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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용의자 특정 계기된 수원·부천 사건 여전히 미궁…범죄자 DB가 없다

중앙일보

입력

# 2005년 3월 24일 오후 8시20분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의 한 주점. 전날 귀가하지 않은 아내를 찾아온 이 주점 여주인의 남편은 끔찍한 상황을 목격했다. 아내 A씨(당시 53세)가 목이 졸려 숨져있었다. 출동한 경찰은 A씨가 성폭력을 당한 뒤 살해된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용의자를 추정할 수 있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살인사건 이미지, [연합뉴스]

살인사건 이미지, [연합뉴스]

#2011년 7월 1일 오후 5시30분쯤 부천시 오정구 여월동의 한 공원. 심하게 부패한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신원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려 한 듯 일부 훼손한 흔적도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조사 결과 이 여성은 40대 중반으로 혈액형은 A형이었다. 석 달 전 질식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명됐다. 그러나 현재까지 여성의 신원은 물론 용의자도 특정되지 않았다.

장기 미제로 남은 이들 사건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이모(56)씨를 특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경찰은 지난해 이들 사건에 대한 DNA 분석을 재감정 해달라고 국과수에 의뢰했는데 용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DNA가 검출됐다.
2014년, 8년 전 사건의 증거물에서 용의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DNA가 검출되자 혹시나 한 경찰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증거물 일부 증거물에 대한 DNA분석을 의뢰했다. 그리고 5차, 7차, 9차 사건의 증거물에서 용의자로 추정되는 DNA가 검출됐다.
전국 범죄자 DNA 데이터베이스(DB)로 대조하자 이씨가 용의자로 지목됐다. 경찰은 나머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현장 증거물에 대한 DNA 분석도 의뢰했다. 현재 4차 사건에 대한 증거물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 [연합뉴스]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 [연합뉴스]

화성 용의자는 특정됐지만…수원·부천도 미제

그러나 수원 주점 여주인과 부천 공원에서 발견된 여성 사건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수원, 부천 사건에서 나온 DNA 정보는 남성 유전자"라며 "이씨의 경우 처제 살인사건으로 범죄자 DB에 DNA가 등록돼 용의자 특정이 가능했지만 수원과 부천 사건에서 각각 검출된 남성 유전자는 범죄자 DB에선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원과 부천 사건에 대한 재조사에도 착수한 상태다.

경찰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특정을 필두로 모든 미제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20일 대구 와룡산을 찾아 화성 연쇄살인과 함께 국내 3대 미제 사건 중 하나인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을 원점에서 재수사하겠다고 했다. 1991년 3월 와룡산으로 도롱뇽 알을 찾으러 갔다 초등학생 5명이 실종된 사건인데 이들은 11년 뒤인 2002년 9월 와룡산 4부 능선에서 유골로 발견됐다. 시신에서 두개골 손상 흔적이 발견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2006년 3월 공소시효(당시 15년)가 끝나며 장기 미제 사건이 됐다.

2017년 9월 와룡산에서 열린 ‘개구리소년 유골 발견 15주기’ 추모식 [중앙포토]

2017년 9월 와룡산에서 열린 ‘개구리소년 유골 발견 15주기’ 추모식 [중앙포토]

경찰은 영화 '그놈 목소리'의 소재가 된 이형호(당시 9세) 유괴·살인사건, 포천 여중생 살인사건 등 다른 미제 사건도 재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 17개 지방경찰청에서 수사 중인 미제 사건은 모두 268건. 1999년 황산 테러로 사망한 6살 아동과 관련된 이른바 '태완이법'으로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처벌도 가능하다.
실제로 2001년 6월 경기 용인 '교수 부인 살인사건'과 2001년 2월 전남 나주 '드들강 여고생 성폭력·살인사건 등 52건(여죄 139건)은 해결했다.
이들 사건과 관련해 검거된 인원만 79명이고 52명이 구속됐다.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에 DNA법 사라질 수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특정뿐만 아니라 해결된 미제 사건 일부도 DNA 분석과 범죄자 DB 대조 등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범죄자 DB는 흉악범의 조기 검거를 위해 2010년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을 제정하면서 시작됐다. 수형자와 구속된 피의자, 각종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가 정보가 저장돼 있다. 구치소와 교도소에 수감되면 즉시 DNA 검사를 받아 결과를 DB 시스템에 저장하는데 지난해 기준으로 23만3000여명분의 DNA가 등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과 경찰은 지난해까지 사건 현장 증거물에서 발견된 21만건의 DNA 정보를 기존 DB에서 확인해 8130건이 일치하는 결과를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하지만 내년부터는 이 범죄자 DB를 활용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가 DNA법에 대해 '헌법 불일치' 결정을 내렸다. 채취당하는 사람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오남용 우려가 크다는 게 이유다.
헌법재판소는 위헌 소지가 있는 법 항목을 올해 말까지 개정할 것을 요청하면서 올해 말까지 국회가 관련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DNA 활용 수사는 불가능해질 수 있다. 현재 국회에는 DNA 채취 전 대상자가 법원에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는 등의 개정안 2건이 계류돼 있다. 국회가 올해 안에 서둘러 처리하면 현재처럼 관련 DB를 수사에 활용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인간은 각자 다른 DNA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DNA는 진범을 특정할 수 있는 가장 큰 증거"라며 "다른 미제 사건을 모두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개정법이 꼭 통과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화성 용의자, 8차 조사에서도 연관 부인
한편 경찰은 30일 부산교도소를 찾아 이씨를 상대로 8차 대면조사를 벌였다. 이씨는 여전히 "나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연관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모란·진창일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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