 준 은인이다.

35사단에 따르면 이씨는 전 대장이 전주 덕진구 기동대장으로 근무하던 2009년 7월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당시 이씨는 "제적등본(호주를 기준으로 모든 구성원의 관계·신상 등을 기록한 문서)에는 아버지가 1953년 6월 27일 전사한 것으로 나오는데 육군본부 등에 물어봐도 (이를 뒷받침하는) 병적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지금껏 국가유공자 유족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병적은 병역 의무자의 병역 사항과 학력·경력·등록 기준지 등을 기재한 자료를 말한다. 이씨는 앞서 2005년 7월 육군본부에 아버지의 병적 확인을 신청했지만 "자료를 찾을 수 없다"는 회신을 받고 유관 기관을 전전하다 전 대장을 만났다.

쉰 살이 넘어서야 아버지의 전사자 기록을 찾아 나선 건 이씨 형편이 곤란해서였다는 게 사단 측 설명이다. 어머니 김씨는 보따리장수를 하며 이씨 남매를 키웠다. 이씨 위로 오빠가 있었지만, 9세 때 익사했다고 한다. 가난 때문에 혼인신고를 못 한 김씨는 남편이 전사하자 딸을 큰아버지 호적에 올렸다. 김씨는 "배우지 못한 데다 생계유지에 급급해 딸의 호적 정리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이씨는 현재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홀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오랫동안 모시고 살던 어머니는 요양병원에 있고, 이씨가 병원비를 대고 있다.

전인석(55) 육군 35사단 전주대대 전주시 완산구지역대장. [사진 육군 35사단]

전인석(55) 육군 35사단 전주대대 전주시 완산구지역대장. [사진 육군 35사단]

이씨가 전사자 기록 찾기에만 매달릴 수 없는 처지여서 전 대장이 발품을 팔았다. 이씨 아버지의 병적 기록을 찾기 위해 전북지방병무청과 전북동부보훈지청·육군본부·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등에 질의하고 자료를 요청했다.

4년 가까이 허탕만 치다가 2013년 7월 전주시청에서 이씨 아버지의 묘적대장을 찾으면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씨 아버지 유골은 전주시 교동 군경묘지에 안장돼 있었다. 전 대장은 묘적대장 기록을 단서로 올해 5월 전사자 화장 보고서도 확보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고 이점수(아명 이상오) 하사는 1952년 8월 7일 입대 후 1사단 11연대 3중대 9중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그리고 1953년 6월 27일 경기도 연천지구 전투에서 북한이 쏜 82㎜ 포탄에 맞아 전사했다. 당시 하사는 부사관이 아니라 현재 상병에 해당한다.

이씨 아버지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없었던 이유는 오랜 세월이 흐른 데다 동명이인(同名異人)이 많고 제적등본과 병적서에 기록된 이름·생일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사단 측은 설명했다. 어릴 때 동네에서 '이상오'로 불렸던 이점수씨는 전사자 화장 보고서에는 '이상오', 묘적대장에는 '이상호'로 적혀 있었다. 한자도 오(五)와 호(虎)로 제각각이었다.

전 대장은 고인의 묘적대장 등을 토대로 전북지방병무청으로부터 이씨 아버지의 병적증명서를 발급받았다. 또 6·25무공훈장 찾아주기 조사단에 자료를 보내 이씨 아버지가 1954년 9월 30일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기록도 확인했다.

전 대장은 "아버지를 잃고 가난과 싸워온 유족들의 사연이 너무 안타까워 돕게 됐다"며 "(국가유공자) 유족으로서 충분한 대우와 혜택을 받아 그동안의 고통과 원망을 잊고 행복한 생활을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1983년 육군3사관학교 20기로 임관한 전 대장은 2004년 소령으로 전역, 2005년 예비군지휘관에 임용됐다.

지난해 11월 전북 순창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육군 35사단 신병수료식 모습. [사진 순창군]

지난해 11월 전북 순창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육군 35사단 신병수료식 모습. [사진 순창군]

하지만 이씨가 국가유공자 유족 대우를 받으려면 넘어야 할 고비가 있다. 아직 사망한 아버지와의 부녀 관계를 공식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전주지법에 친생자 관계 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 과정도 전 대장이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연결해 주는 등 이씨를 돕고 있다.

국가보훈처가 국가유공자 유족연금 신청을 받아들이면 이씨는 육군본부에 최초로 병적 확인을 신청한 2005년으로 소급 적용된 유족연금을 받게 된다고 한다. 최환 35사단 공보관은 "사단은 2일 석종건 사단장 주관으로 전 병력이 참석한 가운데 '호국 영웅'인 고 이점수씨의 화랑무공훈장을 딸 이길순씨에게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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