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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고통스러운 암 통증, 의료진 상담 통해 효과적으로 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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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통증 치료의 진화
‘암을 치료하려면 극심한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아프다고 말하면 불량 환자로 찍힐 것이다?’ 암 환자를 바라보는 오해의 시각들이다. 심지어 암을 앓는 환자의 상당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암 덩어리를 없애는 데만 치중해 통증을 의사에게 숨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약만 잘 쓰면 극심한 통증을 충분히 다스릴 수 있다. 분당차병원 혈액종양 내과 강버들 교수에게서 한 단계 더 발전한 암 통증 치료법을 들었다.  

강버들 교수는 암 환자의 돌발성 통증을 약물로 조절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프리랜서 김동하

강버들 교수는 암 환자의 돌발성 통증을 약물로 조절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프리랜서 김동하

암에 걸리면 왜 아플까. 강버들 교수는 “암 덩어리가 증식하거나 방사선 치료, 수술 등으로 암 주변 조직이 손상되거나 암세포에서 염증 매개 물질이 분비되면 통증을 인지하는 신경섬유를 자극·흥분시켜 몸에 통증이 유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속성 통증 약물로 조절 안 하면 #돌발성 통증 찾아와도 구분 못 해 #통증 완화하는 약물 투여법 다양

이처럼 암 때문에 생기는 통증이 ‘암성 통증’이다. 암의 위치나 침범 부위에 따라 통증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암이 뼈나 신경 근처에서 커지면 작은 자극에도 극심한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암성 통증은 통증이 지속하는 시간의 양상에 따라 ‘지속성 통증(기저 통증)’과 ‘돌발성 통증’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돌발성 통증의 강도가 지속성 통증보다 높다고 알려졌다.

국내 암 환자 대다수 통증관리 소극적

통증의 강도는 1~10의 숫자로 등급을 표시한다. 지속성 통증은 기저에 깔린 통증이다. 암 환자에게 항상 지속해서 나타나는 양상을 보인다. 지속성 통증은 규칙적으로 복용하는 지속형 약물로 조절할 수 있다. 지속성 통증이 잘 조절되는 환자 가운데 갑자기(보통 3분 이내) 4~10의 중증도 이상 통증이 찾아와 30분가량 이어지다 사그라지면 돌발성 통증을 의심할 수 있다.

통증지수가 10이면 출산 수준의 극심한 고통이다. 암 치료를 받는 환자의 60%, 특히 4기 암 환자의 75%에게서 돌발성 통증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돌발성 통증을 겪는 환자의 70%는 하루 평균 3~4번 고통과 마주한다.

강 교수는 “지속성 통증이 있는데 약물로 조절하지 않으면 돌발성 통증이 찾아와도 돌발성 통증인지, 지속성 통증인지 구분할 수 없어 진단할 수 없다”며 “지난 한 주 동안 하루 12시간 이상 통증이 지속되거나 갑자기 발생하는 통증이 반복되면 주치의에게 통증 상태를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한국인이 유독 암성 통증에 대해 의사에게 정확히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5년 국제 학술지인 ‘캔서 메디슨(Cancer Medicine)’에 실린 아시아 10개국 암성 통증 관리 조사 결과에 따르면 통증지수 7~10의 극심한 돌발성 통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 가운데 우리나라 환자가 59%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반면 말레이시아(22%)와 홍콩(28%)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는 통증 치료를 얼마나 잘 받고 있는지와 거의 비례했다. 이 조사에서 통증을 잘 조절해 만족해하는 환자 비율은 홍콩(89%)과 태국(87%), 대만·베트남(82%) 순으로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44%에 그쳤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가 유독 암성 통증의 치료율이 적은 이유가 대부분 암 환자의 통증 치료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암 환자가 ▶아픈 건 당연하다고 여겨 무조건 참는 경우 ▶마약성 진통제 내성에 대한 불안감 ▶복용 후 어지럽고 울렁거리는 증상에 대한 두려움

▶의욕 상실과 자포자기 ▶통증을 호소하면 의사에게 불만을 제기하는 품행 불량 환자로 낙인 찍힐까 걱정하는 경우 등이 있다. 강 교수는 “제한된 진료 시간에 환자·보호자는 의사에게 최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평소 어떤 강도의 통증을 얼마나 자주 느꼈는지 기록해 그 기록물을 진료 시 지참하면 통증 조절 약물을 처방하는 데 도움된다”고 조언했다.

통증 양상에 따라 다양한 맞춤 처방 가능

지속성 통증을 지속성 진통제로 조절하는 중에 돌발성 통증이 나타난다면 의사의 처방을 통해 속효성 진통제로 돌발성 통증을 다스릴 수 있다. 과거엔 마약성 진통제가 모르핀 한 가지였다면 최근엔 돌발성 통증 양상에 따라 개인 맞춤형으로 제형을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치료제가 다양해졌다. 통상적으로 삼켜 복용하는 속효성 경구약뿐 아니라 구강 점막을 통해 흡수되는 약도 개발됐다. 혀 밑에 약을 넣어 녹이는 설하정, 볼 안쪽과 치아 사이에 약을 넣어 녹이는 구강점막정, 볼 점막에 문질러 녹이는 구강정, 콧속에 뿌려 약물이 점막으로 스며들게 하는 비강 스프레이 등이 있다. 제형이 다양해 환자가 일상에서 자신의 통증 양상에 맞게 돌발성 통증을 조절할 수 있다. 통증지수를 최대 10에서 3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다. 관건은 본인의 돌발성 통증 양상에 따라 적절한 약물을 선택하고 복용법을 숙지하는 것이다. 약을 늦게 복용하거나 약효가 느리게 발휘되면 소위 ‘뒷북’ 치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돌발성 통증이 빠르게 나타나고 1시간 이내에 사라지면 구강 점막으로 흡수되는 약이 적절하다. 돌발성 통증이 천천히 심해지면서 지속 시간이 긴 경우는 경구약이 처방된다. 강 교수는 “암 환자가 온종일 예측할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면 불안감이나 우울감이 심해지고 식사·수면의 질이 떨어져 체력이 약해지고 대인관계를 기피하게 돼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많은 환자·보호자가 의사에게 증상을 적극적으로 말해 통증을 잘 조절하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암 치료를 받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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