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조국 에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정제원 기자 중앙일보 문화스포츠디렉터
정제원 중앙일보플러스 스포츠본부장

정제원 중앙일보플러스 스포츠본부장

박태준의 판타지 만화 『외모지상주의』는 국민 웹툰으로 불린다. 뚱뚱하고 못생긴 주인공이 어느 날 꽃미남으로 변신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하루 중 12시간은 뚱뚱한 몸매에 못생긴 외모로 살지만, 또 다른 12시간은 훤칠한 꽃미남으로 산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인데도 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그 스토리와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현실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키 작고 못생기고 뚱뚱한 주인공은 사회에서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키 크고 잘생긴 꽃미남은 숭배의 대상이다. 작품 속 주인공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두들겨 맞고 왕따를 당한다. 그런데 꽃미남으로 변신하는 순간 세상은 180도로 달라진다. 비단 판타지 만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외모는 권력이다. 꽃미남은 대접을 받지만 키 작고 못 생기면 루저가 된다. ‘개존잘’은 잘 생겼다는 뜻의 비속어이고, ‘존예’는 정말 예쁘다는 말이다. 그런데 키 작고 못 생기면‘고구마’가 된다. 보기만 해도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해진단 뜻이다.

외모지상주의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중국 당나라 때도 관리를 채용할 때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기준으로 삼았다. 외모와 언변, 글솜씨와 판단력 중에 외모를 가장 먼저 봤다는 이야기다. 서양 격언 중엔 ‘아름다움은 권력’이라는 말도 있다. 할리우드 영화나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주인공은 대부분 키 크고 잘 생겼다.

스포츠계에서도 외모를 따지는 건 마찬가지다. 거칠게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키 작고 못생긴 여자골퍼는 대놓고 멸시를 당한다. 생김새 탓에 심한 차별을 당했던 한 여자 골퍼는 견디다 못해 차별이 덜한 일본 투어로 건너가 버렸다. 그러니 여자 골퍼들이 프로 데뷔에 앞서 성형외과를 찾는 건 당연한 이치다. 미디어도 이런 풍조에 한몫했다. 신문과 TV의 스포츠 기사 헤드라인엔 ‘미녀 골퍼’나 ‘꽃미남 스타’란 수식어가 등장한다.

그렇지만 잘생긴 사람은 모두 착하고 못생긴 사람은 모두 악한걸까. 미국의 29대 대통령 워런 G 하딩은 외모가 돋보이는 정치인이었다. 큰 키에 그럴싸한 외모, 빼어난 말솜씨 덕분에 단숨에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술과 도박을 좋아했던 그는 1921년 취임한 뒤 연거푸 실정을 저질렀다. 미국 역사상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게 바로 하딩이다. 그래서 ‘워런 하딩 에러(Warren Harding Error)’란 말도 나왔다. 순간의 이미지나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다 그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조국은 외모가 돋보이는 정치인이다. 역대 모든 부처의 장관을 통틀어 외모 순위를 매기라면 첫 손에 꼽힐지도 모르겠다. 1m 80cm를 넘는 키에 오뚝한 코, 깎아놓은 듯한 얼굴은 웬만한 영화배우 뺨친다. 텀블러를 든 채 흰 손가락으로 가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고뇌에 찬 표정을 지으면 애틋한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나라’를 뜻하는 ‘조국’이란 거룩한 이름을 가지고 트위터를 통해 사이다 멘트를 날리는 그의 모습은 정의의 대명사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가 거룩한 외모 뒤에 숨겨왔던 너무나 많은 본질을 알아버렸다. 그와 그 가족의 잘잘못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검찰과 법원을 통해 가려지겠지만, 이에 앞서 그가 수많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는“얼굴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같으면 이 말을 좀 고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얼굴은 거짓말을 할 때도 있다. 조국 사태는 우리에게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깨워줬다.

정제원 중앙일보플러스 스포츠본부장