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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 신입 맞는 기업들…"전망 좋은 임원실 방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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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국쓰리엠(3M)은 지난해 공간을 확 바꿨다. 한강이 보이는 전망 좋은 창가 자리에는 공용 휴게 공간인 라운지를 설치했다. 이전엔 임원이 돼야만 즐길 수 있는 ‘호사’였다. 업무 공간도 1인실부터 20인실까지 다양하게 바꿔놓고 직원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자율좌석제를 도입했다. 이 회사의 김중 총무팀장은 “처음 만든 1인실은 조용히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젊은 직원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쓰리엠은 공간 리모델링 전부터 각 부서 젊은 직원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했다. 김 팀장은 “자율 좌석제와 1인실 등을 만들면서 사무공간에 만족하는 직원이 리모델링 이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기업들 사무공간 리모델링 붐 #창가 명당자리는 공용 라운지로 #1인~20인실 만들어 자율좌석제 #SKT 카페식 오피스 만족도 92%

SK텔레콤은 올해 초 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 빌딩에 ‘5G 스마트오피스’를 열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스마트오피스가 문을 연지 6개월이 지난 뒤 설문조사에서 ‘예전 근무환경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구성원이 67.7%였다“고 했다. [사진 SK텔레콤]

SK텔레콤은 올해 초 서울 종로구 센트로폴리스 빌딩에 ‘5G 스마트오피스’를 열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스마트오피스가 문을 연지 6개월이 지난 뒤 설문조사에서 ‘예전 근무환경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구성원이 67.7%였다“고 했다. [사진 SK텔레콤]

 사무공간을 혁신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바둑판처럼 배치된 고정좌석(hot desk) 대신 공유 공간을 늘려 협업과 혁신을 촉진하는 실리콘밸리 기업 문화의 영향이다. 특히 국내에선 2~3년 전부터 90년대에 태어난 젊은 신입직원이 기업에 입사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흐름이 더 탄력을 받고 있다. 기업에서는 “젊은 세대 직원은 기성세대 직원과는 달리, 높은 연봉이나 승진보다 개인의 성장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이들 세대의 트렌드에 맞춘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광고회사 TBWA코리아는 지난해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한 사무공간 리모델링을 했다. TBWA코리아 관계자는 ’직원들의 협업이 많은 광고회사의 업무 특성상 회의 공간을 늘리니 소통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TBWA코리아]

광고회사 TBWA코리아는 지난해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한 사무공간 리모델링을 했다. TBWA코리아 관계자는 ’직원들의 협업이 많은 광고회사의 업무 특성상 회의 공간을 늘리니 소통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 TBWA코리아]

 SK텔레콤은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 임대한 신축 빌딩에 ‘5G 스마트오피스’를 마련했다. 얼굴 인식으로 출입구를 통과해 사전 예약한 좌석에 스마트폰을 꽂으면 모니터가 개인 업무용 화면으로 바뀐다. 쾌적한 환경에서 자유로운 복장으로 일하는 직원을 보면 카페 같은 분위기다. 이 회사의 전성우 스마트워크 추진팀장은 “92% 직원이 이 오피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며 “고정좌석제 시절엔 막내가 출입구 앞에 앉았지만, 이제는 자유롭게 앉기 때문에 ‘카페 같다’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광고회사 TBWA 역시 지난해 업무 공간을 크게 바꿨다. 이 회사 관계자는 “광고업엔 젊은 직원 비중이 높은데 최근 90년대생이 부쩍 늘어 고심했다”며 “각층에 개방형ㆍ폐쇄형 공간을 다양하게 배치해 업무 몰입도를 높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트렌드 분석 전문가인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신입사원이 ‘칼퇴근’하고 꿈을 찾겠다며 ‘사표’를 내는 90년대생 신입사원을 보고 선배는 ‘요즘 애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며 ”90년대생 신입사원을 맞이하는 기업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27일 사무 가구ㆍ인테리어 업체 퍼시스의 세미나에 참석해 밀레니얼 세대의 일과 삶을 분석, 이같이 발표했다.

 해외에서도 자율좌석제 같은 사무공간 변신 시도는 이어지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유럽 본부는 최근 런던의 새 사무실에 입주하면서 지정 좌석을 없앴다. 공용 책상과 혼자 일할 수 있는 프라이빗 룸, 휴게 공간 등을 만들었다. 최고위 임원인 파트너 100여 명의 개인 사무실도 외근할 때는 직원 회의실로 개방했다. 층마다 직원의 편의 서비스를 책임지는 ‘워크플레이스 엠배서더’를 배치했다. 이를 보도한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런 사무공간 혁신은 능력 있는 화이트칼라 직원의 만족도를 높이고, (고용주로선) 업무 생산성을 높이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27일 서울 송파구 퍼시스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퍼시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27일 서울 송파구 퍼시스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퍼시스]

 논란도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자율좌석제를 도입한 기업에서 직원들이 명당 찾느라 아침부터 진땀을 빼느라 시간을 버리고, 일부 좌석은 고연차의 지정석이 돼버려 남은 자리를 둘러싼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우려한 국내 한 대기업은 자율좌석제를 도입한 뒤 이틀 이상 같은 자리에 앉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권위주의 문화가 강한 국내에선 공간 못지않게 조직문화 개선에 더 노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난도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는 회사에서 빨리‘승진’하기보다 내가 이 직장에서 일을 통해 얼마나 ‘성장’하고 있느냐를 고민하는 세대”라며 “이들의 창의성과 만족도를 높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존의 ‘상명하복’ ‘꼰대’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공간을 바꾸고도 성과를 낼 수 없다”며 “기성세대와는 다른 요즘 세대 직장인을 ‘내부의 고객’이라고 보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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