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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만한 나라 없다, 그러나…” 베트남으로 발길 돌리는 공장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 엑소더스, 어디까지일까.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고착화에 대한 비관론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을 벗어나는 기업들의 베트남 행렬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설사 트럼프와 시진핑의 이번 무역전쟁이 봉합된다해도 패권경쟁적 성격이 농후한 미중의 격돌이 한판 승부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공감대가 퍼지면서다. 우물쭈물하다간 발을 뺄 기회를 원천차단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기업들의 탈중국 러시를 재촉하는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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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반사 이익을 거두고 있는 베트남 현지의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중국과 인접한 박닌성(省)의 신데렐라 같은 반전 스토리는 글로벌 공급사슬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박닌성은 베트남 5개 특별시(하노이·호찌민·하이퐁·다낭·껀터)와 58개 성(省) 가운데 가장 면적이 작고 낙후된 지역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삼성SDI 등 삼성 계열사의 대규모 투자에 힘입어 제조업 메카로 급부상했다. 최근엔 미·중 무역분쟁의 최대 수혜지역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FT가 전하는 박닌성의 환골탈태를 들어보자.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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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닌성의 한 산업단지. 이 단지에 입주한 노키아는 핸드폰 생산 공장을 2016년 팍스콘에 넘겼다. 이 공장에선 곧 구글의 픽셀폰 생산에 들어간다는 얘기가 무성하다. 구글 측에선 구체적으로 확답을 주지 않고 있지만 성 부서기 응옌후꽛은 기정사실인양 기대감을 감추지 못한다.“구글의 베트남 입성을 환영합니다.”

반값 인건비에 규제 풀고 #교통 인프라도 속속 갖춰 #가까운 중국서 대거 몰리지만 #안정적 노동력 공급은 미지수 #

앞서 애플은 아이팟 시범 생산을 위해 공장을 세웠고 아마존과 공구업체 홈디포도 베트남에서 부품을 조달하고 있다. 베트남이 포스트 차이나의 선두주자로 부상하며 활기를 띄고 있는 모습이다.

박닌성 옌퐁공단은 베트남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삼성전자를 유치해 베트남 개혁개방의 상징으로 발돋음했다. 삼성은 부지와 조세감면 등 혜택을 바탕으로 2009년 처음 입주한 뒤 2015년 생산라인을 대폭 확대했다. 베트남과 싱가포르 국영기업이 만든 ‘베트남-싱가포르 산업공단(VSIP)’도 외자기업을 끌어들이는 산업 메카다. 노키와와 니콘 등 외자기업들이 속속 자리를 메우고 있다.

박닌성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중국과 인접한 지리적 잇점 때문이다. 교통 인프라도 비교 우위가 있다. 박닌성에서 철도·도로를 통해 2~3시간이면  중국 국경이다. 북부지역 최대 하늘길인 하노이의 노이바이 국제공항까지 자동차로 약 30분, 바닷길인 하이퐁 국제항까지 90분(약 120㎞),꽝닌항까지는 2시간여 걸린다.

정부 차원에서 규제를 풀고 각종 세제 지원과 반값에 가까운 저렴한 인건비 등 중국이 세계의 투자금을 끌어모을 때의 조건을 두루 갖춘 점도 베트남 이전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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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터전을 잡은 다국적기업의 베트남행 규모가 얼마나 되고 있는지는 추산하기 어렵다. 해당 기업들은 탈중국 행보를 극도의 보안으로 다루고 있다. 중국 당국과 부품 공급업체들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해 베트남의 대미 흑자가 395억달러였다는 점에서 생산라인의 재배치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미국 인구조사국(Census Bureau)자료에 따르면 베트남의 연간 대미 무역흑자는 2014년 이후 2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지난해 400억 달러에 근접하는 등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베트남의 흑자는 올해 들어 5월까지 216억달러로 이미 지난해 동기보다 43% 증가했다. 지난해 최대 흑자였다면 생산 공장은 2016~2017년부터 이전했다고 볼 수 있다.

中, 한·일 제치고 베트남 최대 투자국 부상

중국 기업들도 관세전쟁의 우회로를 찾아 베트남으로 생산라인을 옮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베트남 산단마다 외국기업들이 쇄도하고 있다. 몇몇 중국 기업들은 공장용지 답사 후 계약까지 일주일 만에 해치운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여름 이후 중국의 중견 제조업체 33개사 중 24개 업체가 베트남에 공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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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회사들일까. 대만 폭스콘을 비롯해 중국 화학섬유 업체 하이리더, 전자기기 업체 허얼타이 등이 베트남 이전을 결정했다. 베트남 기획투자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외국인직접투자액은 중국이 18억76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배 급증했다. 그 결과 중국은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를 제치고 베트남 최대 투자국으로 떠올랐다. 중국은 베트남 전체 외국인 투자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6%에 불과했다. 그게 1~2년 전이다. 하지만 올해엔 18.1%로 폭증했다.

문제는 이 추세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느냐다. 탈중국 물량을 받아낼 만큼의 지리적 우세가 소모됐을 때 과연 베트남은 여전히 매력적인 대체 투자지로 인식될 수 있을까.

우선 노동력 공급이다.  

인구 9700만명인 베트남의 노동력 공급량은 많아야 광둥성(1억600만명) 수준이다. 중국이 부상할 때처럼 내륙 지역에 방대한 잉여 노동력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제 규모가 작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FT는 “제조업자들은 더욱 깊이 파야하고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국내 부품공급업자와 생산현장 노동력, 경영관리자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말이다.”

세계은행의 글로벌경쟁력지수 조사에서 베트남은 55번째에 랭크됐다. 한 나라의 산업 인프라와 노동시장 효율, 교육 등을 종합평가한 결과다. 적절히 통제되고 있다는 얘기도 있지만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의 노사분규도 녹록치 않은 리스크 요인이다.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베트남이 중국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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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베트남 흑자 행렬에 대한 견제도 변수다.
지난해 상반기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무역적자는 182억달러였지만 올해 같은 기간 253억달러로 39% 증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기업들이 원산지를 속이고 베트남을 거쳐 우회수출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을 베트남 당국이 철저히 단속하지 않으면 베트남에 관세 부과 등 제재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FT는 “많은 제조업 중심 국가들은 관세전쟁이 있든 없든 차이나 플러스 원(차이나+1)정책을 채택하고 있음에도, 비즈니스 리더들은 베트남이 중국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인건비가 가파르게 올랐다. 중국에서 생산하는 가장 큰 잇점이 크게 약화된 이유다. 하지만 공장을 이전하는 문제는 가격 경쟁력 말고도 고려해야할 요소들이 많다. 거대 시장과의 접근성, 시장의 트랜드를 따라가는 상품 디자인과 R&D 역량, 그리고 촘촘한 공급망의 편의를 뒤로 하고 베트남으로 모든 생산라인을 뜯어가는 것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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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 진출한 외자기업들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노이의 미국상공회의소 애덤 스티코프 디렉터의 얘기다. “글로벌 공급사슬은 매우 복잡하다. 많은 플레이어와 인력이 관여하고 있다. 관세 때문에 훌쩍 떠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동남아 어떤 나라도 중국이 가진 것을 제공해줄 수 없다. 다만 베트남은 그중 얼마를 해줄 수는 있지만….” 탈중국 흐름은 거스를 수 없지만 옵션을 다양화하는 선에서 속도와 규모를 조절할 것이란 분석이 아직은 우세한 이유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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