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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 찾느라 아침부터 진땀' 자율좌석제가 문제인 이유

중앙일보

입력

“자율좌석제는 기업에 저주가 될 수 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7일 발간한 최신호(9월 28일 자)에서 직원들이 지정된 자리를 갖지 않고, 업무공간을 공유하면서 일하는 방식이 기업 생산성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사무실 책상 수 9년간 10% 감소 #자율 좌석 찾는데 하루 평균 18분 낭비 #밀레니얼 세대 사무실 소음에 더 취약 #英노동자 1명 당 부동산 비용 719만원

자율좌석제는 2010년 밀레니얼 세대의 사회 진출과 맞물려 등장했다. 개방형 사무실이 소통과 협업, 창의성을 향상시킨다는 기대 때문이다. 영국 사무실 위원회(BCO)에 따르면, 지난 9년간 사무실 면적당 책상 수는 10% 줄었다. 커피를 마시고, 탁구를 하는 공간은 과거 전체 사무실에서 3~4%에 불과했는데 현재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심지어 실내 암벽등반 공간까지 등장했다.

자율좌석제는 사무실에서 개인별 좌석을 지정하지 않고, 책상과 의자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혁신이 나올 수 없다’는 실리콘밸리의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사진 위워크]

자율좌석제는 사무실에서 개인별 좌석을 지정하지 않고, 책상과 의자를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혁신이 나올 수 없다’는 실리콘밸리의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사진 위워크]

그러나 현실에서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직원들 사이에서 지나친 자리 선점 경쟁과 의사소통 부재 등이 문제로 드러났다. 자율좌석제 도입 이후 직원들은 명당을 선점하기 위해 새벽같이 집을 나서게 됐다. 심지어 일부 좌석은 고연차의 암묵적 지정석이 돼 남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더 치열하다. 온갖 자료가 담긴 무거운 서류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피로감을 더한다.

영국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자율좌석제를 도입한 회사 직원은 자기 자리를 찾는 데 하루 평균 18분, 1년에 2주를 낭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직원의 대면(對面) 소통은 줄고, e메일 교류가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소음도 문제다. 밀레니얼 세대는 개방형 사무실에서 떠드는 소리에 신경을 덜 쓸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영국 경제분석기관 옥스포드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사무실 내 주변 소음에 더 짜증을 내고 업무에 집중을 못 하는 연령대로 나타났다.

이코노미스트는 “직원이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편안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중요한데, 자율좌석제는 정반대의 효과”라며 “어떤 노동자가 자기 자리도 없는 불안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겠느냐”고 비판했다.

결국 자율좌석제는 계약직 고용과 마찬가지로 기업이 비용을 아끼는 방법이지 혁신은 아니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영국 노동자 1명당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연간 부동산 비용은 6000달러(719만원)에 달한다.

기업이 공유 사무실을 선호하게 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자동화 기기의 발달로 앞으로 산업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10~15년 동안 넓은 공간을 장기 임대하는 것을 경영인이 꺼리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위워크 등 공유 사무실은 현재 뉴욕, 런던 상업지구의 5%를 차지한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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