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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칫거리만 보면 기운이 난다” 김수미표 손맛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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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배우 김수미. 광고를 세 개나 거절했을 정도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배우 김수미. 광고를 세 개나 거절했을 정도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칠순 배우 김수미가 30일 새 예능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가 국밥집 주인이 돼 출연자들에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먹이며 인생 상담을 해주는 ‘밥은 먹고 다니냐?’(SBS플러스)다. tvN ‘수미네 반찬’,  MBN ‘최고의 한방’과 함께 그가 MC를 맡은 예능만 벌써 세 개. 그뿐인가. 11월부터는 드라마 ‘99억의 여자’(KBS2)에도 출연하고, 그가 타이틀롤을 맡은 뮤지컬 ‘친정엄마’는 내년 3월까지 지방 공연 일정이 확정됐다. 또 지난 6월부터는 네이버 오디오클립 ‘시방상담소’도 진행하며 갖가지 고민에 대한 속 시원한 처방을 내놓고 있다. 바야흐로 ‘김수미 전성시대’다. 그를 만나러 지난 26일 ‘친정엄마’ 공연장인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삼성홀을 찾아갔다. 9월 7일부터 그가 매주 네 차례씩 무대에 오르는 곳이다.

50년차 배우 요리 예능으로 각광 #“나 열여덟에 세상 떠난 친정엄마 #그 반찬 맛 재현하려다 솜씨 늘어” #‘할배’ 혼밥족에게도 조리법 전수

명실상부한 전성기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의 9월 여자 광고모델 브랜드 평판 조사 결과에서도 21등을 차지했다. 50위까지 중 단연 최고령이다. 인기 비결이 뭘까.
“1970년 데뷔한 이후 세 번째 전성기 같다. 첫 번째는 ‘전원일기’ 일용엄니 시절이고, 두 번째는 영화 ‘가문의 영광’ ‘마파도’ 때였다.  이번엔 요리로 시작된 전성기인데, 이번이 제일 강력한 것 같다. 동네 사우나에서 만나는 아주머니들까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 놀랐다. 가식 없이 진정성 있게 시청자들과 소통하려고 했던 것이 통한 것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손맛은 프로그램 콘셉트를 위해 급조한 장기가 아니다. ‘전원일기’ 출연 당시에도 매주 녹화 날마다 출연진·제작진 식사를 준비해 가기로 유명했다. 1980년대 요리연구가 이종임씨와 함께 TV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고, 요리책도 여러 권 냈다. “다 죽어가다가도 김칫거리만 보면 기운이 난다”는 그는 철철이 열무김치·갓김치·파김치 등을 담아 나눠주는 게 일상이다. 집에 냉장고 14개, 50인용 영업용 전기밥솥 등을 갖춰두고 손 큰 음식 솜씨를 발휘한다. “게장이나 김치 맛이 딱 들었을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빨리 먹으러 오라고 전화를 한다. 그러면 파마를 말던 중에도 바로 와서 금방 열 명은 채운다”고 했다.

30일 첫 방송한 ‘밥은 먹고 다니냐?’에서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 역할을 하는 김수미. [사진 SBS플러스]

30일 첫 방송한 ‘밥은 먹고 다니냐?’에서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 역할을 하는 김수미. [사진 SBS플러스]

이번 전성기의 출발점이 된 프로그램은 지난해 6월 시작한 ‘수미네 반찬’이다. 대단한 요리 아닌 일상의 반찬을 앞세운 이유는.
“점점 집에서 밥을 안해먹는 시대다. 혼밥이 늘어나면서 대충 때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다들 왜 사냐고 물으면 먹고 살려고 한다고 대답하면서 왜 그러는지 안타깝다. 정성스럽게 음식을 해먹는 건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다. 또 음식을 해서 나눠먹으면 금세 피붙이 같은 정이 생긴다. 밥 한술 먹고 얘기하자고 하면 일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기도 한다. 그런 문화를 젊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요즘 ‘수미네 반찬’에선 ‘할배특집’이 진행 중이다. 임현식·김용건·전인권 등 ‘할배’들에게 오이무침·멸치볶음·감자채볶음 등 기본 반찬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다. “혼자 있는 할아버지들이 제일 못 먹는다. 그러다 덜컥 암에라도 걸리면 항암치료 받을 기력도 없다”며 기획의도를 전했다.

그는 자신의 음식 솜씨에 대해  “천부적으로 손맛이 있다. 주물럭주물럭해도 맛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의 손맛의 근원은 그의 어머니다.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그는 “반찬 가짓수가 많아 밥상에 그릇을 포개놓고 먹었다”고 기억할 만큼 입맛 호사를 누렸다. 하지만 열세 살에 서울의 중학교로 진학, 자취를 하면서 단무지 반찬 하나로 버텨야 하는 처지로 급전직하했다. 열여덟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다시는 맛볼 수 없었던 어린 시절 반찬을 그는 스스로 재현해냈다. 그는 “입덧할 때 우리엄마 겉절이와 풀치(갈치새끼)조림이 너무 먹고 싶어 눈물이 났다. 애 낳고 한번 해보자 하고 했는데, 점점 엄마 음식의 맛이 났다”고 말했다.

어머니와의 짧은 추억은 지금까지도 그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요소다.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 광고도 세 개나 거절했다”는 그가 뮤지컬 ‘친정엄마’ 출연에 기꺼이 나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2010년 초연 때부터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출연하고 있다”며 “내가 연기하는 친정엄마가 딱 우리 엄마다. 자식을 끔찍이 알고 자식에게 한 인생을 쏟아붓고 산 엄마. 무대에 설 때마다 엄마를 다시 한번 만나는 것 같아 내게 큰 힐링이 된다. 엄마 생각이 나서 매번 공연할 때마다 운다”고 말했다.

고정 프로그램 3개에 드라마와 뮤지컬, 오디오클립 녹음까지. 일정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어려서부터 새벽형 인간이었던 게 유리한 것 같다. 매일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운동하고 사우나에 다녀온다. 7시30분부터는 반찬을 만든다. 두 시간 정도면 50인분도 거뜬하다. 그 후에 방송·공연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 약속은 안 한다. 해가 지면 집에 와서 아무리 늦어도 밤 11시에는 쓰러지듯 잔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서울에 데려다주시면서 ‘너는 눈이 크고 예뻐서 밤에 돌아다니다 사창가에 잡혀가면 아버지도 못 찾는다’고 하셨다. 그때 이후 어두워지면 불안해서 빨리 집에 간다.”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나.
“연예계 전설로 남고 싶다. 가요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란 가사가 있다. 나도 ‘그냥 갈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산다.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기억에 남고 싶다. 훗날 사람들에게 ‘김수미에게 이런 도움 받았어’란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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