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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신분증 없어 출국 못 탔어요? 손바닥 펴니 비행기 탑승 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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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성이 김포공항 국내선 3층 바이오 정보 신분 확인 탑승구에서 정맥 인식으로 출입 허가를 확인받고 있다.

20대 남성이 김포공항 국내선 3층 바이오 정보 신분 확인 탑승구에서 정맥 인식으로 출입 허가를 확인받고 있다.

생체 인식 기술의 진화
주민등록증 대신 눈동자와 손바닥을 내고, 스마트폰을 대기만 하면 외국어가 한국어로 보이는 등 인식 기술이 일상에 파고들었다. 정보통신(IT)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개인정보를 대신하던 플라스틱 소재의 운전면허증이나 까다로운 금융권 공인인증서 등이 사라질 전망이다. 지문·홍채·얼굴·손바닥이 때로는 신분증으로, 때로는 사원증으로 변신한다. 이른바 ‘생체 인식’ 시스템이 공항 출입국, 회사 출입문, 스마트폰 잠금 해제 등에서 기존 보안 시스템을 빠르게 대체해 가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생체 정보가 감시·유출될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공항 탑승구 정맥 인식 시스템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도입 #얼굴·홍채 인식 기술 급속 발전

생체 인식 기술은 지문·홍채·얼굴·정맥 등 개인의 신체적 특징으로 신분을 인증하는 방식이다. 공인인증서나 비밀번호 등 기존의 인증 방식보다 편리하면서 보안성도 뛰어나 금융, 출국 수속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IT업계의 생체 인식 연구개발도 활발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인터넷진흥원은 2006년부터 최근까지 총 131건에 이르는 생체 인식 기술을 인증했다. 이 진흥원의 황희훈 보안성능인증팀 선임은 “제품이 생체 정보를 얼마나 잘 인식하는지 성능을 시험해 합격하면 ‘KISA’라는 인증마크를 부여한다”며 “같은 홍채 인식 제품이라도 업체마다 인식률이 조금씩 다르다”고 설명했다.

14개 공항에 도입 … 수속 시간 줄여

손바닥을 정맥 인식 스캐너에 대고 있다.

손바닥을 정맥 인식 스캐너에 대고 있다.

생체 인식 중 지문·정맥은 공항 탑승 수속에 이미 활용되고 있다. 김포·제주 등 국내 14개 공항은 사전에 개인의 신체 정보를 등록한 희망자에 한해 탑승 전 신원 확인 절차를 지문·정맥 인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속 시간 단축은 물론, 눈으로 신분증을 확인할 때 발생하던 오류도 줄이고 있다. 신분증을 잃어버려 비행기에 타지 못하는 불편도 해소할 수 있다.

공항 내 등록대에서 신분증을 보여준 뒤 개인정보 활용란에 동의하면 손바닥 정맥, 지문을 등록할 수 있다. 지문 인식 기술은 사용자의 손가락을 읽고 미리 입력된 데이터와 비교해 신분을 확인한다. 정맥 인식은 손바닥·손등의 정맥 모양·움직임을 읽어 신원을 확인하는 기술이다. 스캐너에서 7~8㎝ 떨어진 상태에서 손바닥을 보여주면 센서가 정맥을 촬영하며 읽는다. 미국 애틀랜타공항, 네덜란드 스히폴공항, 영국 히스로공항 등 세계 주요 공항에서도 얼굴·홍채·지문 등 생체 정보로 탑승 수속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맥 인식 기술을 공항 탑승구에 도입한 나라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김승현 한국공항공사 스마트에어포트팀장은 “지금까지 약 40만 명이 지문·정맥 인식 등록을 마쳤다”며 “공항에 지문·정맥 인식 시스템이 함께 도입됐지만 지문이 닳거나 물이 묻으면 인식이 잘 안 돼 정맥 인식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에도 사용되는 홍채 인식 기술은 적외선 레이저로 홍채의 주름 상태·모양 등을 읽는 방식이다. 적외선 레이저가 눈을 비추고 반사돼 카메라 렌즈에 닿을 때 홍채를 인식한다. 홍채의 명암 패턴을 분석해 디지털 코드로 읽고, 등록된 코드와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적외선이 홍채에 닿는 이 기술을 장기간 이용해도 괜찮을까. 김태완 SNU청안과 원장은 “적외선은 태양에서 매일 뿜어져 나오는 열에너지”라며 “홍채 인식 적외선 레이저는 아주 약한 수준이어서 눈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말했다.

생체 인식 장비 전문기업 바즐시스템의 김성대 이사는 “등록된 생체 정보가 유출돼도 본인이 아닌 이상 새로 대조해야 하는 정보와 같을 수 없어 신분증 분실보다 위험성이 적다”고 언급했다. 지문·홍채가 다른 사람과 똑같을 확률은 각각 10억분의 1에 불과한 점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는 “생체 인식 시스템에 데이터베이스를 보관할 때 암호화되므로 생체 정보가 잘못 활용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개인정보 유출, 불안증 논란도

얼굴 인식 기술은 중국에서 활발하다. 최근 중국 광둥성 선전시는 얼굴 인식으로 지하철을 타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하는 60세 이상 노인 승객을 대상으로, 등록된 얼굴 정보를 활용해 무임승차 대상 여부를 가려낸다. 항저우시의 한 초등학교는 출석 확인에 얼굴 인식 기술을 도입했다.

이 기술은 범인 검거에도 솜씨를 발휘했다. 지난해 중국 장시성 난창시에서 수배 중인 30대 남성이 홍콩 스타 장쉐유(張學友) 콘서트장에 입장하려다 얼굴을 인식하는 카메라에 붙잡혔다. 얼굴 인식 기술은 쌍둥이조차 가려낼 정도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센서가 두 눈의 간격, 코의 모양, 입의 위치 등 얼굴의 특징을 뽑아낸 뒤 보관해 둔 기존 생체 정보와 비교해 신원을 확인한다. 인천국제공항은 얼굴 인식으로 탑승권·여권이 필요 없는, 이른바 ‘스마트패스’ 시범 서비스를 내년 하반기 이후 시행할 예정이다.

글자를 인식해 자동 번역하는 구글 렌즈.

글자를 인식해 자동 번역하는 구글 렌즈.

이 같은 인식 기술은 글자를 읽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구글 렌즈’ 앱이 대표적이다. 이 앱은 텍스트에 카메라를 대는 순간 바로 번역해 준다. 도로 표지판, 식당 메뉴판처럼 빠른 번역이 필요할 때 쓰기 편하다. 사전이 필요 없을 정도다. 현재 38개국 언어를 지원한다. 인터넷·데이터에 연결하지 않아도 작동한다. 가령 비상구를 비추면 ‘Exit’를 ‘출구’로 바꿔 보여준다.

이와 비슷한 기능을 갖춘 복합기도 나왔다. 한국후지제록스는 외국어로 쓰여 있는 종이나 PDF·파워포인트 등 전자문서를 한국어로 출력해 주는 스캔 번역 서비스(유료)를 운영한다. 한국어·영어·일본어·태국어 등 8개국 언어의 번역을 지원한다.

인식 기술이 일상을 파고들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선 음모론에 입각한 권력기관이 사회의 감시·통제 수단으로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한다. 이 권력기관을 ‘빅브러더’라고 지칭했는데, 현대판 빅브러더가 생체 정보를 그 수단으로 사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중 하나가 공공기관의 사생활 침해 논란이다. 최근 중국 상하이시의 한 초등학교에선 얼굴 인식 기술로 학생이 수업시간에 몇 번이나 하품하는지 확인해 논란을 일으켰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얼굴을 인식하는 시스템의 도입은 범인 검거냐, 사생활 침해냐를 놓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하이퍼컬처(속도경쟁 문화)에 대해 해부한 권병웅 중앙대 교수는 “초연결·초지능·초예측 사회로 진입하면서 개인 생체 정보가 공공 데이터에 쌓이면 자유로울 권리가 박탈될 수 있고 생체 정보 권한을 놓고 갈등도 빚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때 발생하는 사회적 증후군, 병리 현상의 예방·진단·치유 체계를 동시에 준비해 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기술의 진전과 편리가 주관적 행복 척도와 꼭 일치할 수 없다”며 “보안 문제뿐 아니라 개인의 생체 정보, 활동 정보가 기록·저장되는 것에 대한 사회심리적 불안증도 증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글=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인성욱, 각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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