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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에 지시한다" 文의 830자…'국민' 5번 언급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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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후 발언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후 발언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검찰총장에게 지시한다”는 직접적인 표현을 써가며 ‘검찰 개혁’을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조국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인권을 존중하고 민생에 집중하는 검찰권 행사 및 조직 운용 방안’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명령 대상으로 검찰총장을 적시하며 “신뢰받는 권력기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하라”고 말했다.

“신뢰 방안 내라” 검찰 개혁 요구 #조국 검찰 운용안 보고받고 추인

뉴욕에서 귀국한 이튿날 “검찰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성찰해주기 바란다”라고 한 데 이어, 주말 이틀이 지난 뒤 곧바로 강도 높은 발언을 한 것이다. 귀국 후 첫 메시지가 “분노했지만 절제된”(여권 핵심 관계자) 것이었다면, 이날 메시지는 직설적이었다.

문 대통령은 “모든 공권력은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한다. 특히, 권력기관일수록 더 강한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권 독립은 대폭 강화된 반면, 검찰권 행사의 방식이나 수사 관행, 또 조직문화 등에 있어서는 개선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면서다. 문 대통령은 자신을 향해서도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은 행정부를 구성하는 정부 기관으로,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에 대해 검찰은 물론 법무부와 대통령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부족했던 점을 반성해야 할 것”이라면서다. 그러면서 “법무부 장관이 보고한 검찰의 형사부, 공판부 강화와 피의사실 공보준칙이 개정 등은 모두 검찰 개혁을 위해 필요한 방안들”이라고 했다. 조 장관을 '검찰개혁'의 주체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조 장관의 '개혁 방향'도 추인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다만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검찰 수사에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한 듯 “당장 그 내용을 확정하고 추진할 경우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를 위축시킨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며 “장관과 관련된 수사가 종료되는 대로 내용을 확정하고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했다.

주목할 부분은 ‘국민’이다.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들 목소리가 매우 높다”며 이날 발언을 시작한 문 대통령은 “국민 앞에 겸손해야 한다”,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 “국민들 목소리”,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권력기관” 등의 표현으로 830자 남짓한 발언 중에 다섯 차례나 국민을 언급했다. 지난 주말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일대에 지지층이 대거 집결해 ‘검찰개혁’을 주장한 것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련의 흐름이 ①문 대통령의 ‘검찰 성찰해야’ 발언 →②지지층의 검찰 개혁 요구 → ③문 대통령의 개혁 당위 재강조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야권에서 “사법 계엄령”(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문재인 홍위병이 벌이는 관제 데모”(오세훈 전 서울시장)이란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조국 법무장관이 30일 정부 과천종합청사에서 열린 법무.검찰 개혁위위원회 2기 발족식에서 행사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강정현 기자

조국 법무장관이 30일 정부 과천종합청사에서 열린 법무.검찰 개혁위위원회 2기 발족식에서 행사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강정현 기자

이날 보고는 조 장관으로선 첫 업무보고인데, 행사가 끝난 뒤에야 기자들에게 공지됐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청와대가 관련 내용을 기자단에 알린 뒤에야 알게 됐다고 한다. 급작스럽게 이뤄진 셈인데, 그 배경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7일 검찰 개혁과 관련한 대통령의 말씀을 전달했는데, 그때 결정됐다. 문 대통령이 업무보고를 받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과 주말 집회와의 연관성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문 대통령은 직접적인 언급을 안 했다고 한다. 다만, 청와대 관계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숫자의 사람들이 모였다. 수많은 사람이다 함께 촛불을 들고 한목소리를 외쳤다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조 장관에 대한 수사가 한창인 검찰을 향해 연달아 개혁을 주문하는 것 자체가 수사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청와대는 “잘못된 수사 관행에 관해 얘기를 한 것이지, 수사 자체를 문제 삼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입장이다. 수사는 수사대로 엄정하게 진행하되, 인권 측면을 무시하거나 피의사실을 흘리는 등의 행위를 하지 말라는 지시라고 설명한다.

일각에선 이른바 ‘조국 국면’이 이어지고 청와대의 개혁 주문이 강경해지는 상황이 윤 총장의 거취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조 장관에 대한 수사 자체를 문제 삼은 적 없고, 검찰 개혁은 당연한 주문이다. 윤 총장의 거취를 언급하는 건 생뚱맞다”고 주장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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